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송삼석 모나미 창업자
한국 필기구 사업 꽃 피워낸 모나미
최근 부진 극복하고 새 미래 맞을까

송삼석 ㈜모나미 창업자가 지난 1일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모나미 153 볼펜’ 신화의 주인공이었던 그는 한국 문구업계의 스타였다. 1960년대에 불모지였던 필기구 사업에 투신해 모나미를 국내 문구업계의 대표적 기업으로 키워낸 그는 한국 재계의 보석과도 같은 존재였다.

송삼석 창업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국내 최초 잉크 볼펜을 개발해 냈다.[사진=연합뉴스]
송삼석 창업자는 각고의 노력 끝에 국내 최초 잉크 볼펜을 개발해 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일 송삼석 모나미 회장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를 아는 많은 이들이 애석해했다. 그는 집념과 사랑의 기업인이었다. 자신의 아호 ‘항소恒笑’처럼 험난한 사업 역정 속에서도 웃음과 온화함을 잃지 않고 직원들과 소통했다. 그는 초심을 살려 끝까지 중소기업 업종인 문구 사업에 매진해 한국 산업사史에 작지만 빛나는 족적을 남겼다.

송삼석 하면 떠오르는 게 ‘모나미 153 볼펜’이다. ‘국민 볼펜’으로 불리는 모나미 153은 출시 60년 동안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한국 필기구의 대명사가 됐다. 그는 32세였던 1960년 물감 제조업체인 광신화학공업사를 창업했다. 그때 내놓은 제품이 물감과 크레파스인 ‘왕자 파스’였다. 품질이 좋아 당시 학생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후 회사 설립 3년 만인 1963년 ‘모나미 153’을 시장에 선보여 결정적인 성공을 거둔다. 이후 모나미 볼펜은 60년에 걸쳐 무려 40억 자루 이상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렇다고 ‘모나미 153’이 우연히 대박을 터뜨린 건 아니다. 여기엔 송 회장의 집념이 숨어 있다. 1962년 5월 서울에서 국제산업박람회가 열렸다. 이곳에 전자계산기를 전시하러 온 일본 문구업체 우치다 요코의 직원이 볼펜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탐이 났던 송 회장은 볼펜 제작을 결심했다. 

그는 일본업체 직원이 ‘계산기 10대를 팔고 오라’는 특명을 받고 온 걸 눈치챘다. 계산기 한대 값이 2000달러나 했던 시절, 송 회장은 일본업체 직원의 문제를 적극 도왔다. 이를 고맙게 여긴 일본 직원은 우치다 요코의 사장을 송 회장에게 소개했고, 그 사장은 다시 볼펜 제조업체 ‘오토볼펜(우치다 요코의 문구제조업체)’을 연결해줬다. 

연결고리를 찾는 데 성공했지만, 잉크 볼펜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오토볼펜이 가르쳐준 기술이 ‘유성油性 잉크 제조기술’ 단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송 회장은 1년에 걸친 노력 끝에 국내 최초로 잉크를 담은 볼펜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집념이 없었다면 국내 최초 잉크 볼펜 ‘모나미 153’은 탄생하지 못했을 거란 얘기다. 

그는 ‘모나미 153’ 성공의 여세를 몰아 1967년엔 회사명을 모나미화학공업사로 바꿨다. 회사보다 제품 이름이 훨씬 유명해진 데 따른 조치였다. 당시 시장엔 ‘모나니’ ‘모하미’ ‘모내미’ 등의 이름을 단 유사품이 많이 나돌 정도로 모나미는 유명세를 치렀다. 1974년엔 한발 더 나아가 회사명을 아예 ㈜모나미로 바꿨다. 같은 해 정부의 업종별 대표기업 상장정책에 의해 증시에 상장까지 했다.

국민 볼펜 ‘모나미 153’  탄생

출시 당시부터 흰색의 육각형 몸체에 ‘mo nami 153 0.7’이란 문구를 새겼던 이 볼펜은 지금도 그때처럼 흑 · 청 · 적 3가지 색의 제품이 팔리고 있다. 심 끝에 금속구를 달고 별도의 잉크도 필요 없었던 이 볼펜은 당시 펜촉에 잉크를 찍어 쓰거나 만년필이 주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편리성 면에선 가히 혁명적이었다.

가격 부담도 없었다. 간결한 디자인과 성능, 뛰어난 가성비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값은 지금도 개당 300원 정도다. 하지만 송 회장은 출시 당시 소비자들의 고정관념과 엄청나게 싸워야만 했다. 직원들의 책상에서 펜을 치우고 볼펜만 쓰게 하거나 관공서나 회사 등을 돌아다니며 제품 홍보를 했다. 

‘모나미 153’과 관련된 일화는 더 있다. 몸체에 적힌 ‘monami 153 0.7’에서 monami (모나미)는 ‘나의 친구’를 뜻하는 프랑스어 ‘mon ami’에서 유래했다. 153에서 앞의 15는 15원(출시 당시 서울 시내버스 요금과 신문 한부 가격)이라는 뜻을 담았다. 뒤의 3은 모나미가 만든 세번째 제품이라는 의미다. 0.7은 필기 굵기다.

1963년 첫 출시된 모나미 153 볼펜은 국내 문구업계의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 없었다.[사진=뉴시스]
1963년 첫 출시된 모나미 153 볼펜은 국내 문구업계의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나 다름 없었다.[사진=뉴시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송 회장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21장 11절에 나오는 ‘베드로가 예수님이 지시한 곳에서 153마리라는 많은 물고기를 잡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구절도 떠올렸다. 153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면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상징적 숫자라고 생각한 그는 그 숫자를 쓰기로 했다. 

그는 물감과 볼펜 사업을 기반으로 사인펜 · 프러스펜 · 네임펜 · 보드마카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으며 한국 문구업계의 혁신을 주도했다. 필기구를 넘어 종합문구업을 지향하며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도 꾸준히 진출했다. 38년 동안 창업과 성장, 사업 다각화 등에 힘을 쏟아 모나미를 중견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

故 송삼석 회장 이후 모나미    

그는 1997년 70세 때 경영권을 장남 송하경에게 물려주고 후선으로 물러났다. 이후 25년간은 2세 3형제(하경 · 하철 · 하윤)가 역할 분담을 하며 회사를 이끌어 왔다.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이들은 젊은 감각을 살려 글로벌화, 사무용품 유통서비스 기업화 등을 도모하며 모나미 100년 역사 창조에 힘쓰고 있다.

현재 장남 송하경(63)은 대표이사 회장직, 차남 송하철(61)은 부회장직(비상근), 3남 송하윤(59)은 사장직을 각각 맡고 있다. 장손이자 송하경 회장 아들인 송재화(35) 이사가 3세 중에선 유일하게 경영(상품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계열사는 ㈜항소(수입문구 판매업) 등 7개다.

‘모나미 153’ 볼펜으로 문구 사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던 모나미는 최근 10여년간 사세社勢 위축으로 고전하고 있다. 10년 전인 2011년 2818억원을 기록했던 매출이 10년째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다. 지난해 매출이 1322억원으로 10년 전보다 53%나 줄면서 반토막이 났다. 최근 5년간 매출도 1300억원대를 맴돌며 답보 상태다. 전자문서 발달, 학령인구 감소, 코로나19 악재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위기 타개를 위해 모나미는 수년 전부터 신사업 진출을 도모해 왔다. 올해 주총(3월 29일)에서 화장품 사업(색조 분야)과 학원운영업, 문화예술 서비스업, 부동산 개발 · 공급업 등 14개 사업을 마침내 정관에 추가한 것도 위기 타개책의 하나로 읽힌다.

송삼석의 ‘모나미 153 볼펜’을 앞세워 한국 문구업계의 대표주자로 컸던 모나미가 2세들의 새로운 도전을 통해 최근의 후퇴 국면을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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