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천막사진관 컬래버
제5편 건물 해체공사의 추억_02
응암동·숭인동 건물 해체의 기록
누천 천 뒤에서 벌어진 사라짐들
6층, 3층 높이 건물의 해체 과정
1~2주 만에 사라진 사람의 흔적
# ‘누런 천’이 건물을 두른다. 해체 작업의 시작이다. 바깥 사람들에겐 ‘누런 천’만 보이지만 안쪽 사람들은 하늘색과 누런 천에 비친 하늘빛을 만끽한다. 하지만 해체 현장은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다. 커다란 장비가 휘젓고 다니면서 한층씩 무너뜨린다.
# 건물과 사람이 남긴 수십년의 흔적은 그렇게 사라져간다. 길걷수다 ‘건물 해체공사의 추억’ 2편에선 누런 천 뒤에서 벌어지는 건설 해체공사의 절차를 ‘건축가’의 시선으로 살펴봤다.
■ 먼지비산방지망 = 해체공사 현장에 누런 천을 두른다. 해체공사 중 발생하는 먼지가 현장 외부로 날아가는 것을 막고 건축폐기물이 현장 밖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 누런 천을 보통 분진망·먼지비산방지망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인 마대자루 재질과 같다.
먼지비산방지망을 설치하기 위해, 두꺼운 원형 강관으로 비계틀을 짠다. 비계틀은 건물과 땅에 철물 등을 이용해 안전하게 고정한다. 그다음 누런 천을 철사로 꽁꽁 감아 단단히 고정한다.
먼지비산방지망을 건물에 두르고 나면 외부에서는 누런 천만 보이고 내부는 감춰진다. 꽁꽁 숨겨진 내부의 모습은 낭만적이다. 건물 위 파란 하늘과 햇빛을 받아 붉게 비치는 누런 천이 공사장 내부를 물들여서다.
■ 건물 높이와 해체 방법= 4년 전 진행했던 종로구 숭인동과 은평구 응암동 현장의 해체공사 방법이 다른 건 ‘건물 높이’ 때문이다. 3층 높이인 숭인동 현장은 큰 굴삭기가 1층 바닥에 서서 팔을 올려 건물을 해체한다.
반면 6층 높이인 응암동 현장은 건물 위로 장비가 올라가서 해체해야 한다. 중량물인 해체장비를 건물에 그냥 올리는 것은 위험하다. 먼저 해체건물의 구조안전을 검토하고 중량물로 인한 구조보강, 고층 폐기물 처리대책 수립 등 몇개의 단계를 거친 후 결정한다.
■ 구조 안전검토 = 응암동 현장 내부, 건물 구조물 전체에 누군가 굵은 유성매직으로 숫자를 써 놓았다. 400×600, 400×400, 150….이 숫자들은 건물의 구조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골조 두께를 실측한 숫자다. 현장에서 치수를 체크한 구조팀은 사무실에서 실측한 데이터를 근거로 3D로 건물을 모델링한다.
아울러 해체 관련 여러 데이터값을 적용해 건물의 구조적 안전을 시뮬레이션하고 구조 안전검토를 한다. 건물 위에 해체장비를 올려야 한다면 이 과정에서 구조보강이 필요한지 확인한다.
■ 잭서포트= 구조보강을 위해 잭서포트를 설치하기로 한다. 잭서포트는 한마디로 ‘이동식 기둥’인데, 고층에서 저층 기초가 있는 곳까지 수직으로 건물 전체 취약 부위에 설치한다. 잭서포트를 설치한 현장의 모습은 색다른 그림을 만들어낸다.
아주 평범한 주택, 거실, 방, 부엌 한복판에 금속기둥이 뜬금없이 꽂혀있다. 누런 천에 붉게 비치는 빛과 원형의 금속기둥은 왠지 모를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 폐기물 통로 = 고층에서 해체한 건축 폐기물들은 반드시 1층으로 내려보내야 한다. 효율적으로 내려보내기 위해 꼭대기층에서 1층까지 연결하는 ‘수직 통로’가 필요하다. 통로를 만들기 위해 층마다 슬라브를 해체한다. 슬라브는 철근과 콘크리트가 단단하게 얽혀 있어 손 장비를 이용해 먼저 작은 구멍을 뚫어야 한다. 그다음 구멍을 넓혀 커다란 통로를 만들어낸다.
하늘에서 내린 빛이 구멍을 통해 실내로 들어온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폐기물이 통로로 내려진다. 주변으로 먼지가 자욱하고 미처 내려가지 못한 폐기물들이 구멍 주위에 삐죽빼죽 솟아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재난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이 정도면 골조 해체 준비가 끝났다. 응암동부터 본격적인 골조 해체 현장을 들여다보자.
■ 응암동 골조철거= 소형 굴삭기와 크레인이 현장에 도착한다. 크레인으로 소형 굴삭기를 들어 올린다. 6층 높이 대략 18~20m 위로 굴삭기를 천천히 끌어올려 건물 옥탑에 살짝 내려놓는다. 굴삭기가 건물 위로 올라가면 공룡 입같이 생긴 장비인 ‘크라샤’를 팔 끝에 설치한다. 크라샤는 악력이 있는 장비로 콘크리트를 물고 으스러뜨려 가루로 만들 수 있다.
본격적으로 굴삭기가 건물을 해체한다. 옥탑지붕에 이어 벽과 계단이 해체된다. 폐기물을 통로로 내려보내고 5층 천장을 해체하고 5층 벽을 해체한다. 작업이 반복되고, 4층 천장이 해체되고, 4층이 사라진다. 골조 해체 작업은 크라샤가 골조를 물고, 으스러뜨리고, 당기고, 접는 작업의 반복이다.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고층의 중장비 해체작업은 어떤 작업보다 위험하다.
숱한 해체 끝에 건물이 3층 정도 높이가 되면 작은 굴삭기의 역할은 끝난다. 크레인을 이용해 1층으로 다시 장비를 내려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나면 작은 굴삭기와 비교가 되지 않는 어마어마하게 큰 굴삭기가 현장에 들어선다. 이제부터의 작업은 숭인동의 현장과 다르지 않다. 이제 숭인동으로 가보자.
■ 숭인동 골조 철거 = 숭인동 현장은 2~3층의 낮은 건물들이 ㄷ자로 배치돼 있다. 거대한 굴삭기는 커다란 팔을 들어 입구의 작은 건물부터 해체한다.
입구의 낮은 건물들은 블록이나 벽돌을 쌓아 지은 건물이다. 이런 조적組積(돌이나 벽돌 따위를 쌓는 일) 구조 건물들은 해체장비가 집게로 잡으면 골조와 마감재 할 거 없이 바닥에 후드득 떨어진다.
조심스럽게 철거하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부속건물을 하나씩 철거하며 굴삭기가 주건물 뒤편 마당까지 진입한다. 부서진 건물 잔해를 바닥에 깔아놓고 좌우로 움직이며 폐기물을 다진다. 그리고 높아진 바닥 위로 굴삭기가 올라선다.
이제 주건물 철거 차례다. 네모난 건물 안쪽으로 거대한 굴삭기 팔이 올라가고 크라샤가 골조를 잡고 비튼다. 벽이 부스러진다. ㅁ자 건물의 한쪽 긴 변이 몇 시간 만에 ㄷ자 모양의 건물로 해체된다.
그렇게 3층이던 건물이 2층이 되고, 2층 건물이 1층, 곧 지상층의 모든 건물이 해체된다. 연이어 지하층 골조까지 해체되고, 텅 빈 지하에 토사를 메우고 대지 주변으로 안전펜스까지 두르면 해체공사는 끝난다.
■ 완료의 단상 = 수십년에 이르는 건물과 사람의 역사는 1~2주 만에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동안 한곳에 있던 건물이 며칠 만에 사라지니 ‘빠진 치아’같이 허전하다. 곧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빠진 이가 채워지면 그 안에서 또 다른 사람들이 추억을 만들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다 건물이 또 해체되고 역사는 잊힐 게 분명하다. 건물과 사람의 흔적은 늘 그렇게 사라지나 보다.
글=박용준 건축사 Cameron Chisholm Nicole
opa.lab.per@gmail.com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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