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감액한 예산 1조1000여억원
하지만 감액 이유도, 속기록도 없어
관례적 기구인 소소위원회의 폐해
비공식협의체 통한 엉터리 감액심사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해보자. 정부가 한해 예산안을 제출하면, 국회는 적정성을 따져 예산을 줄이거나 정부 동의를 얻어 늘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역할인데, 이들이 예산을 증액ㆍ감액할 땐 근거를 남겨야 한다. 그런데 여야 교섭단체 간사만 참여하는 ‘관례적 기구’ 소소小小위원회에서 증액ㆍ감액하는 예산은 근거가 남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걸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예산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예산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2022년 정부 예산안은 607조7000억원이다. 전년(558조원) 대비 8.9% 늘어난 액수로, 사상 최대의 ‘슈퍼 예산안’으로 불린다. 이렇게 예산이 늘어난 데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2년 넘게 지속되면서 경제 상황이 나빠진 만큼 돈 쓸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예산안도 국회의 각 소관 상임위원회(상임위)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의 감액심사를 거친 금액이다.[※참고: 당초 정부가 내놓은 2022년 예산안은 604조4000억원이었다. 국회의 감액과 정부의 증액이 더해져 2022년 예산은 3조3000억원가량 늘어난 607조7000억원으로 확정됐다.]

그렇다면 어떤 사업의 예산이 어떻게 삭감됐을까. 만약 예산을 감축했다면 그럴 만한 사업이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1조원이 넘는 예산이 어떤 기록도 없이 삭감됐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예산을 무 자르듯 삭감해도 괜찮은 걸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에 앞서 국회의 예산심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부터 살펴보자. 사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하는 예산안에서 각 사업의 예산을 삭감할 수는 있지만, 정부 동의 없이 예산을 늘리거나 새로운 사업을 만들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국회의 감액심사는 정부의 예산 낭비를 막는 국회의 매우 중요한 기능이자 권한이다. 

국회가 예산안을 확정하기까지 ‘상임위원회 예비심사→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심사→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예결소위) 심사→예결위안 제출→국회 본회의 심의ㆍ의결’의 단계를 거치는 것도 그래서다. 

여기서 예결소위는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감액된 사업과 예결위 종합심사에서 감액의견이 제기된 사업을 심사해 ‘예결위안’을 국회 본회의에 제출한다.[※참고: 예결소위 심사자료는 각 상임위 예비심사 결과, 종합정책질의와 부별심사 시 수정의견, 교섭단체 의견, 전문위원 수정의견 등을 기초로 해서 정리한 것이다. 예결소위는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감액된 사업과 예결위 종합심사에서 감액의견이 제기된 사업을 각각 ‘상임위’와 ‘예결위’로 구분해 표기하고 있다.]

여야 간사들만 참여하는 소소위원회에선 감액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감액이 이뤄진다.[사진=뉴시스]
여야 간사들만 참여하는 소소위원회에선 감액 이유조차 알 수 없는 감액이 이뤄진다.[사진=뉴시스]

국회 본회의에서는 예결위안에 이견이 있다면 토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예결위의 심사결과대로 확정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기서 주목할 건 그만큼 절차가 까다롭다는 거다. 국회의 감액심사가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국회가 감액심사를 대충 해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2022년 정부 예산안에서 국회는 얼마의 예산을 삭감했을까. 정부의 재정정보공개시스템인 열린재정(예결소위 심사자료)에 따르면 국회는 2022년 예산안에서 총 5조5322억원의 예산을 감액했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604조4000억원) 대비 0.9%를 국회가 줄였다는 건데, 이 가운데 상임위의 ‘감액사업’은 1조6811억원(30.4%), 예결위의 ‘감액의견사업’은 2조7067억원(48.9%)이었다. 

문제는 나머지 1조1444억원(20.7%)이 상임위나 예결위의 감액심사 없이 예산이 삭감됐다는 점이다. ‘감액심사 없는 예산 삭감’은 예결소위 심사자료에 ‘상임위’나 ‘예결위’로 구분돼 있지 않은 감액을 의미한다.

근거 없는 감액 1조원 넘어

상임위나 예결위의 감액심사를 거치지 않은 정부 부처별(가나다순) 감액 내역을 보면 ▲경찰청 1억2000만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74억1800만원 ▲교육부 309억8300만원 ▲국방부 4000만원 ▲국토교통부 4500억원 ▲기획재정부 1204억7600만원 ▲농림축산식품부 61억원 ▲문화체육관광부 103억원 ▲방위사업청 32억7600만원 ▲보건복지부 3074억1800만원 ▲산업통상자원부 74억2000만원 ▲중소벤처기업부 2000억원 ▲해양수산부 9억원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건 국토교통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의 감액 예산이다. 국토교통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의 전체 감액은 각각 5683억600만원, 3164억1700만원이다. 그런데, 감액심사 없이 예산을 삭감한 금액은 각각 4500억원, 3074억1800만원에 이른다. 국토위 감액의 79.2%, 복지위 감액의 97.2%가 제대로 된 감액심사를 거치지 않고 삭감됐다는 거다. 

그럼 이같은 ‘감액심사 없는 삭감’은 어떻게 이뤄진 걸까. 그건 바로 예결위 내 소위원회의 하부 조직인 ‘소소小小위원회’에서 이뤄진 거다. 현행 국회법은 예결위 내에 예산안 조정소위원회를 두고, 여기서 예산안의 세부사항을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야는 관례적으로 여야(교섭단체) 간사들만 참여하는 소소위원회를 구성해 예산안을 최종 조정해왔다. 

소소위를 통한 예산안 조정의 문제점은 분명하다. 우선 예산안 조정소위원회와 달리 소소위원회는 공식 협의체가 아니다. 그래서 심의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속기록도 남지 않는다. 예산조정 소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예결위원들의 지역구 예산이 최종안에 반영되기도 하는 등 이른바 ‘쪽지 예산’ 논란이 때마다 불거지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수천억원의 예산이 감액돼도 그 이유조차 알 수가 없다. 쉽게 말해, 여야 예결위 위원 맘대로 예산을 줄이고, 자신들이 필요한 데다 집어넣는데 국민은 이를 알 수가 없다는 얘기다.[※참고: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 맘대로 예산을 늘릴 수는 없도록 규정돼 있어서다.]

상임위와 예결위 기능 나눠야

과연 이런 식의 감액심사를 그냥 둬도 괜찮은 걸까.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했듯 국회의 예산심사는 정부의 예산 낭비를 막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공식적인 감액보다 비공식적인 감액이 더 많고, 1조원 이상의 예산이 비공식적으로 감액되며, 그 감액 이유조차 기록에 남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국회 예결위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런 비상식적 행태를 ‘관행’이라는 말로 덮어둘 수는 없다. 개선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사실 어렵지도 않다. 상임위와 예결위의 심사 기능을 분리하면 예결위 심사과정에 ‘소소위’가 끼어들 여지가 사라진다. 결국 비정상의 정상화는 말로만 ‘혁신’을 외치는 금배지들이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글 =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부소장
wangjaelee@gmail.com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