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윤석열의 논쟁적 공간 탐구 5편
대통령의 비밀스러운 공간 안가
YS, DJ, 盧, 文 이용 거의 안해
이명박 대통령 안가 적극 활용해
박근혜, 재벌 총수와 안가서 만나
윤석열, 계엄 선포 전 경찰과 회동
대통령 안가安家는 군사독재정권의 상징이었다. 문민정부의 시대를 열어젖힌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비밀스러운 안가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했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그래서 안가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차례 탄핵 국면에서 공교롭게도 안가는 ‘논쟁적 공간’으로 떠올랐다. 視리즈 ‘윤석열의 논쟁적 공간 탐구’ 다섯번째 편 안가다.
대통령이 술 마시다 사망한 곳.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된 후 12채의 안가安家를 모두 부숴버리겠다고 선언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린 안가의 이미지는 그랬다. 이름의 의미만 따지자면 안가는 안전가옥安全家屋이다.
일반적 의미로는 보안상 중요한 업무를 해야 하거나 그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집을 말한다. 대통령이 청와대 밖에서 머무르는 주택을 ‘안가’라고 일컬은 이유다. 하지만 군사독재를 거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대통령 안가는 단순히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만 수행하진 않았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독재가 이어지던 시절에 안가는 정치의 한 축이었다. 대통령의 결정이나 국가의 중대사가 청와대가 아닌 안가에서 이뤄졌다. 안가란 비밀스러운 공간은 일반 시민과 정치 사이의 벽을 더 높여놨다. 박정희 대통령 이후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가 정권을 잡았을 때도 안가는 여전히 ‘비밀스러움’을 유지했다.
1993년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약속대로 종로구 삼청동, 청운동, 궁정동에 있던 안가를 부수거나 다른 용도로 전환했다. 삼청동에 남아 있던 안가 중 일부는 헌법재판소장 공관,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으로 탈바꿈했다. 그 주변에 있던 2층 양옥 주택 하나만 대통령을 위한 공간으로 남겼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렇게 남은 안가를 임기 중에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후임 대통령도 비슷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수위원회를 꾸렸을 때 잠시 안가를 사용했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청와대를 이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공식적인 임기가 시작하기 전 인사 면접 등을 위해 삼청동 안가를 사용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달랐다. 이 대통령은 테니스 코트가 딸려 있었던 삼청동 안가를 전임 대통령들보다 자주 사용했다. 주말 예배를 보거나 대통령의 취미인 테니스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군사독재정권이 힘을 잃으며 사라지는 줄 알았던 안가는 결국 그렇게 명맥을 이어갔다. 문제는 이런 안가를 운영하는 비용이 모두 세금이란 점이다. 그 사용례를 보면 다소 황당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이던 2011년 삼청동에 새로운 한옥 안가를 구입했다. 구입 방식은 현금이 아니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새로운 삼청동 안가와 청와대(대통령경호처)가 갖고 있던 종로구 통인동 토지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거래했다. 그런데 새롭게 안가가 된 한옥은 정작 ‘세금 체납’으로 이미 국가 소유였다. 사실상 국가 소유의 한옥을 국가 소유의 토지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대통령에게 넘어갔다는 거다.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에 구입한 이 안가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후임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곳을 많이 활용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영향을 미친 ‘재벌 총수’와의 만남을 가진 곳도 여기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재벌 총수를 향해 미르재단 등에 출연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때문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삼청동 안가의 활용을 자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삼청동 안가를 관리하던 대통령경호처가 이곳에 많은 예산을 쓰지도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 기간에 대통령경호처가 진행한 공사는 대부분 토목공사, 폐기물 처리, 지하주차장 방수작업 등이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엔 삼청동 안가는 또다시 비밀스러운 공간이 됐다. 윤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외부에 노출돼선 곤란한 만남을 이곳에서 가졌다. 대통령실이나 관저엔 출입기록이 남지만 안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인 오후 7시께 ‘내란 혐의’로 구속(2024년 12월 14일)된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이곳을 방문했다. 두 청장은 계엄지시 사항을 기록해 놓은 A4 1장 분량의 문서를 이곳에서 전달받았다. 국민 혈세가 은밀하게 들어가는 안가가 또다시 ‘논쟁적 공간’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안가를 철거한다고 밝혔던 1993년. 몇몇 시민은 신문의 기고란에 “안가를 공공도서관처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언론들도 당시 “안가를 통한 비밀스러운 정치는 끝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남아 있는 안가를 모두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흐른 지금. 안가는 다시 한국 정치의 ‘불편한 공간’으로 떠올랐다. 대통령만 쓰는 안가엔 세금이 들어갔지만 국민은 그 실체를 모른다. 그렇다고 안가를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월 20일 경찰은 삼청동 안가를 압수수색하려 했지만 대통령 경호처의 저지로 실패했다.
혈세로 운영하지만 누군가의 공간으로 전락한 안가를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대통령이 안가와 같은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국민 몰래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안가, 이젠 없앨 때도 됐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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