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양재찬의 프리즘
고환율 후폭풍 생활물가 비상
환율 오를 거란 기대심리 근절
기업의 국내 투자 유도 필요
서민층 지원, 유통구조 개선해야
원ㆍ달러 환율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경제 전반의 리스크가 커지고 민생이 위협받고 있다. 고환율 탓에 수입의존도가 높은 석유류와 축산물, 수산물, 과일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고환율·고물가의 이중고二重苦가 현실로 닥쳤다. 게다가 시중에 풀린 돈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물가상승을 압박하고 있어 확장 재정 정책을 추진하는 정부의 고민도 깊어졌다.
소비자물가는 10~11월 두달 연속 2.4% 상승률을 나타냈다.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치 2%를 9~11월 석달째 넘어섰다. 특히 소비자가 자주 구입하는 생활물가 상승률은 2.9%로 1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석유류가 5.9% 뛰면서 전체 물가를 0.23%포인트 끌어올렸다. 국제유가는 하락했는데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것이 결정타였다.
농축수산물 물가도 5.6% 뛰며 물가 오름세에 0.42%포인트 기여했다. 수입 소고기와 과일 및 코코아, 팜유, 커피 등이 물가 상승세를 주도했다. 밀가루와 설탕, 대두는 작황이 좋아 국제 시세가 떨어졌는데 고환율 영향으로 수입 가격은 소폭 하락에 그쳤다.
9월 통화량(넓은 의미의 통화 M2)은 지난해 9월 대비 8.5% 증가한 4430조5000억원이다. 통화량은 금리인하 사이클인 데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등 이재명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 영향으로 6개월 연속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 지출이 이어졌던 시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시중에 유동성이 풀리니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원화 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한국은행은 이런 상황을 반영해 지난 11월 말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0%에서 2.1%로,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9%에서 2.1%로 상향 조정했다. 원ㆍ달러 환율은 6월까지만 해도 1360원대에 머물던 것이 최근 1470원 안팎에서 맴돌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평균치(1394.97원)를 크게 웃돈다. 시장에는 1500원대를 예상하는 시각까지 있다.
원ㆍ달러 환율이 1%포인트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04%포인트 상승하는 구조다(한국개발연구원 KDI 분석). 환율이 ‘수입물가→생산자물가→소비자물가’로 이어지는 시차 등을 고려하면 고환율 후폭풍은 이제 시작이다.
이런 판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도 증시에서의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 때문에 불가능하다. 현재도 기준금리는 한국(2.5%)보다 미국(4.0%)이 높다. 더 큰 문제는 고환율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금리까지 밀어 올리는 상황이다. 정부의 환율안정 대책에도 환율과 물가 오름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한은이 이를 방관하며 금리를 현 수준에서 계속 묶어둘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고환율이 물가와 금리까지 끌어올리면 우리 경제는 고환율ㆍ고물가ㆍ고금리의 삼중고三重苦에 직면한다. 가계가 사상 최대인 1968조3000억원의 빚을 짊어진 판에 금리 상승은 치명타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음)’ ‘빚투(빚내 투자)’족의 고통이 커짐은 물론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한 ‘코스피 5000’의 길도 멀어진다.
대외 환경이 녹록하지 않지만 정부는 가용수단을 총동원해 고환율ㆍ고물가의 연결고리부터 끊어내야 한다. 물론 정부가 물가 상승세를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다.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농축수산물 비축 물량을 풀고 식품ㆍ사료 원료의 할당관세 지원을 지속하기로 했다. 치킨 등 식품업계의 슈링크플레이션(용량 꼼수) 차단 대책도 내놓았다.
고환율발 물가 상승을 억제하지 못하면 정부 지출을 늘려도 가계 살림은 고통을 덜지 못한다. 9조원의 소비쿠폰이 풀린 3분기에도 가계 실질소비는 0.7% 감소했다. 고환율로 인한 고물가가 지속되면 간신히 살아나는 내수가 다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집값도 더 불안해진다.
환율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끊어내야 한다. 과감한 규제혁파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성장과 혁신을 북돋고 국내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당장은 환율 불안이 실물경제로 번지지 않도록 물가 동향을 모니터링하면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서민들은 추운 겨울을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다. 일괄적인 유류세 인하가 아닌 서민층 집중 지원,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한 유통구조 개선이 절실하다.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한 정책과 입법도 자제해야 마땅하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해 무분별한 선심성 정책과 공약이 남발할 우려가 있다. 민생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한 퍼주기는 재정을 축내는 데 머물지 않고 물가를 자극해 민생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고환율ㆍ고물가의 악순환 고리를 조기에 끊지 못하면 민생도, 경제도 힘들어진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물가 관리가 민생 안정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했다. 공허한 말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비상한 각오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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