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일상에 필요한 法테크 | 유치권
회사 사정 어려워진 A씨
공사대금 주지 못할 지경
B씨 유치권 행사했지만…
법원이 경매 시작한 이후
한 발 늦은 B씨의 유치권 행사

빌려준 돈을 못 받았을 때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채무자의 물건을 확보한다. 돈을 받을 때까지 보관하기 위함이다. 이를 법률 용어로 ‘유치권’이라고 한다. 하지만 유치권 행사도 때가 있다. 타이밍을 놓치면 유치권 행사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유치권의 특수성을 알아봤다.

유치권 행사에도 타이밍이 있다. [사진 | 뉴시스]
유치권 행사에도 타이밍이 있다. [사진 | 뉴시스]

화장품 제조업체의 대표 A씨는 사업자금이 필요해 자기 소유의 공장 부지와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은행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지난 여름 집중호우로 공장 부지가 유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는 사업자 B씨에게 공장 부지 보강토의 축조공사를 맡겼다. 고맙게도 B씨는 공사비를 나중에 받기로 하고 공사를 진행했다.

이런 가운데 A씨가 대출금 이자를 갚지 못하자 은행은 근저당권으로 경매를 신청했고, 경매기입등기가 이뤄졌다. 경매기입등기란 경매가 시작됐음을 알리기 위해 등기부에 그 사실을 기입하는 것을 말한다. 회사 사정이 더 어려워진 A씨는 B씨에게 공사대금을 주지 못할 지경에 몰렸다.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B씨는 유치권留置權(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담보로 빌려준 돈을 받을 때까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맡아 둘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랴부랴 컨테이너 박스를 공장 입구에 설치하고 출입을 통제했다.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더불어 유치권 행사를 알리는 공고문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였다. 공사대금을 주지 못해 미안했던 A씨는 B씨가 공장 부지를 점유하는 것을 순순히 허락했다.

문제는 B씨가 유치권을 통해 공사비를 받을 수 있느냐다. 우선 유치권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세탁소 주인은 옷을 수선하면 그 대가로 수선비를 받는다. 그런데 수선비를 주지 않으면서 수선된 옷만을 돌려달라고 한다면 세탁소 주인으로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수선비를 받을 때까지 수선한 옷을 건네주지 않은 채 보관할 권리가 바로 유치권이다.

이를 B씨 사례에 빗대보자. A씨의 공장 부지에서 공사를 진행한 B씨는 공사대금채권을 갖고 있다. A씨가 공사비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장 부지를 점유함으로써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반인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공장의 출입을 통제하는 등 실제로 공장을 점유하고 있어야 한다.

[사진 | 뉴시스]
[사진 | 뉴시스]

이런 맥락에서 B씨는 유치권 행사의 모든 요건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부분이 있다. B씨가 경매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경매기입등기가 이뤄진 후 점유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근저당권자인 은행은 멀쩡한 부동산이라고 생각하고 경매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유치권을 주장하면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경매기입등기가 이뤄진 후 점유를 시작한 경우에도 유치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대법원의 입장은 이렇다. “점유의 이전은 목적물의 교환가치를 감소시킬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유치권을 내세워 부동산 경매 절차의 매수인에게 대항할 수 없다.” 경매 개시 기입등기가 이뤄진 후 유치권은 행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B씨는 낙찰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 한 발 늦은 유치권인 셈이다. B씨가 기대할 수 있는 건 A씨의 형편이 나아져서 공사대금을 받는 것뿐이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junhaeng@hotmail.com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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