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자책, ‘아마존식 혁명’ 가능할까
한국 전자책, ‘아마존식 혁명’ 가능할까
  • 이지원 기자
  • 호수 313
  • 승인 2018.11.15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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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무제한 구독 서비스 빛과 그림자

종이책의 종말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됐던 전자책의 위세는 강하지 않았다. 전자책이 전체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 안팎에 그친다. 전자책 플랫폼 업체들은 최근 월정액 무제한 구독 서비스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답보 상태인 전자책 시장이 꿈틀댈 거란 장밋빛 전망과 자칫 기존 출판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뒤섞이고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전자책 무제한 구독 서비스의 빛과 그림자를 취재했다. 

전자책 플랫폼 업체들이 올해 들어 월정액 구독형 서비스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전자책 플랫폼 업체들이 올해 들어 월정액 구독형 서비스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넷플릭스’의 전자책 버전이라 불릴 만한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자책 유통업체들이 월정액 무제한 구독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어서다. 경쟁의 포문을 연건 ‘리디북스’다. 2009년 전자책 시장에 뛰어든 리디북스는 지난 7월 ‘리디셀렉트’를 출시했다.

매달 6500원을 결제하면 2600여권(출시초기 1000여권)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리디북스 관계자는 “양질의 도서를 선정해 제공하고 있다”면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도서 선택과 구매 과정을 간편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리디북스는 출시 이후 두달간 무료 체험기간을 거쳐 유료 전환했지만 가입자수 등 성과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또다른 전자책 유통업체 ‘밀리의 서재’는 리디북스보다 앞선 지난해 9월 월정액 서비스를 도입했다. 기존 ‘한달에 10권’ 제한을 푼 건 지난 7월이다. 월 9900원을 지불하면 2만5000여권의 도서를 무제한 읽을 수 있다. 최근에는 유명 연예인을 내세운 광고를 시작하는 등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서점업계도 출사표를 던졌다. 인터넷서점 예스24는 구독형 서비스 ‘북클럽’을 9월부터 시범운영 중이다. 11월 중 정식 서비스를 론칭할 예정으로, 도서 큐레이션을 장점으로 내세울 전망이다. 교보문고의 전자책 서비스 샘(Sam)도 월정액 무제한 요금제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샘은 기존에도 월정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카테고리ㆍ권수 제한을 두고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아직 서비스 준비단계로 내년 초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전자책 구독형 서비스는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2014년 출시한 ‘킨들 언리미티트’가 대표적이다. 월정액 9.99달러(약 1만1200원)에 전자책 100만여권과 오디오북을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아마존이 진출한 14개국 중 13개국(2018년 3월 기준)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아마존은 킨들 언리미티드를 통해 미국 전자책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아마존의 미국 전자책 시장점유율은 79.6%(데이터분석기관 오서어닝즈닷컴)로, 애플(12.0%)ㆍ비앤앤눅스(4.2%) 등을 압도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영국(82.0%), 호주(54.0%) 등 영미권 국가에서 아마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무제한 구독 서비스가 국내 전자책 시장 파이를 키울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의 아마존 꿈꾸나

실제로 종이책을 위협하며 성장할 거란 당초 전망과 달리 국내 전자책 시장은 답보상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자책 시장 규모는 2310억원(2016년)으로 전체 출판시장(3조163억원)의 7% 안팎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25%에 달한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현재 종이책의 60%가량만이 전자책으로 출판된다”면서 “전자책 시장이 아직 개화했다고 하기 어렵지만, 구독 서비스가 독자를 끌어 모으는 유인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두권만 읽어도 이득’이라는 광고 문구처럼 구독 서비스가 소비자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을 거란 전망이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적지 않다. 월정액 구독 서비스는 일종의 스트리밍 개념으로 다운로드 형태인 전자책 판매와 달리 수익 배분 구조가 명확하지 않다. 예컨대 독자가 도서를 얼마큼 읽었을 때 읽은 것으로 간주하고 수익을 출판사에 배분할 것인지 등이 업체마다 상이하다.

​​​​​​​지난해 아마존의 미국 전자책 시장점유율은 79.6%에 달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아마존의 미국 전자책 시장점유율은 79.6%에 달했다.[사진=연합뉴스]

전자책 유통업체 위주로 시장이 형성될 경우, 콘텐트 원작자나 출판사가 적정 가치를 제공받지 못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출판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일부 유통사는 베스트셀러에만 러닝개런티를 제공하고, 중소출판사와는 매절(일시불)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 경영환경이 어려운 중소출판사로선 거절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유통사가 갑이 되는 구조가 고착되면 장기적으로 도서 콘텐트 질이 악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박효상 대한출판문화협회 유통부분 상무는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나고 콘텐트 소비 방식이 달라지는데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합리적인 기준으로 유통업체와 출판사, 저자에게 수익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마존은 이와 같은 문제로 출판업계와 갈등을 빚어왔다. 미국 출판업계는 “아마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전자책 저가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이는 출판시장에 위협요인이다”고 우려했다. 미국의 빅5 출판사 중 일부가 아마존의 무제한 서비스에 콘텐트를 제공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하지만 업체간 계약에 공공부문이 개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수익 배분 문제는 유통업체와 출판사의 개별 계약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공공기관이 개입하기는 어렵다”면서 “서비스 도입 초기인 만큼 업계간 합의를 통해 기준을 마련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구독형 서비스가 유통업체들이 도서정가제를 피해가기 위한 꼼수로 작용할 수 있다. 그동안 전자책 유통업체는 10~50년 장기대여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전자책 판매의 경우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아 할인율이 15%로 제한되지만, 대여의 경우 유통업체가 가격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 유통업체들은 ‘사실상 구매’인 장기대여 서비스를 전자책 판매가격 대비 50% 이상 할인 제공했다. 예컨대 전자책 구매시 8000원인 도서가 50년 장기대여시 3000원인 경우가 발생했다. 장기대여 서비스가 도서정가제를 피해가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장기대여로 도서정가제 취지가 훼손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 4월 출판업계ㆍ유통업계ㆍ소비자단체 등은 ‘건전한 출판 유통발전을 위한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전자책의 대여기간을 최장 3개월(90일 이내)로 한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공교롭게도 구독형 서비스 마케팅에 불이 붙은 건 협약이 시행된 5월 이후다.

유통사 ‘갑’되는 구조 지양해야

출판업계 관계자는 “장기대여가 불가능해진 이후 구독형 출시가 잇따랐다”면서 “한 업체가 서비스를 출시하면 후발주자도 뒤따라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최근 들어 구독 서비스 마케팅이 활발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꼼수라기보다는 시장의 성장가능성이 있기 때문 아니겠나”고 말했다.

음반ㆍ영화에 이어 책도 디지털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게 된 셈이다. 한대웅 서울출판예비학교 교수는 “전통적인 출판 형태와 IT기반의 콘텐트 소비 형태가 충돌하는 변화의 시기”라면서 “앞으로도 이런 과도기적 갈등은 더 빈번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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