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대학생 기숙사 공약과 공회전
10년째 선거철 단골 공약
진영 관계 없이 약속했지만
기숙사 건설 지켜진 적 없어
빈 약속말고 대안 내놓아야

여야 정당이 선거철만 되면 꺼내드는 ‘판박이 공약’은 숱하다. 그중 대표적인 건 ‘대학생 기숙사 공약’이다. “임대료가 시가보다 훨씬 저렴한 공공기숙사를 만들겠다”는 게 공약의 골자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이 공약은 선거만 끝나면 한낱 공염불에 그친다. 여야의 무능함이 첫번째 원인이지만, ‘대학생 기숙사 공약’을 현실화할 수 없는 이유도 있다. 이젠 그 이유를 찾아야 할 때다. 

공공기숙사는 부지 확보의 어려움과 주민 반대를 이기지 못한 지자체 등의 결정으로 숱한 난항을 겪었다.[사진=연합뉴스]
공공기숙사는 부지 확보의 어려움과 주민 반대를 이기지 못한 지자체 등의 결정으로 숱한 난항을 겪었다.[사진=연합뉴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정당이 내세우는 ‘1호 공약’은 그 정당의 가치와 정체성을 반영한다. 그만큼 1호 공약은 정당이 반드시 풀어내야 할 공적 약속이다. 21대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2024년에 열리는 22대 총선에서 청년 ‘1호 공약’으로 ‘공공기숙사’를 꼽았다. 대학생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기숙사를 공급하겠다는 게 목표다. 임대료가 대학가 기숙사 평균(월 59만원)의 30% 수준인 공공기숙사를 만들겠다는 거다. 

물론 공공기숙사 공약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보수당이든 진보당이든 10년 전부터 꾸준히 공약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왔다. 그 사례를 자세히 살펴보자.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제시한 것과 같은 수준의 공공기숙사 공약을 내놨다. 

당시 이름은 ‘행복기숙사’로, 임대료가 기존 사립대 기숙사의 3분의 1 수준인 공공기숙사를 매년 4만호씩 5년간 20만호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보수당의 약속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행복기숙사 공약을 다시 꺼내들었고, 2016년 총선에선 상대적으로 저렴한 (행복)연합기숙사를 확대하겠다는 플랜을 발표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도 “행복연합기숙사를 늘려 향후 5년간 6만명의 대학생을 수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2012년 민주통합당 시절부터 공공기숙사를 늘리겠다고 공언해왔다. “대학별 기숙사를 연간 1만명씩 늘리겠다”는 게 그해에 내건 공약이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도 대학이 제공하는 부지를 활용한 공공기숙사를 도입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2016년 총선에선 원룸 형태 대신 1주택 2~4실 형태의 청년용 셰어하우스 임대주택을 5만호 공급하겠다고 했고, 2017년 대선에서는 대학 소유 부지 및 인근 지역 개발을 통해 기숙사 수용인원을 5만명으로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5만명 중 3만명은 수도권 학생이었다. 2020년 총선에선 도심 폐교를 행복기숙사 등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거대 양당이 유일하게 청년 기숙사, 저렴한 월세 주택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때는 2022년 지방선거 때다. 당시 코로나19로 대학 대부분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면서 대학생 주거난을 향한 관심이 잠시 식어 있었다. 이 기간을 제외하면 선거 때마다 기숙사 이야기는 빠진 적이 없다. 

이 사실은 청년 주거 문제를 10년째 해결하지 못했다는 슬픈 방증이기도 하다. 수능 응시자 수가 2010년 66만명에서 2023년 44만명으로 줄어들었는데도, 대학생 주거 문제가 ‘미해결 과제’로 남은 건 더 뼈아픈 부분이다. 

그렇다고 저렴한 기숙사를 원하는 대학생이 줄어든 것도 아니다. 더스쿠프가 대학정보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전국 대학 기숙사 경쟁률은 평균 1.2대 1로 아주 치열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월 임대료가 30만원 수준인 ‘행복기숙사’로 한정하면 경쟁률은 2.3대 1로 올라갔고, 서울 소재 대학의 행복기숙사 경쟁률은 2.5대 1 수준으로 더 높았다. 

서울 소재 대학의 일반 기숙사 평균 경쟁률은 1.4대 1이었다. 그럼 여야가 10년째 내놓고 있는 사실상 ‘똑같은 기숙사 공약’은 대학생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현실을 보면 쉽지 않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똑같은 기숙사 공약을 내세우는 여야 정치권의 ‘무능함’은 어쩌면 부차적 문제다. ‘기숙사 공약’이 번번이 좌초되는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 좌초 이유➊ 흐릿한 토지 마련책 = 10년 넘게 이어진 기숙사 공약에서 매번 등장하는 ‘기숙사 확보’ 방식은 다음과 같다. “국공유지 등에 임대주택을 만들어 토지 매입 비용을 대폭 줄이거나 이미 땅을 가지고 있는 대학에 감세 인센티브를 주고 기숙사를 짓게끔 만드는 거다.” 

이미 그렇게 공급한 기숙사가 있긴 하다. 사학기금과 교육부가 함께 만든 ‘행복연합기숙사’다. 국공유지에 공공기금과 민간기부금으로 행복연합기숙사를 만들었고, 2023년 현재 그곳에선 3766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십만호를 공급하겠다”는 여야의 공약을 감안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공유지인 동시에 대학 인근에 있는 부지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언급했듯 2024년 총선 공약으로 ‘공공기숙사’를 또다시 내놓은 더불어민주당은 이번에도 역시 토지를 어떻게 마련할지를 두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했다. 그저 감세 등 인센티브로 대학이 가지고 있는 땅에 기숙사를 만들겠다는 옛 방안만 내놨을 뿐이다. 

■ 좌초 이유➋ 확대 못한 이유 = 공공기숙사 공약이 좌초된 이유는 ‘부지 확보’ 문제 만이 아니다. 기숙사를 만들 때마다 원룸 임대사업자들이 강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도 한몫했다. 실제로 2014년 고려대 기숙사 건립 프로젝트는 지역 주민이 반대하자 성북구의회 의원 전원이 건립 자체를 불허하기도 했다. 정당이 ‘공공기숙사’를 공약으로 내걸어도 정작 인허가를 결정하는 주체가 행동하지 않으면 한낱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청년주거운동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의 지수 활동가는 “실질적으로 기숙사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은 고민하지도 않은 채 기숙사를 짓겠다는 공약만 내놔봤자 청년 주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십수년째 공약을 제시하고도 과제를 풀지 못했다면 여야 정당들이 구체적인 실행책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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