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공병훈의 맥락
상인조합 길드의 탄생❷
국왕이 허가한 상인 길드
기사단같은 엄격한 규율
지역경제부터 내부통제까지
도시의 발전 이끈 숨은 힘

지금도 그렇지만, 중세에도 사회를 지배한 중심축 하나는 ‘상인 집단’이었다. 이를 유럽 사람들은 ‘길드(Guild)’라고 불렀는데, 이 모임은 지역의 상거래를 독점하고 시장을 통제했다. 하지만 길드가 ‘권력집단’ 노릇을 한 건 아니다. 그들은 교회를 짓고 지역을 성장시키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수익에만 집착하는 오늘날 기업이 벤치마킹할 부분이다. 

네덜란드 화가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작업장의 금세공인.’[사진=메트로폴리탄미술관]
네덜란드 화가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작업장의 금세공인.’[사진=메트로폴리탄미술관]

‘상인조합 길드의 탄생’ 첫번째 기사에서 봤듯, 길드의 기원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 시대, 동업자들이 일정 구역에 모여 ‘콜레기아(Collegia)’란 이름의 조합을 결성했다.

콜레기아는 정부가 인가를 내리고 행정장관이 감독했는데, 로마 제국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콜레기아를 계획적으로 이용했다. 콜레기아는 중세 유럽으로 접어들면서 시장의 형태로 바뀌었는데, 이런 모임이 더 체계를 갖추면서 길드(Guild)가 탄생했다.

길드가 동업자 간 우호적인 모임에서 공업이나 상업의 협동조합적인 성격으로 변한 건 12세기부터다. 2세기 후인 14세기가 됐을 땐 제조업자보단 상인의 입김이 더 세졌다. 상인 길드는 특정 마을이나 도시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의 조합이었다. 조합원들은 지방 상인이거나 원거리 무역상인, 도매상 또는 소매상일 수도 있었다. 

상인 길드는 국왕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사업을 독점하고 상품의 품질 저하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조합원 자격을 제한했다. 품질 검사, 수출입 단속, 동업자 간 쟁의 중재나 재판 등 상거래의 모든 과정에 개입했다. 그럼 상인 길드의 힘이 이렇게 강해진 배경은 뭘까. 상인 길드의 근원부터 살펴보자. 

상인 길드는 북부 유럽의 상인에서 출발했다. 독일 브레멘(Bremen) 상인은 965년 황제 오토 1세 집권기, 독일 마그데부르크(Magdeburg) 상인은 975년 황제 오토 2세 집권기에 교역의 자유(독일 제국 전체)와 관세면세의 특권을 받았다. 

독일만이 아니다. 프랑스 발랑시엔(Valen ciennes)은 1050년부터 1070년까지 길드 특허장을 유지했다. 프랑스 생토메르(Saint Omer)는 1072~1083년 상인 길드 규약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11~16세기 유럽에서 번성한 길드는 경제적ㆍ사회적 구조의 핵심을 차지했다. 아울러 기사단과 다름없는 엄격한 규율을 가지고 있었다. 정해진 기간에는 도제徒弟로 일해야 했다. 도제는 장인匠人으로부터 직업 교육을 받는 이를 뜻한다. 일종의 제자다. 

도제를 거쳐 직인職人(도제와 장인의 중간단계)에 오르면 낯선 도시와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기 위해 먼 거리를 떠나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고향도시로 돌아왔다. 때론 장인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자리를 잡기도 했다. 

다만, 길드는 장인의 수는 엄격히 통제했다. 가령, 재단사 직인은 멋진 외투 명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통과해야만 엄숙한 의식을 거쳐 재단사(장인)란 타이틀을 받았고, 그래야만 길드에 속할 수 있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장인의 집합체인 길드는 지역경제를 좌지우지했다. 지역 또는 산업에서 거래의 독점체제를 수립했다. 국왕의 허가를 받았지만, 그것만으로 엄청난 권력이었다. 길드는 아울러 상품의 질과 거래 관행의 보전을 위한 기준도 세웠다. 그들의 경제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읍이나 시를 통제할 수단도 강구했다.

길드는 내부 통제에도 신경을 썼다. 길드는 기사단처럼 나름의 규칙과 알록달록한 깃발을 가지고 있었다. 길드의 회원은 서로 도와야 했고 다른 회원을 흉보거나 손님에게 질 나쁜 물건을 제공해서는 안 됐다. 아울러 자신의 직업과 도시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기사들이 하느님의 전사이듯 길드는 하느님의 상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단들이 성지 탈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처럼 길드에 속한 상인들은 도시에 교회를 세우는 데 자신의 재산과 노동력을 아끼지 않았다. 크고 아름답고 화려한 교회는 도시의 자랑거리였고 시민과 상인 길드는 유명 건축가를 초빙했다. 그 과정에서 공업 길드는 돌을 깎아 조각상을 만들고 화가들은 제단 그림을 그리거나 교회의 창문을 채색했다.

공병훈 협성대 교수 | 더스쿠프
hobbits84@naver.com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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