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이지원의 사회적 그늘 보듬記
자살공화국 2편 인터뷰
조봄 더봄 상담센터 소장
지난해 자살자 큰 폭 증가
원인 복합적 파악 어려워
내면에 분노 자리한 사람들
좌절감 자살 생각 이어지기도
우울감 지속 시 병원 찾아야
가벼운 우울엔 소통 도움 돼
공감·연대·지지 필요한 지금
한 사람의 자살은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자살 유가족은 깊은 고통을 안고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고민하는 이를 살리는 게 수많은 사람들을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자 1위란 오명을 쓰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논의해야 할 건 무엇일까.
지난해 자살 사망자(이하 자살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11월까지 누적 자살자가 전년 동기 대비 4.1%(1만2746명→1만3271명)나 늘었다. 2023년 자살자가 1만3987명으로 10년 만에(2013년·1만4427명)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는데, 지난해엔 이보다 더 많은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자 순위 1위라는 점을 감안하면 심각한 문제다.
자살은 개인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자살로 평균 6명의 유족이 발생하고 이들의 자살 위험은 일반인의 20배(삼성서울병원·2022년 기준)에 달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자살 유가족의 경우 83.7%(2024년 기준)가 우울 증상을 겪고, 그중 심각한 우울을 경험하는 이들은 20.0%나 된다. 복합적인 비탄에 빠지거나(80.5%), 수면 문제(72.0%)를 겪는 경우도 많다.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는 한 사람을 살리는 게 수많은 사람을 구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자살 어떻게 막아야 할까. 조봄 더봄 미술치료심리상담센터 소장에게 물었다.
✚ 한국의 자살률, 왜 이렇게 높은 걸까요.
“자살의 원인은 워낙 복합적이에요. 가정폭력, 직장 내 괴롭힘, 학교폭력과 같은 부정적인 경험과 개인의 성격이나 성향 등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원인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죠. 그럼에도 자살을 생각하는 분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 그게 무엇인가요?
“내면에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가령, 나를 따돌린 친구나 괴롭힌 직장 상사가 옆에 있다고 치죠. 누구든 분노를 표출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으니까요. 그럴 때 몇몇 사람은 ‘내가 왜 그랬을까’ ‘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라면서 자책해요. 이런 절망감이 자살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 무엇보다 10대 청소년의 자살이 늘고 있어 우려스럽습니다.
“자아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청소년은 내면에 고통이 찾아왔을 때 자해나 자살과 같은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곤 해요. 어른들이 보기엔 ‘비행非行’인데 사실은 자기학대인 경우도 많죠. 반복적으로 자해하는 아이들 중엔 멈추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내가 힘들 때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걸 인식시켜주는 게 중요합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요?
“예를 들어볼게요. 아이들이든 성인이든 상담 첫 회기에 먼저 ‘생명존중서약서’를 작성해요. 힘들 때 ‘구조신호(SOS)’를 보낼 수 있는 사람 3명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는 방식입니다. 극단적인 생각이 들 때 연결될 수 있는 ‘나의 안전망’이 상담사를 포함해 4명이란 걸 알려주기 위해서죠. 심각한 자살 징후가 나타나는 사람이라면 24시간 내에 케어하는 게 그만큼 중요합니다.”
✚ 아이들이 자해 생각에 빠질 때 ‘4명’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겠네요.
“물론입니다. 아이들이 자해를 고민할 때 그것을 인지하고 다른 행동으로 전환해 주는 건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가령, 미용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가위질을 하도록 유도하는 거죠. 각자의 대체행동을 찾아주면 자해 생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 그래도 이전과 달리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진 점은 다행스러울 일인 듯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낙인 효과’ 때문에 정신과 진료를 받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아직도 문턱이 높긴 하지만 예전 수준은 아닌 듯해요. 다만,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약을 복용하면 증상이 호전되긴 하지만 마음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진 못해요. 그래서 심리 상담을 병행하는 게 좋은 해결책입니다. 문제는 상담센터의 문턱도 아직 높다는 점이에요.”
✚ 그렇다면 ‘자살 문제’를 더 이상 숨기지 말고 공론화하는 건 어떨까요? ‘베르테르 효과(용어설명 참조)’가 걱정되긴 하지만, 자살의 문제를 ‘열린 공간’에서 논의하고 해법을 찾아보자는 거죠. 그런데 정부는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해서인지 ‘자살 사건의 보도를 자제하자’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유명인의 자살은 파급 효과가 큰 게 사실이에요. 보도를 자제하고 객관적 사실만 전달하는 게 중요하긴 합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머리를 맞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개인적인 어려움은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 사람이 왜 자살을 했는지, 어떤 절망과 우울을 겪었는지, 어떻게 극복하려 했는지, 나아가 그런 상황에 있을 때 어떻게 서로를 도울 수 있을지를 건강하게 논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 건강한 논의의 방향성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걸 많이 불편해하죠. 하지만 태어난 순간 죽음을 향해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 죽는다는 걸 조금 더 인식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죽고 싶은지’ 자신이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죽음을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겠죠. 지금의 힘듦을 이겨냈을 때 강인해진 자신을 그려보는 거죠. 죽음을 끝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으로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 삶을 더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마음 건강의 중요성이 크게 와닿는 요즘입니다. 생활 속에서 마음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흔히 우울한 기분이 들면 ‘나 우울증이야’라고 얘기하곤 하는데요. 만약 우울하다고 느낀다면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정신과나 상담센터에 방문하는 게 좋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를 통해 현재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심각한 우울감이 아니라면, 일상 속에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건강한 방법이에요. ‘요즘 너의 힘든 점은 뭐야?’ ‘나는 이런 게 힘들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누구나 다 힘들지’라며 위안 받기도 해요. 나의 힘듦을 너무 감추지 말고, 드러내고 이야기하길 바랍니다. ‘우리 다 비슷해’라며 연대한다면 또 그렇게 괜찮지 않을까요(웃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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