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현행법상 무인 헬스장은 불법
하지만 무인 필라테스는 합법
헬스장은 직원 상주해야 하지만
필라테스는 상주 의무 없기 때문
뚜렷한 기준 없는 오락가락 규제
현장 중심의 제도 개선 필요해

# 최근 인기몰이 중인 무인 헬스장은 불법이다. 현행법상 영리 목적의 헬스장엔 반드시 체육지도자가 상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구운동으로 인한 부상과 뜻하지 않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 그런데, 기구를 활용하는 무인 필라테스는 합법이다. 나홀로 기구를 사용하다간 부상이나 사고 우려가 있는데도 별다른 규제가 없다. 왜일까. 두 업종의 합법과 불법을 가른 요인은 뭘까. 혹시 여기에도 행정편의주의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더스쿠프가 이 질문에 펜을 집어넣었다. 

무인 헬스장은 불법이지만 무인 필라테스는 합법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ㆍ더스쿠프 포토]
무인 헬스장은 불법이지만 무인 필라테스는 합법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ㆍ더스쿠프 포토]

‘무인無人’ 콘셉트를 내세운 체육시설이 전국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무인 헬스장’이란 키워드로 검색하면 집 주변에 있는 매장을 손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무인 체육시설이 늘어난 이유는 간단하다. 트레이너의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든 체육시설이 적지 않아서다. 무인 매장은 직원이 상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인건비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팬데믹 이후 타인과 마주하길 원치 않는 이들이 늘었다는 점도 무인 체육시설의 증가와 무관치 않다.

■ 무인 헬스장: 불법 = 그런데 여기엔 ‘반전’이 숨어 있다. 인기몰이에 성공한 무인 헬스장은 모조리 불법이다.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영리 목적의 헬스장은 반드시 체육 지도자를 배치해야 한다. 운동 전용 면적 300㎡(약 90평) 이하면 1명 이상, 300㎡ 이상이면 2명이 기준이다. 이를 어겼을 땐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불법 논란이 커지자 정부와 지자체도 관리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잘못된 운동으로 인한 부상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헬스장에는) 체육 지도자를 둬야 한다”며 “현재 무인 헬스장의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상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인력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은 납득할 만하다. 헬스장엔 무거운 기구가 많아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다칠 우려가 크다. 부상을 당했을 때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할 필요성도 있다.

■ 무인 필라테스: 합법 = 문제는 무인 체육시설이 모두 ‘헬스장’처럼 불법은 아니란 점이다. 최근 인기가 많은 ‘무인 필라테스’는 합법이다. 두 유사한 시설을 둘러싼 법적 판단이 다른 이유는 근거법에 있다.

신고 체육시설업인 무인 헬스장의 근거법은 언급했듯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이다. 여기엔 ‘무인 매장’을 할 수 없는 법들이 명시돼 있다. 반면, 필라테스는 ‘자유 업종’에 속해 별도의 신고 절차 없이 사업자 등록만으로 운영할 수 있다. 관할 지자체에서 관리하지 않고 체육 지도자가 상주해야 할 의무도 없다.

그렇다면 합법인 무인 필라테스는 전문인력이 없어도 괜찮은 걸까. 더스쿠프 취재팀은 한 포털사이트의 예약 프로그램을 통해 무인 필라테스를 이용해 봤다. 가격은 9000원대. 1시간가량 매장을 혼자 쓸 수 있었다.

문자로 ‘이용 안내 미숙지로 인한 불이익 발생 시 모든 책임은 이용하는 고객님께 있다’는 경고 문구가 왔다. 필라테스 기구의 이용법을 안내하는 문구는 문자 어디에도 없었다. 33㎡(약 10평) 크기의 방에는 캐딜락·리포머·바렐 등 필라테스 기구와 아령·웨이트볼을 비롯한 작은 도구들이 있었다.

영리 목적의 헬스장은 반드시 체육 지도자를 배치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영리 목적의 헬스장은 반드시 체육 지도자를 배치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이중 침대 형태의 매트에 평행봉을 연결한 캐딜락은 언뜻 봐도 위험할 듯했다. 중심을 잃고 떨어지면 크게 다칠 가능성이 있었다. 캐딜락은 양손으로 봉을 잡고 발은 평행봉과 연결한 고리에 끼워 1.8m 높이의 공중에서 스트레칭하는 기구다.

이 때문에 무인 필라테스 업종을 규제하지 않는 건 법적 공백이란 지적이 많다. 무인 헬스장을 규제하는 이유가 ‘부상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강준구 아트필라테스 청담 부원장은 “필라테스는 기구 자체가 위험할 수 있어 수업할 때도 강사들이 수강생을 계속 보조한다”며 “만약 일반 회원이 혼자 운동을 한다면 실수로 크게 다칠 수 있다”고 말했다.

강덕모 세종대 산업대학원(스포츠학과) 교수는 “필라테스에서 기구를 사용하는 것과 헬스에서 중량 운동을 하는 것은 동일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면서 말을 이었다. “안전 사고의 가능성은 두 시설 모두 동일하게 존재한다.

특히 필라테스는 운동 중 밸런스를 유지하지 못하면 낙상 사고의 위험이 있다. 헬스와 필라테스 둘 다 무인으로 운영하면 안전사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안전과 형평성을 고려하면 필라테스 매장에도 헬스장과 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 오락가락 규제의 폐해 = 그렇다면 무인 필라테스의 법적 규제망을 만들면 모든 게 끝날까. 그렇지 않다. 무인 헬스장은 헬스장대로, 무인 필라테스는 필라테스대로 ‘동상이몽’ 중이다.

무인 필라테스 매장을 운영하는 한혜주(가명)씨는 “직원들과 대면하지 않는 게 편해 꾸준히 찾는 손님들이 많다”며 “아무 문제도 없어 규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무인 헬스장 운영자들은 ‘규제를 풀어달라’고 아우성이다. 경기도에서 2년째 무인 헬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광식(가명) 사장은 “필라테스 매장과의 규제 차이는 불공평하다”며 “규제를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사장의 말을 더 들어보자. “직원이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운동하길 바라는 사람들이 늘어나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실제로 아파트에 있는 헬스장엔 24시간 상주하는 트레이너가 없다. 일본의 경우 무인 헬스장 사업이 합법인 데 비해 낡은 규제다.”
 

[사진=뉴시스ㆍ더스쿠프 포토]
[사진=뉴시스ㆍ더스쿠프 포토]

이처럼 무인 매장을 둘러싼 ‘오락가락 규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이스크림·과자 할인점에서 시작한 무인 매장이 프린트 카페, 옷 가게 등으로 빠르게 진화 중이란 점을 감안하면 법적·제도적 공백은 시장의 혼란을 부추길지 모른다. 전문가들 역시 무인 매장에 일관된 규제를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양원석 한국체육학회 전문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무인체육시설을 무조건 불법이라고 재단하기보단 공청회를 열어 현장의 이야기를 들은 후 현장 중심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 권리를 침해하는 정책과 규제를 감시하는 소비자정책단체 컨슈머워치의 곽은경 사무총장도 “시장을 장기적으로 보기 위해선 공청회를 통해 소비자 등 많은 사람과 의견을 나눠야 한다”고 꼬집었다. 무인 헬스장은 불법 무인 필라테스는 합법이란 기묘한 촌극을 풀어낼 해법은 ‘공론화’에 있다는 조언이다.

홍승주 더스쿠프 기자
hongsam@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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