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보육원 출신 자립준비청년
쉼터 출신 쉼터 퇴소 청년
홀로 서야 하는 비슷한 상황
하지만 이용한 시설 차이로
자립정착금 지원 여부 갈려
동일한 수준의 지원 필요해

# 우리 사회는 보육시설을 떠나 홀로 서는 이들을 ‘자립준비청년’이라 부른다. 사회적 안전망이 촘촘하진 않은 탓에 자립준비청년이 정작 ‘자립’에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 다행히 그중 몇몇 사례가 이슈를 불러일으키면서 최근엔 이들을 돕는 지원 시스템이 튼튼해지고 있다. 그런데 자립준비청년과 상황이 비슷하지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도 있다. 바로 ‘쉼터 퇴소 청년’이다. 둘은 왜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쉼터 출신 청년은 자립정착금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쉼터 출신 청년은 자립정착금을 받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에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여기 두명의 청년이 있다. 둘 다 청소년 시절 가정에서 학대를 받아 집을 나왔다. 불우한 유년시절을 겪고 온전한 가정의 돌봄을 받지 못했다는 점에선 같지만, 둘은 차이도 뚜렷하다. A는 ‘아동복지시설 퇴소 자립준비청년’, B는 ‘쉼터 퇴소 청년’이다. 보호 종료 시점까지 이용한 시설의 종류가 다르다는 거다.

아동복지시설은 보호자에게 보호받을 수 없는 아동ㆍ청소년을 보호ㆍ양육하는 시설이다. 쉼터는 가정에서 생활할 수 없는 청소년을 일정 기간 보호하는 시설이다. 명칭은 다르지만, 과업은 사실상 같다.

하지만 자립준비청년과 쉼터 퇴소 청년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완전히 다르다. 직장인 서동환(가명ㆍ28)씨는 B와 같은 쉼터 퇴소 청년이다. 동환씨는 이런 하소연을 입에 담았다. “어떤 시설에서 지내다 나왔느냐가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은 둘을 다르게 봅니다.”

무슨 말일까. 동환씨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는 고등학생 시절 집을 나왔다. 부모에겐 조현병이 있었고, 아버지는 걸핏하면 동환씨를 폭행했다. “이대로 더는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을 때쯤 지역 상담사를 만났고 그가 소개해 준 쉼터에 입소했다. 성인이 된 후엔 자연스럽게 쉼터를 떠났다.

정부와 지자체는 동환씨처럼 시설을 나와 홀로 살아가는 청년에게 다양한 지원을 한다. 기본 생활이 곤궁하지 않도록 월 단위로 제공하는 ‘자립수당’과 보증금이나 학자금을 낼 수 있게끔 목돈 형식으로 지원하는 ‘자립정착금’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동환씨는 이런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퇴소 후 편의점ㆍ물류센터ㆍ횟집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그럼에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적지 않은 금액을 대출 받았고, 지금도 이를 갚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긴 했다는 거다. 동환씨는 현재 일반 직장에 다니면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자립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럼 동환씨가 쉼터가 아닌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한 ‘자립준비청년’이었다면 어땠을까. 자립준비청년은 아동복지시설의 보호를 받다가 홀로서기에 나서는 이들이다. 아동복지시설의 법적 보호 종료(퇴소) 연령은 19세다. 다만, 24세까지 종료 시점을 유예할 순 있다. 이후 퇴소하고 나면 자립정착금을 지원받는다. 지자체별로 1인당 1000만~2000만원의 적지 않은 금액이다. 퇴소 후 5년간 자립수당도 월 50만원씩 받는다.

반면 동환씨와 같은 쉼터 출신 청년의 지원 시스템은 이렇게 다양하지 않다. 무엇보다 자립정착금은 받지 못한다. 대신 자립수당만 월 40만원씩 5년간 지급받고 있다. 이 수당도 2021년에야 생겼다. [※참고: 동환씨는 이런 지원이 생기기 전에 퇴소했다.] 자립준비청년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쉼터 출신 청년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다.

조현수 자립준비청년 모임 아디주커뮤니티 대표는 “쉼터에서 생활하는 이들 중엔 학대나 방임을 당해서 가정을 나온 경우가 많다”면서 “쉼터 퇴소 청년이 자립 시 겪는 어려움은 자립준비청년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가정에서 소외된 청소년이 아동복지시설과 쉼터를 골라서 입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둘 중 어느 곳에 들어가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은 없다. 통상 처음 만난 상담사가 어느 시설을 소개해 주는지에 따라 소외 청소년의 갈 곳이 달라진다. 앞길이 막막한 청소년이 아동복지시설과 쉼터의 장단점을 따져볼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건 법 때문이다. 아동복지시설엔 아동복지법을, 청소년 쉼터엔 청소년복지지원법을 적용한다. 아동복지법엔 세세한 청년 자립 지원 내역이 담겨있지만, 청소년복지지원법은 그렇지 않다.

주무부처도 다르다. 자립준비청년은 보건복지부 주관이지만, 쉼터 퇴소 청년을 관리하는 건 여성가족부다. 공교롭게도 여가부엔 자립정착금 예산이 없다. 여가부 관계자는 “부산ㆍ울산ㆍ제주도 등 일부 지자체가 쉼터 퇴소 청년에 자립정착금을 주기도 한다”면서 “다만 모든 쉼터 퇴소 청년이 받는 건 아니기 때문에 향후엔 국비 예산을 확보해 전국적인 지원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정책적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원금 규모 차이가 쉼터 퇴소 청년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2년 시설퇴소청년 생활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쉼터 퇴소 청년의 평균 자산은 자립준비청년(851만79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94만8700원으로 나타났다. 주거 보증금도 쉼터 퇴소 청년이 평균 1733만원으로, 자립준비청년(3040만원)보다 적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는 최근 아동복지법을 개정했지만 여기서도 쉼터 출신 청년의 문제는 빠졌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쉼터 출신 청년’의 문제를 등한시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아동복지법을 개정해 자립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을 확대했지만 쉼터 출신 청년은 여기서도 빠졌다. 자립준비청년 지원단체 SOL의 윤도현 대표는 “쉼터 퇴소 청년이 아동복지시설 출신 자립준비청년과 동일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세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석재은 한림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유사한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는 유사한 지원을 제공하는 유연한 정책이 이뤄져야 실질적인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 자립준비청년과 쉼터 퇴소 청년에게 비슷한 지원을 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궁극적으로는 두 그룹의 청년 모두에게 더욱 다양하고 확대된 지원을 해야 한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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