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➊
글꼴개발업체 저작권 소송 남용
소송 휘말린 비영리법인들 한숨
저작권 보호냐 합의금 사냥이냐
손배액 법적 근거도 기준도 없어

도를 넘는 글꼴 저작권 지키기 소송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도를 넘는 글꼴 저작권 지키기 소송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 저작권은 보호받아 마땅한 권리다. 인터넷을 넘어 AI 시대가 활짝 열린 지금, ‘저작권 보호’는 더 중요한 가치가 됐다. 하지만 저작권을 보호하는 수단도 정당해야 한다. 그 수단이 저작권자의 탐욕을 채우는 데 쓰여선 안 된다. 

# 문제는 ‘저작권 보호 수단’을 돈 버는 도구로 활용하는 이들이 숱하단 점이다. 그런 저작권자와 손잡고 돈벌이를 하는 법무법인도 있으니, 말 다했다. 그러다 보니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정당한 조치를 하고도 반감을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회적 갈등이 커진다는 얘기다. 

# 저작권 보호, 대체 어디까지 이해해야 할까. 저작권을 빌미로 돈을 뜯어내는 ‘꾼’들을 통제할 방법은 없을까.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2019년 5월 한 비영리법인(NGO) 대표에게 “글꼴(폰트)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증명이 날아들었다. 이상한 건 해당 글꼴은 비영리로 사용할 경우 무료였다는 점이다. NGO 대표는 누가, 언제, 어떻게 저작권을 침해했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 1편이다.

“끝도 없는 소송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2021년 10월 비영리법인 러빙핸즈의 박현홍 대표가 더스쿠프 취재팀을 만나 답답함을 토로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 이유는 당시 게재한 기사 ‘어느 폰트개발업체의 무서운 소송 글꼴 지키기인가 사냥인가(더스쿠프 통권 463호)’에 잘 나타나 있다.

[※참고: 러빙핸즈는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아이들을 돕는 NGO다. 아이들에게 성인 멘토를 1대1로 연결해 ‘아동보호의 법적 사각지대’를 메우는 게 이 NGO의 목적이다.] 

기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2013년 러빙핸즈에서 활동하던 자원봉사자 는 홍보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터넷에서 제공된 무료 글꼴을 사용했다. 자원봉사자는 ‘비영리 목적이라면 무료’라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6년 후인 2019년 해당 홍보물을 확인한 글꼴개발업체 A사가 “러빙핸즈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러빙핸즈에 민ㆍ형사 소송을 걸었다. 박 대표는 A사와 합의점을 찾으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A사가 러빙핸즈가 사용한 글꼴만이 아닌 ‘글꼴 패키지 가격’을 고집한 탓이었다.

1심 결과는 엇갈렸다. 형사 소송은 기각됐지만, 민사는 달랐다. 법원은 러빙핸즈를 향해 “A사에 5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A사로선 일부 승소, 러빙핸즈로선 일부 패소였다.

문제는 A사가 여기서 소송을 끝내지 않았단 점이다. A사는 “저작권 위반을 발견할 때마다 별건으로 법적 다툼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3건의 소송을 더 걸었고, 러빙핸즈는 ‘50만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저작권 보호는 필요하지만 고소권을 제한할 필요도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저작권 보호는 필요하지만 고소권을 제한할 필요도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실 A사의 행태는 ‘저작권 침해자 사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A사가 처음엔 글꼴을 무료로 배포하고, 적극적으로 제한 규정을 두지 않아 저작권 침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도한 점, ▲A사가 실제 사용된 글꼴의 낱개 가격이 아닌 글꼴 꾸러미 전체의 가격(러빙핸즈 측이 받아들일 수 없는 가격)을 제시한 점, ▲A사는 이미 다양한 기관과 기업들을 상대로 500건이 넘는 형사고소와 민사소송을 제기한 이력이 있다는 점, ▲A사가 글꼴 유포자들을 고소하지 않고, 기관이나 기업만을 대상으로 삼은 점 등을 보면 그랬다. 

오죽하면 A사의 형사고소건을 진행하던 검찰조차 “A사는 애초에 저작권법 위반을 조장한 후 이를 잘 모르고 사용한 업체들을 대상으로 고소를 하고, 수사기관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저작권 보호’가 아닌 사실상 ‘합의금 장사’가 목적이 아니냐는 게 검찰의 판단이었다. 

그렇다면 소송 결과는 어땠을까. A사가 추가로 제기한 3건의 민사소송에선 러빙핸즈가 승소했다. 법원 판결의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해당 글꼴을 사용한 사람이 수많은 자원봉사자 중 한명이었기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저작권을 침해했는지 특정할 수 없고,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

[※참고: 다만, 당초 ‘50만원 지급’을 결정한 판결은 뒤집히지 않았다. 법원이 똑같은 사건에서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셈이다. 러빙핸즈는 “사실상 같은 사건이니 병합해서 판단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지만, 법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사건 다른 판결’의 문제점은 추후에 분석해볼 계획이다.] 

어쨌거나 러빙핸즈는 ‘대부분 승소’로 A사와의 소송전을 끝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기업’이 숱하다는 점이다. 특히 저작권 침해자가 영리기업일 경우엔 철저히 A사의 먹잇감이 됐다.

인쇄ㆍ편집디자인업체 B사의 대표 C씨는 2013년 교회 현수막 디자인 시안 등을 작업물로 만들어 자사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8년 A사가 자신들의 글꼴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B사를 고소했다. 이 소송에서 B사 대표 C씨는 ‘교육이수조건부 기소유예’ 결정을 받았다. 큰 처벌은 아니지만, 죄가 인정됐다는 얘기다. 

그러자 A사는 이를 근거로 C씨에게 1980만원을 요구했다. A사가 ‘30인 이하 기업(3인 사용자 기준)’에 글꼴을 제공하고 받는 연간 사용료(300만원)에 게시물의 게시연수를 곱한 금액(부가세 별도)이었다. 그만한 돈을 낼 수 없었던 C씨는 결국 소송을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A사에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C씨는 A사가 요구했던 금액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소송을 마무리지었지만, 아쉬움은 남았다. 100만원이라는 손해배상액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서다. 100만원은 법원이 ‘제반 사정 등을 종합해서’ 자의적으로 책정한 A사의 손해액이었다. 

일부 저작권자는 형사고소를 자신의 이익 극대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사진=연합뉴스]
일부 저작권자는 형사고소를 자신의 이익 극대화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사진=연합뉴스]

그나마 다행인 건 글꼴 저작권 침해 관련 이슈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글꼴 저작권 상담 건수(상담원 상담 기준)는 2019년(3886건)을 기점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엔 904건으로 줄었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글꼴 저작권 침해 방지를 위한 다양한 캠페인으로 인해 사용자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고, 플랫폼 기업들이 이용자를 대신해 저작권자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용방식도 개선됐다”며 “이로 인해 글꼴 저작권 침해 이슈가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고소를 무기로 내세운 ‘저작권 사냥’은 줄어들까. 그렇지 않다. 이게 무슨 말일까. 이 질문의 답은 視리즈 ‘글꼴 저작권 사냥’ 2편에서 찾아보자.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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