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삶과 건강
경제적 문제에만 집중한 은퇴
은퇴 후 삶의 질 결정하는 건강

‘은퇴’라는 말을 들으면 십중팔구 노후자금을 떠올립니다. 노인빈곤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은퇴 후 삶에서 돈이 전부인 건 아닙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를 쓸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지었더라도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번엔 은퇴설계의 중심이 ‘건강’에서 ‘돈’으로 바뀐 이유를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격언은 은퇴자가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사진=뉴시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격언은 은퇴자가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사진=뉴시스] 

최근 필자의 50대 중반 지인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일이 연이어 발생했습니다. 시작은 후배였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에 함께 식사했던 후배의 부고장을 받아들고 허탈함을 느꼈습니다. 최근엔 아끼던 손아래 동서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두 자녀를 둔 50대 가장이었던 그는 산책한다며 나갔다가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두 아이를 둔 성실한 가장이었지만 황망하게 세상을 등졌습니다.

더 안타까운 건 그가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은퇴 후 살집과 일자리까지 마련해 두었던 터라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돌이켜보니, 주변에 쓰러진 사람 중엔 유독 50대가 많네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마도 30~40대를 정신없이 사느라 지쳐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의 성공과 가족을 위해 20여년을 앞만 보고 뛰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이제 살만해지고, 한숨 돌려도 되나 싶어 긴장을 푼 게 문제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제로 50대 남성 사망자가 여성 사망자의 2배가 넘는다는 통계청 자료도 있습니다(2020년 연령별 사망자 구성 비율). 그래서 오늘은 건강을 주제로 은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수많은 가치 중 무엇을 중심에 놓고 은퇴 준비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흥미로운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노인 부부끼리 사는 4000여 가구의 생활 상태를 분석한 조사 결과였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주거상황·경제상태·건강상태·여가·사회참여·사회관계·서비스 이용(가사·간병 도우미) 등 여러 분야를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적지 않은 노인들이 건강·경제·소외·무위無爲(하는 일이 없다) 등 4고苦를 겪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조사 대상 노인가구 중 13. 0%가 4고를 모두 겪고 있는 위기집단으로 분류됐습니다. 4가지 중 3가지 문제를 경험하는 가구는 27.4%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경제문제에만 집중됐습니다. 사실 다른 조사 결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퇴 후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문제 중 경제적인 어려움만 크게 부각합니다. 이는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회사가 자신들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만든 논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일찍 은퇴 준비상품에 가입해야 한다는 ‘공포 마케팅’의 결과라는 겁니다. 이런 공포 마케팅은 몇번을 우려먹어도 유효한 금융회사의 단골 마케팅입니다.

돈만 강조하는 지금의 은퇴설계

그럼 정말 그럴까요? 은퇴 준비는 ‘경제적 측면’에서만 고민하면 그만일까요?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은퇴 준비는 조금 더 폭넓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처럼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 소외, 무위까지 포함해 은퇴 후 삶을 설계해야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경제적인 문제는 계산기를 잘 두드리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은퇴 후 삶을 결정 짓는 변수 중 가장 중요한 건 경제”라면서 말이죠. 그래서 또다른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우리보다 대략 20년 전부터 인구고령화를 겪은 일본의 설문조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2년 일본의 한 경제전문지는 노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은퇴 후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구체적인 답을 얻기 위해 ▲돈과 생활 ▲건강 ▲일과 인간관계 등 3개 영역으로 나눠 조사했습니다.


일본의 은퇴자들은 가장 후회하는 것으로 저축(돈과 생활), 치아관리(건강), 취미 만들기(일과 인간관계)를 꼽았습니다. 일본 은퇴자는 먼저 저축만 잘해도 은퇴 후 경제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눈여겨볼 건 치아관리와 취미 만들기를 후회 포인트로 삼았다는 겁니다. 이는 은퇴 후 삶이 ‘투자’나 ‘재무설계’가 아닌 최소의 경제력과 건강에 좌우된다는 걸 잘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국내 보험회사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 게 많습니다. 최근 국내의 한 보험회사는 은퇴자 93명에게 ‘은퇴 후 가장 후회하는 것’을 물어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체력단련을 못한 것’을 선택한 은퇴자가 14.9%로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것(11.7%)’보다 3.2%포인트나 높게 나타났습니다. 건강이 은퇴 후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얘기입니다.

사실 노년층의 건강은 우리 사회에서 무시하지 못할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노년층 건강이 건강보험뿐만 아니라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정 문제로도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건강보험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이전인 2019년 2조9239억원의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재정지출은 2015년 3조7399억원에서 2019년 8조1579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자녀세대에게 부담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에서 차감되는 장기요양보험 금액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돈보다 중요한 은퇴 요소 

필자는 금융권에서 30년 이상 일을 했습니다. 상품판매 중심으로 이뤄지는 금융상담이 싫어 프리랜서로 생활했습니다. 그때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은퇴 후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남산을 걸어서 올라가지 못한다면 행복한 은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렇게 강조합니다. “은퇴 후 전원생활 하겠다고 잔디가 깔린 멋진 단독주택을 지었어도, 병치레 때문에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들락거리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래서 은퇴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당부합니다. 

|행복한 은퇴를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은퇴설계의 중심은 ‘돈’이 아니라 ‘행복한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건강’이 첫 요소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멋진 은퇴’를 설계하는 방법입니다. 

글 = 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naver.com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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