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조의 노후준비 ‘우습게 생각하기’❹ 디폴트옵션 논란

DB형, DC형도 잘 모르겠는데, 이번엔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거세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노동자가 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미래투자에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신의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도 모르는 노동자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미래는 긍정적이지 않다. 제도 도입에 앞서 금융교육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을 둘러싼 찬반논란이 거세다.[사진=뉴시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을 둘러싼 찬반논란이 거세다.[사진=뉴시스] 

200조원이 넘는 자금을 굴리는 퇴직연금의 저조한 수익률이 지탄받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퇴직연금의 수익률 성적표도 초라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연금의 적립금 규모는 255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 221조2000억원 대비 15.5%(34조3000억원) 늘어났다.

하지만 수익률은 2.25%에서 0.33%포인트 상승한 2.58%에 그쳤다. 지난해 국민연금의 수익률 9.70%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 32.1%과 비교하면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지난해 최저임금 상승률 2.9%보다도 낮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저조한 이유는 원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이 매우 높아서다.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기보다는 원금을 지키는 데 퇴직연금의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게 문제라는 얘기다. 지난해 퇴직연금 중 원리금보장형의 비중은 89.3%(228조1000억원)에 달했다.

퇴직연금이 은퇴 후 노후를 책임지는 3층 연금 구조에서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이 낮을수록 노후가 불안해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이유다.

그중에서 최근 논란을 낳고 있는 것은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다.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Defined Contribution)형’ 퇴직연금 가입자가 자산 운용 방식을 결정하지 않았을 때 금융회사가 자동으로 상품에 투자하게 하는 제도다.[※참고 : 디폴트옵션을 도입을 위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올해 2월 발의돼 국회 소관위에 머물러 있다.]

디폴트옵션의 목적은 노동자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원금보장형 상품에 방치돼 있는 퇴직금을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해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거다. 미국의 대표적인 DC형 퇴직연금으로 자리 잡은 401K의 한국판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미국의 401K는 디폴트옵션으로 연간 7%의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 디폴트옵션을 잘만 활용하면 저조한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원금보장형 위주의 퇴직연금제도를 수익형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법 개정에 앞서 이뤄져야 할 퇴직연금에 대한 노동자의 인식 개선이 뒷전으로 밀려난 건 아닌지 우려된다. 투자는 항상 리스크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수익의 또 다른 이름은 위험이다.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은 투자 불변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제도 개선에 앞서 이뤄져야 할 금융교육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도 문제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대부분 노동자는 퇴직연금의 운용 방식에 관심이 없다. ‘회사가 알아서 관리해주겠지’라고 생각하는 노동자가 태반이다.

디폴트옵션 도입된다면…

금융투자협회가 2018년 실시한 ‘퇴직연금 가입자 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입자 10명 중 3명은 자신의 퇴직연금이 어떤 형태로 운용되는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 안정성이 바탕이어야 할 퇴직연금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디폴트옵션 도입에 따른 퇴직연금 수익률 상승 기대보다 원금 손실의 두려움이 더 크다는 얘기다.

손실이 발생했을 때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도 디폴트옵션의 위험요인이다. 수익은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인식을 가진 투자자라면 어느 정도의 손실은 감내할 수 있다. 자신의 선택이 투자 결과로 이어졌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 손실이 자신의 선택의 아닌 법 개정이 만든 결과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만약 디폴트옵션 도입 이후 손실을 본 노동자들이 많다면, 이들은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정부는 투자 손실을 세금으로 메우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노동자의 인식 변화와 금융교육을 선행하지 않은 채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 부작용이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디폴트옵션 도입이 능사가 아니라는 건 일본의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일본은 2018년 5월 우리나라와 같은 이유도 퇴직연금에 디폴트옵션을 도입했다.

DC형 퇴직연금 가입자의 약 70%가 자산운용 방법을 변경한 적이 없는 데다, 전체 적립금의 70.7%가 원금보장상품으로 운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2017년 3월 기준). 하지만 디폴트옵션 제도의 도입에도 원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은 2018년 76.3%로 되레 높아졌다. 시장에선 일본의 디폴트옵션에 원금보장형 상품인 예금을 포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일본은 투자보다 저축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나라다. 오죽하면 겨울엔 얼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난방해서 아낀 돈을 저축한다는 얘기까지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했던 지난해 일본 정부가 1인당 10만엔(약 102만원)씩 현금으로 지급한 정부지원금을 소비에 사용하지 않고 저축을 했다는 기사도 있다. 지난해 2분기 일본의 가계 저축률(23.1%)이 199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이유다. 투자가 일반화해 있는 미국과는 다르다.

섣부른 제도 도입 효과 있을까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닌 일본을 닮았다. 지난해 불었던 주식투자 열풍에도 가계저축률은 2019년 6.0%에서 10.2%(추정치)로 4.2%포인트나 상승했다. 가계저축률이 10%대를 기록한 것은 1999년(13.2%) 이후 21년 만이다. 이는 불확실한 시대엔 투자보다는 저축을 해야 한다는 우리나라 고유의 투자 문화가 작용한 탓일 것이다.

투자를 향한 인식과 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디폴트옵션을 도입해도 퇴직연금 수익률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다. 디폴트옵션 도입은 서두를 문제가 아니다. 퇴직연금제도의 인식을 개선하고 투자 교육을 실시하는 게 먼저다. 디폴트옵션의 논의는 앞뒤가 바뀐 듯하다.

글=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
iunclejo@naver.com | 더스쿠프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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