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이지원의 사회적 그늘 보듬記
서울시,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시작
저출생 문제 해결 목적이지만…
월 200만원 부담되는 가정 많아
결국 고소득층 위한 정책 될 우려
국가 돌봄 책임, 민간에 넘기는 꼴
최저임금 보장 받은 가사관리사
본사업 시 중개수수료 떼일 수밖에
돌봄노동 저평가 문제도 짚어봐야

# 정부가 9월 3일부터 시행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노동자 100명이 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앞으로 4주간 특화교육을 거쳐 현장에 투입된다. 

# 하지만 “월 200만원 필리핀 가사관리사 이용하실 건가요?”란 질문에 선뜻 “그럴게요”라고 답할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거다. 한국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데다, 평범한 가정에 월 200만원이 큰돈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실질임금이 가파르게 줄어든 고물가 시대다. 정부가 9월 3일부터 시행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결국 일부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물론 돌봄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은 채 가사관리사를 값싸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할 돌봄이 개별 가정의 경제력에 맡긴다는 게 문제라는 거다. 첫발부터 삐걱대는 이런 정책으로 과연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출생은 한국경제를 벼랑에 밀어넣는 변수 중 하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저출생은 한국경제를 벼랑에 밀어넣는 변수 중 하나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는 부모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뭔지 모르는 듯하다.” “결국 일부 고소득층만을 위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오는 9월 시행하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 시범사업은 필리핀 여성 100명을 취업시켜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저출생 대책의 일환이다. 그런데 왜 시작부터 이렇게 시끄러운 걸까. 하나씩 살펴보자. 

■ 짧았던 논의 =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22년 오세훈 서울시장의 발언이 시발점이었다. “아이 때문에 일과 경력을 포기하는 경우는 최소화해야 한다. 한국에서 가사관리사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원은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월 38만~76만원 수준이다.” 

오 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을 건의하면서 ‘오세훈표 저출생 대책’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참고: 싱가포르와 홍콩의 경우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다.] 

지난해 3월 조정훈 당시 시대정신(현 국민의힘) 의원도 ‘월 100만원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최대 5년간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정책을 시범 운영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안(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까지 발의했다.

이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이후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그해 5월 국무회의에서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을 주문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월 시범사업을 진행할 민간 대행업체 2곳(홈스토리생활·휴브리스)을 선정했다. 올해 4월엔 필리핀 정부와 인력 송출협의를 완료했다. 그렇게 1년여의 짧은 준비 끝에 서울시가 7월 17일부터 8월 6일까지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이용신청을 받고 있다.[※참고: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비전문취업비자(E-9) 자격으로 한국에 들어온다. 정해진 사업장에서만 근무해야 하고, 최대 3년간 체류할 수 있다.] 

대상은 서울에 거주하는 만 12세 이하 자녀를 뒀거나 출산 예정인 가정이다. 이용시간은 하루 4·6시간(시간제), 8시간(종일제)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요금은 올해 최저시급(9860원)과 4대보험 등을 적용해 시간당 1만3700원 선이다. 하루 4시간·주 5일 이용 시 월 120만원(이하 22일 기준), 하루 8시간·주 5일 이용 시 월 241만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접수 개시 6일 만인 23일, 이용 신청을 위해 대행업체 앱에 가입한 인원은 1600명에 달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주부들 사이에선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나온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무엇보다 언어장벽이 높아서다. 

■ 미지근한 이유➊ = 5살과 2살 두 자녀를 키우는 주부 김소현(40)씨는 “아이를 돌보는 덴 무엇보다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가사관리사를 이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은 일정 자격요건을 갖췄다. 필리핀 정부가 공인한 ‘돌봄 자격(CARE GIVING NC Ⅱ)’을 취득했고 한국어시험, 영어면접 등을 거쳤다. 하지만 아이를 돌볼 만큼 충분한 한국어 실력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이들이 거친 한국어 시험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외국인 구직자를 선발하기 위해 실시하는 자체 ‘한국어능력시험’이다. 읽기·듣기 평가로 100점 만점 중 55점 이상이면 통과가 가능하다. 

국립국제교육원이 외국인이나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한국어능력시험 ‘토픽(TOPIK)’과는 다른 것으로, 개인별 차이가 있겠지만 토픽 기준 1~2급(총 6급 중) 수준이다. 하지만 육아는 간단한 의사소통 이상의 문화적·정서적 교류를 필요로 한다. 장주영 이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돌봄의 관점에서 본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2023년)’ 리포트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 외국적동포(중국동포)가 아이돌보미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은 언어와 가족문화 유사성이 높음에도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보다 언어적, 문화적 차이가 큰 외국인을 돌봄 노동 제공자로 허용하는 것은 현행 자격요건 이상을 갖추더라도 신중해야 한다… 이는 아동발달과 육아의 특성에 기인한다….” 

월 200만원대 외국인 가사근로사를 이용할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사진=뉴시스]
월 200만원대 외국인 가사근로사를 이용할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사진=뉴시스]

■ 미지근한 이유➋ = 월 200만원대의 이용요금도 대다수의 가정엔 부담스럽다. 한국인이나 중국동포 가사관리사 이용요금이 월 250만~35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저렴하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7살 자녀를 둔 워킹맘 김소은(41)씨는 “맞벌이를 하고 있긴 하지만 매달 200만원을 주고 가사관리사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도 기존에 가사관리사를 이용해온 일부 고소득층만을 위한 혜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은경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팀장은 “돌봄의 공공성을 책임 있게 강화해야 할 정부가 이를 개별 가정에 떠넘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 가사관리사 괜찮나 = 그렇다면 최저임금을 보장받은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의 처우는 괜찮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언급했듯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민간사업이다. 서울시의 시범사업 관련 예산은 1억5000만원에 불과하고, 이는 모두 민간 대행업체에 운영비로 지원한다. 가사관리사를 위한 지원예산은 없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주거·식사·교통 등 체류비는 가사관리사 스스로 부담해야 한다. 더욱이 100명의 가사관리사들이 머물 숙소는 서울 강남에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로 강남의 물가를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시범사업 이후다. 시범사업의 경우 민간 대행업체들이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별도의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본 사업이 시작하면 중개수수료를 받을 게 불 보듯 뻔하다.

가사관리사와 이용자를 연결해주고 중개수수료를 받는 게 이들의 수익구조라서다. 가사관리사 대행업체들은 통상 10~20%를 중개수수료로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들이 취약한 처우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기존 가사관리사들도 대행업체가 어느 정도의 중개수수료를 떼 가는지도 모른 채 임금을 지급받는 경우가 많다”면서 말을 이었다. “대행업체들은 업무 도중 문제가 발생해도 뒷짐만 지는 게 관행이다. 하물며 한국어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 외국인 가사관리사가 문제를 겪을 때 얼마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일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낮은 가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가뜩이나 저평가받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더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사진=뉴시스]
‘낮은 가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가뜩이나 저평가받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더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사진=뉴시스]

‘낮은 가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가뜩이나 저평가받는 돌봄 노동의 가치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 산적한 고민거리를 덮어두고 출발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그럼에도 정부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지난 6월 19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발표한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엔 ▲시범사업 평가 토대로 내년 상반기 1200명 규모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본 사업 추진, ▲외국인 유학생·외국인 근로자의 배우자에게 가사돌봄활동 허용하는 시범사업(5000명 규모) 실시 등의 내용이 담겼다. 공부하러 한국에 온 유학생까지 가사관리사로 활용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저출생을 해결할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