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디토는 새로운 트렌드일까
소비시장 관통한 트렌드 ‘디토’
개성 중시하는 소비 행태라지만
모방소비 · 동조현상과 비슷해
주체적인 소비로 볼 수 있을까
소비자로서 성장과 행복 찾아야
최근 소비시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트렌드가 있다. 바로 ‘디토소비’다. ‘나도 마찬가지’라는 뜻의 영어단어 ‘ditto’에서 유래했다. 디토소비는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나 추종하고 싶은 사람을 따라서 소비하는 현상을 말한다. 가령, 좋아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배역을 모방하거나 그곳에 등장한 장소를 찾아서 소비하는 거다. 그렇다면 이런 디토소비는 과거의 소비현상과 뭐가 다른 걸까.
허리부터 발목까지 몸에 딱 붙는 바지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똑같은 스타일의 바지를 즐겨 입었다. 이번엔 약속이나 한 듯 통 넓은 바지가 거리를 휩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의 유행을 따르는 것 같은데 소비자들은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한다. 스스로 선택한 주체적 소비라는 거다. 과연 그럴까.
상류층을 따라하는 ‘모방소비’나 친구를 따라하는 ‘동조현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서구식 개인주의가 확산하고,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지금은 결이 조금 다르다. 요즘 새롭게 등장한 용어 ‘디토소비(용어설명 참조)’가 이를 대변한다.
그 원인으론 ‘개인화한 미디어’를 꼽을 수 있다. 과거의 상업광고를 생각해보자. 대중매체를 통해 선보이는 제품과 서비스는 그 대상이 대규모의 소비자였다. 당연히 소비자에게 보이는 특성과 혜택도 보편적인 것이었다.
오늘날의 광고는 어떤가. 매우 세분화해 있다. 미디어 채널이 말할 수 없이 다양하고, 타깃 역시 그만큼 다양하다. 그들을 위한 맞춤 혜택도 아주 미세한 단위로 나뉜다. 소비자의 입장에선 예전보다 수월하게 나와 비슷하거나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을 찾을 수 있다.
갖고 싶은 제품을 발견하는 일은 과거보다 훨씬 쉽고, 보고 싶은 콘텐츠도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런저런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생략하고, 누군가를 따라 하거나 특정 콘텐츠를 따라서 소비한다. 쉽게 말해, 이전엔 ‘보편적 모방’이었다면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하는 형태’라는 거다.
그러니 정작 소비자는 ‘나와 남은 달라’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했던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의 유행을 따르는 것 같은데 소비자들은 이번에는 다르다고 말할까”란 질문의 답도 여기에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지점에서 냉정하게 따져볼 건 있다. 내 가치와 취향에 맞는 걸 선택했다곤 하지만 결국 ‘추종의 일종’인 디토소비를 ‘주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의 대답은 ‘No’다. 이 역시 결국엔 모방과 동조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개성과 주체성을 원하는 소비자를 설득하는 채널의 형태와 메시지의 내용이 달라졌을 뿐, 소비자들은 여전히 누군가를 따라 하고 있는 거다.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고 주체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건 사실상 착각에 가깝다는 얘기다.
오늘날 행해지는 대부분의 소비는 생존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자기(self)를 완성해가는 행위이다. 신체·정신·사회적으로 미흡한 부분에 화장을 하고, 옷을 입히고, 여행을 하는 소비행위를 통해 포장하고 보완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시장의 이런 변화에 따라 마케터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소비자가 소비라는 행위를 통해 이상적인 자기의 모습을 상상하고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소비환상’을 더 크게 심어주고 있다.
가령, 디지털 기술로 머리스타일을 바꿔볼 수 있게 한다거나 착장着裝 후 모습을 보여준다. 성형수술 전후의 모습을 목도한 다음 나의 소비는 환상에 그치지 않고 그때부터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이 되는 거다.
소비 욕구를 부추기고 환상을 키운다고 마케터들의 이런 행동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소비가 이뤄져야 시장과 산업이 발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새로운 소비환상에 노출되는 우리는 늘 부족하고 불만족스러운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소비수준이 아무리 좋아져도 소비사회가 늘 새롭게 제시하는 소비환상이나 소비표준과의 격차는 절대 좁혀지지 않는다. 그러니 예전처럼 대중매체 광고나 대중적인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엔 내가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누군가를 추종하는 소비, 다람쥐 쳇바퀴에 올라타는 소비를 할 수밖에 없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지난 몇년간 캠퍼스에선 슬림한 바지가 유행이었다. 너 나 없이 슬림한 바지를 입었다. 지금은 어떤가. 지난해 후반기를 기점으로 슬림한 바지가 하나둘 사라지더니 이젠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 변화를 보고 있자면 수천명 학생들의 바지폭을 일사불란하게 조정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유행 선도자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디토소비를 하면 당장은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단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내가 따르는 사람의 명성과 이미지를 이용해 반사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주체적인 소비자로서의 성장과 행복은 점점 더 멀어진다.
한가지 더 조언하자면 지금 유행처럼 번진 디토소비, 이를테면 주체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고 믿는 학생 소비자들이 그 결과물을 한번쯤 되돌아보면 어떨까. 그 선택이 정말로 주체적이었는지를 따져보면서 말이다.
김경자 가톨릭대 교수
kimkj@catholic.ac.kr
김미란 더스쿠프 유통전문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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