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제조업 視리즈 5편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만드는 곳에서 보는 곳으로
준공업지역 개발 계획까지 겹쳐
갈 곳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떠날 운명 처한 문래동 작은 공장

오랫동안 작은 공장의 보금자리였던 문래동은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그 역할을 상징하는 건 도림로 골목길에 있는 커다란 망치였다. 하지만 조형물 앞에 있던 공장마저 이젠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문래동의 정체성이 ‘만드는 곳’에서 ‘보는 곳’으로 문래동이 바뀌고 있다는 방증이다. 여기에 개발 바람까지 더해졌다. 문래동 작은 공장은 그래서 ‘불확실한 미래’와 싸우고 있다. 

도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걷기 시작하자 공장 대신 카페와 전시관이 생긴 문래동을 볼 수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도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걷기 시작하자 공장 대신 카페와 전시관이 생긴 문래동을 볼 수 있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여기는 도림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의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도로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문래동 2, 4, 5가가 있고 동쪽으로는 3가, 남쪽으로는 1가, 북쪽으로는 6가가 있다. 

도림로의 남쪽 끝에서 북쪽으로 서서히 올라가다 보니 33㎡(약 10평) 내외의 작은 공장이 도로를 앞에 두고 빼곡히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짐을 옮기는 트럭이 그 공장을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공장 바닥엔 새롭게 만들어지는 금속 부품과 자재에서 떨어져 나온 쇳밥이 쌓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도림로엔 부품을 찍어대는 공장만 있는 건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이곳에는 공장 대신 카페와 작은 음식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림로에서 살짝 벗어난 골목길로 걸음을 옮기니 커다란 망치가 거꾸로 서 있는 형태의 조형물이 보였다. 문래동의 작은 공장을 상징하는 조형물이지만 그 앞에는 이제 ‘공장’ 대신 ‘전시관’이 있었다. ‘만드는 곳’이었던 문래동이 이제 ‘보는 곳’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 같았다. 

그곳에 서서 스마트폰을 켜고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했다. 앱의 기능 중 하나인 지적地籍 편집도로 보면 문래동 일대는 온통 보라색이다. ‘준공업지역’이라는 뜻이다. 준공업지역은 도심 내에 공장이 허용된 곳이다. 그렇다고 공장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반음식점이나 카페 같은 휴게음식점도 얼마든지 들어올 수 있다. 

통계청의 통계지리서비스에 따르면, 2023년 1분기부터 3분기까지 영등포구 문래동에 생긴 일반음식점의 수는 2022년 같은 기간 61개에서 70개로 14.7% 늘었다. 공장이 다른 용도의 건물로 바뀌는 걸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골목에서 도림로 중심으로 빠져나왔다. 길을 따라 좀 더 북서쪽으로 움직였다.

준공업지역엔 아파트 단지도 있다. 준공업지역 내 공장은 오염 물질을 기준치 이하로만 방출할 수 있어서 주택과의 공존이 가능하다. 공장이 카페나 전시장으로 바뀌고 있는 지금, 아파트 단지도 ‘재건축’을 꿈꾸고 있었다.

1983년에 만들어진 A 아파트 단지 정문에는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붙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조합 설립) 동의율 75% 초과 달성’. 작은 공장이 모여 있던 문래동이 달라질 것임을 예고하는 현수막이기도 했다.

서울 안에서 아파트 재건축이 이뤄질 때는 그 아파트만 변하는 게 아니다. 주변도 함께 ‘고밀 개발 압력’을 받는다. 특히 준공업지역은 2020년대 들어 ‘개발해야 하는 곳’으로 점찍혔다. 정부는 준공업지역의 용적률을 높이고 규제를 완화해 주택이 들어설 수 있는 문턱을 낮췄다.

영등포구에도 개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올 4월 영등포구와 서울소공인협회는 문래동에 있는 작은 공장들이 옮겨갈 수 있는 이전 후보지를 찾고 제조업 발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9월엔 영등포구는 문래동 작은 공장이 실제로 이전한다면 공장이 떠난 자리에 4차 산업을 키울 수 있는 거점을 만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공장보다 더 많은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식당과 카페가 들어오고 지자체까지 이전을 기정사실화했으니, 작은 공장들은 이제 ‘떠나야 할 운명’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다시 도림로. 이번엔 북서쪽 끝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곳에서부터 도림천까지가 문래동 4가의 일부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곳곳에서 만난 빈 공장들의 유리문엔 ‘임대’를 알리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주말에도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공장은 10곳 중 1곳가량에 불과했다. 일부 공장에는 ‘백년소공인’이라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문래동을 떠나더라도 작은 공장을 운영할 수만 있다면 ‘백년소공인’이라는 말엔 그만큼의 무게가 생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문래동의 앞날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휴일에도 기계를 돌리던 T정밀의 대표는 그 어느 것도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재개발한다는 소식이 나돈 건 하루이틀이 아닌데 솔직히 언제쯤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다”며 “(작은 공장) 이전 사업의 경과는 잘 모른다”고 털어놨다.

연말에 이전 후보지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하자 “(우리가) 옮겨갈 만큼 좋은 곳이 있기는 한가”라고 되물으며 “어디로 가든 공장을 계속 운영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장소를 옮기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란 얘기였다.

또 다른 공장의 사장 역시 “경리조차 고용하지 못하는 공장이 많다”며 “경기가 어려운 데다 거래처를 구하는 것도 어려워 공장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이쯤 되면 개발론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희망이 꺾인 곳에 필요한 건 지킴이 아니라 개발이다.” 문래동 작은 공장에 활력이 사라진 건 사실이다. 어쩌면 흉물처럼 보이는 작은 공장을 쓸어버리고 멋들어진 건물이나 카페를 짓는 게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의 가치다. ‘제조업의 실핏줄’ 작은 공장을 지키면 더 의미 있는 경제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더구나 활력을 잃은 문래동 작은 공장에 ‘희망’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불확실한 작은 공장의 미래에 꿈을 거는 사람들도 있다. 작은 공장의 담벼락에서 피어난 ‘희망의 꽃’ 이야기는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작은 공장 여섯번째 편에서 이어가겠다. <다음호에 계속>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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