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단통법 폐지, 전환지원금 신설…
尹 정부 지원금 경쟁 부채질
전환지원금에 소액 책정하자
방통위, 임원 호출해 상향 요구
특정사 지원금 뿌리기 시작하면
이동통신시장 퇴행 부추기는 격
모객 위한 출혈 경쟁 불가피해
결국 소비자에게 유리하지 않아

# 정부가 가계통신비 인하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올해 들어선 이통3사를 상대로 “휴대전화 단말기 지원금 경쟁 강도를 높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고객이 번호이동할 때 지원금을 추가로 얹을 수 있도록 시행령도 손질했다. 

# 하지만 이통3사가 정부의 요구를 순순히 따를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시행령까지 개정하면서 판을 깔았지만, 이통3사는 지원금 규모를 찔끔 올렸다. 다만 이통3사 중 한 회사라도 지원금 규모를 늘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땐 가입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3사 모두 이동통신 시장에 돈을 뿌려대야 한다. 


# 그렇다면 이동통신시장은 ‘최신 공짜폰’이 횡행하던 혼란의 늪으로 다시 빠질 수밖에 없다. 과연 이통3사 중 누가 먼저 움직일 것인가. 더스쿠프가 이통3사 앞에 놓인 ‘죄수의 딜레마’를 분석했다. 

이동통신3사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이동통신3사가 죄수의 딜레마에 빠졌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더스쿠프 포토]

“번호이동 전환지원금의 상한이 높아지고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사라져도 업계는 단말기 지원금 경쟁에 섣불리 뛰어들지 않을 겁니다. 단말기 자급제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그런 방식의 마케팅이 무조건 통한다고 보기 어렵고요. 통신 소비자인 국민들도 이제 정보가 많습니다. 지원금을 많이 받으려면 고가의 요금제를 골라야 하는데, 결국 그 선택이 지갑 부담으로 이어질 거란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정부가 가계통신비를 떨어뜨리기 위해 이통3사의 ‘단말기 지원금’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데, 의도대로 경쟁이 치열해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대체 무슨 얘길까. 

■ 흐름➊ 尹의 압박책 = 시계를 2022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5월 돛을 올린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줄기차게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부르짖었다. 경기침체와 고물가가 지지율 반등을 막는 변수 중 하나였는데, 그중에서도 통신비가 말썽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통신비는 2020년 11만9800원, 2021년 12만3800원, 2022년 12만8200원으로 해마다 상승하고 있었다. 

정부는 가장 먼저 ‘5G 중간요금제’ 출시를 압박했다. 이통3사는 정부 주문대로 새 요금제를 설계해 2022년 여름에 출시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추가 중간요금제’를 요구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통신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시장에서 통신의 품질과 요금, 서비스 개선을 위한 건전한 경쟁이 촉진돼야 한다. 통신요금 구간을 세분화해 국민의 통신요금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이통3사는 ‘추가 중간요금제’를 론칭하면서 응답했다. 중간요금제 덕분인지 5G 요금제의 최저구간도 3만원대로 낮아졌다. 

비싸기로 악명 높던 5G 요금제의 수준을 어느 정도 낮추는 데 성공한 정부는 다음 타깃으로 단말기를 겨냥했다. 프리미엄 단말기 가격이 웬만하면 대당 100만원이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이동통신 유통시장이 변곡점을 맞았다.[사진=뉴시스]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정책으로 이동통신 유통시장이 변곡점을 맞았다.[사진=뉴시스]

일례로, 최근 출시한 ‘갤럭시S24 울트라(1TB)’는 212만7400원, 지난해 론칭한 애플 ‘아이폰15 프로맥스’의 가격은 최대 250만원이었다. 24개월 약정을 걸고 할부로 나눠 내더라도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는 금액이다. 

이를 의식한 정부는 이통3사를 향해 “돈을 더 뿌려 단말기 지원금을 높게 책정하라”고 요구했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론 ‘단통법 폐지’를 꺼내 들었다. 

올해 1월 대통령실은 생활규제 개혁 민생토론회를 열고 “자유로운 지원금 경쟁을 촉진하고 국민들이 저렴하게 휴대전화 단말기를 구입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단통법을 폐지한다”고 공언했다. 단통법이 사라지고 이통사 간 지원금 지급 경쟁이 활발해지면, 가계통신비가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란 게 정부의 계산이었다.

■ 흐름➋ 단통법 논란과 폐지 = 문제는 단통법 폐지가 이통3사의 ‘지원금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먼저 단통법의 면면부터 살펴보자. 단통법은 2014년 10월 휴대전화 유통시장의 건전화를 위해 정부 입법으로 시행한 법이다. 골자는 소비자가 휴대전화를 어느 곳에서 구매하든 동일한 보조금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통법을 근거로 단말기 지원금을 공시하고, 경쟁이 과열하는 걸 막기 위해 상한선을 뒀다.

사실 단통법이 등장하기 전, 이동통신 유통시장은 혼잡했다. 가입 유형이나 장소에 따라 누구는 싸게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일이 허다했다. 단말기를 파는 업체(대리점)와 소비자간 정보의 비대칭이 그만큼 극심했다. 

이 때문에 단통법을 제정ㆍ시행했지만, 결과적으론 법의 취지를 살리는 데 실패했다. 되레 단통법을 향해선 ‘전 국민 호갱 만드는 법’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한 지원금을 줘야 하는 이통3사가 지원금 규모를 줄였기 때문이었다. 

대신 법이 허용하는 수준을 넘는 지원금을 암암리에 지급하는 이른바 ‘성지점’이 횡행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정부가 단통법을 폐지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법을 바꿔서라도 이통사 간 지원금 경쟁을 활발하게 만들겠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었다. 이통3사가 최근 3년간 ‘합산 영업이익 1조원 연속 달성’을 해낸 만큼, 곳간이 넘쳐난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게 분명하다.

정부는 속도를 붙였다. 단통법을 폐지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시행령을 먼저 고쳤다. 방통위는 지난 2월 21일 단통법 시행령을 고쳐 ‘전환지원금 규정’을 신설했다. 고객이 이동통신사를 갈아타는 경우, 공시지원금 외에 추가로 돈(전환지원금)을 더 얹어줄 수 있게 한 거다. 방통위는 이통3사가 전환지원금을 최대 50만원까지 책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 흐름➌ 속도전 그 후 = 그럼 시행령 개정 후 이통3사의 전환지원금은 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경쟁하지 않을 것”이란 업계 관계자의 말은 들어맞았다. 이통3사는 전환지원금을 적용하는 첫날, 요금제와 휴대전화 단말기 기종에 따라 최대 13만원의 번호이동 전환지원금을 풀었다.

그나마도 비싼 요금제를 사용해야 최대 액수를 받을 수 있었고, 최신 기종은 전환지원금조차 나오지 않았다. 정부가 제시했던 ‘최대 50만원’과는 간극이 컸다. 전환지원금을 소액으로 책정한 사실이 드러나자, 방통위는 이통3사 임원을 불러 “지원금을 더 올려라”고 압박했다. 이통3사는 전환지원금 최대 지원 액수를 30만원대까지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화답했지만, 특정 단말기와 최고가 요금제에 한정했다는 점에선 가계통신비 인화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이통사가 정부의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은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단통법 시행 직전 과도한 지원금 경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던 이통3사 입장에선 ‘공짜폰 전략’을 다시 꺼내 드는 게 부담스러웠을 공산이 크다. 신규 가입자의 증가세가 한풀 꺾인 지금 같은 상황에서 지원금이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변질돼 ‘제살 깎아먹기’로 돌아올 위험성도 고려했을 거다. 

사실 과도한 지원금이 산업적 측면에서도 좋을 건 없다. 지원금만 더 많이 풀면 휴대전화를 팔 수 있으니, 이통3사로선 요금제나 품질, 서비스, 인프라 등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원금을 마케팅비로 지출하면 인프라에 투자할 여력이 줄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 흐름➍ 눈치보기 = 물론 시장에 지원금 경쟁 광풍이 다시 불어닥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어느 한 이동통신사가 지원금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높이기 시작하면 그땐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산업에 속한 이통3사가 정부의 집요한 요구를 언제까지나 외면할 수도 없다. 결국 이통3사는 앞으로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일지 모른다. 정부의 인하 압박에 누가 먼저 백기를 들고 투항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테면 이통사판 ‘죄수의 딜레마’다. 이는 죄를 저지른 공범이 먼저 자백해 자기만 중형을 받을까 두려워 죄를 시인한다는 게임이론이다. 

이처럼 이통3사 역시 머뭇거리다 뒤늦게 지원금을 올릴 바엔 먼저 움직이는 게 상책이라고 계산할 수 있다는 거다. 선제적으로 지원금을 높이더라도 손해인 것도 아니다. 지원금 수준이 월등하게 높으면 5G 고객을 모집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더스쿠프, 사진=연합뉴스]
[그래픽=더스쿠프, 사진=연합뉴스]

박재범 사회공공연구원 전문위원은 이렇게 꼬집었다. “이통사의 유일한 경쟁 무기가 단말기 지원금이 되면, 시장은 다시 가입자를 뺏고 뺏기는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정부가 차별적 지원금 지급을 부추기는 꼴이기도 하다. 지원금 규모가 커지면 국민 입장에선 언뜻 좋아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론 이동통신 유통시장을 교란할 것이다. 서비스의 품질 향상과 이를 위한 설비투자 확대는 뒷전으로 밀릴 테니 말이다.” 

단통법 폐지와 전환지원금 정책은 어쩌면 퇴행적이다. 이동통신 시장이 다시 혼탁해지는 게 수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통3사 중 누구라도 먼저 움직이면 전환지원금 경쟁엔 불이 붙을 것이다. 이통3사 중 누가 먼저 ‘배신의 지원금’을 책정할까.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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