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연세로 가보니…
대중교통전용지구 시범 해제
차 다녀도 상권 살아날지 의문
신촌 상권 진짜 문제는 콘텐츠

차 없던 거리에 다시 차가 다닌다. 상권을 살리겠다는 구청장의 공약이 한몫했고, 상인들의 실낱같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차가 다닌다고 상권이 살아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직진하느라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고, 차들은 바퀴를 바쁘게 굴렸다. 다시 차가 달리는 그곳, 신촌 연세로를 더스쿠프(The SCOOP)가 가봤다.

연세로에 9년 만에 다시 일반차량이 통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연세로에 9년 만에 다시 일반차량이 통행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연세로는 신촌오거리에서 연세대까지 뻗어있는 약 550m 길이의 도로다. 2014년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이곳에선 시내버스, 구급차, 자전거 등만 통행할 수 있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오후 10시까지는 차량 운행도 전면 금지해왔다. 

그러던 중 서대문구가 지난해 10월 9일 ‘차 없는 거리’를 종료했다. 금~일요일에도 차량 통행이 가능하도록 한 거다. 올해는 한발 더 나아가 1월 20일부터 9월 30일까지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시범 해제했다. 이에 따라 현재 모든 차량(이륜차 제외)이 24시간 연세로를 통행하고 있다. 서대문구는 6월 말까지 연세로 상권(매출액 등)과 9월 말까지 교통(통행속도 등)을 모니터링한 뒤 그 결과를 분석해 최종 운영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는 사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그는 지난해 6월 실시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나서며 연세로의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당선 직후엔 “취임 첫 업무로 차 없는 거리를 (차 있는 거리로) 원상회복하겠다”며 해제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신新대학로를 만들어 신촌 상권을 살리겠다’는 그의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는 반드시 필요한 조각이었던 셈이다.

물론 상인들의 요구도 컸다. 지난해 8월, 신촌 상인 1984명은 연세로에 차량 통행을 허용해달라는 탄원서를 서대문구청에 제출했다. 차량 통행을 허용해 유동인구가 늘면 침체한 신촌 상권도 살아날 거란 기대감이었다.

그렇다면 대중교통전용지구를 시범 해제한 지 두달째인 연세로는 어떤 모습일까. 서대문구청장과 상인의 기대대로 신촌 상권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을까. 3월 27일 오후, 벚꽃 잎이 흩날리는 연세로를 가봤다. 

이곳 연세로는 유동인구가 많다. 학교를 오가는 대학생들과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하는 이들로 늘 북적이고, 그 덕에 신호가 한번 바뀔 때마다 둑이 열린 듯 사람들이 쏟아진다. 그들을 기다리는 점포도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화장품 로드숍과 프랜차이즈 커피숍·패스트푸드점·즉석사진관·꽃집·옷가게·잡화점 등이 도로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골목 안쪽으론 밥집과 주점이 넓게 포진해 있다.

그날도 그랬다. 봄기운을 만끽하려는 이들로 거리는 여지없이 북적였고, 마침 연세로에서 명물거리 쪽으로 이어지는 곳에 위치한 스타광장에서 인기연예인의 버스킹 행사까지 열려 이를 보려는 사람들까지 몰려 평소보다 유동인구가 더 많았다. 하지만 그것 말곤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해제하기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눈에 띄는 게 있다면 벚꽃 인증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는 이들 옆으로 승용차들이 줄지어 지나다니는 것이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품었던 ‘점포도, 사람도 많은데 왜 다 텅텅 비어 있을까’란 의문은 여전했다. 종종 눈에 띄던 ‘임대’ 점포들도 그대로였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자료|더스쿠프]
[사진|더스쿠프 포토, 자료|더스쿠프]

왜일까. 그 답은 사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 마주한 사람과 차는 모두 ‘직진’한다. 사람들은 지하철 2호선 신촌역 또는 연세대 쪽으로 이동하고, 차들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연세로를 빠져나간다.

지난해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 이슈가 불거졌을 때 시민단체와 학생들, 일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일반 차량이 다닌다 해도 상권 활성화에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촌 상권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오수(가명)씨도 이렇다 할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가게 앞을 청소하며 영업 준비에 한창이던 그는 “차량 통제를 해제했지만 아직까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면서 “이제 두달 지났으니까 좀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님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확 줄었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바뀔지 모르겠다.”

닭갈비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정선우(가명)씨는 “차를 가져와도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아서 여기 올 땐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서 “벚꽃도 구경할 겸 모처럼 신촌에 나왔지만 요즘은 주로 망원동이나 연남동에 간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오수진(가명)씨는 “차들이 다니니까 걸어다니는 것만 더 불편해진 기분”이라고 거들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연세대, 이화여대는 물론 인근의 창천교회, 현대백화점 등과 주차장 사용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지만, 정씨와 오씨가 신촌에서 발길을 돌린 가장 큰 이유는 즐길 거리가 많지 않아서다. 그는 “망원동이나 연남동은 핫플레이스가 많아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다”면서 “하지만 신촌은 특색 있는 식당이 없고, 놀거리도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차량 통행 여부를 두고 팽팽하게 맞설 게 아니라 상권이 침체한 이유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얘기는 몇 년 전부터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모무기 서경대(도시공학과) 교수 역시 “상권이 침체한 이유를 분석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로를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운영한 초기에는 성과가 분명히 있었다. 유입력이 있었고, 상권 매출도 증가했다. 하지만 2018년을 기점으로 매출이 감소했다. 거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쳤다. 이걸 무조건 차량 통제 영향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즈음 홍대와 성수동 등 다른 지역이 핫플레이스가 됐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모무기 교수는 공공의 이익과 민간의 이익이 모두 부합하는 결론을 내리려면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를 면밀하게 진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인들의 요구대로 대중교통전용지구를 해제했다가 신촌 일대 교통 정체가 심해지면 그건 다시 상권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교통문제든 상권문제든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한쪽에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했다는 지적도 내놓는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대립각을 세우는 게 아니라 원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거다. 이 간단하면서도 쉽지 않은 숙제를 연세로에선 풀 수 있을까.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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