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 재무설계 2편
냉장고 3대가 드러낸 과소비
빈 공간 채우다 보면 끝 없어
식비만 줄여도 ‘절반의 성공’
보험·할부금이 남은 과제

요즘 가정집엔 냉장고가 2대씩 있는 경우가 꽤 많다. 김치냉장고를 따로 장만해 쓰기 때문인데,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3대는 어떨까. 이건 명백한 ‘과소비’ 신호다. 집에 남아도는 식재료가 많다는 얘기라서다. 이번 상담자가 딱 그런 케이스였다. 더스쿠프와 한국경제교육원㈜이 부부의 냉장고를 점검했다.

냉장고 식비만 줄여도 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냉장고 식비만 줄여도 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경제권이다. 지금까지 남의 간섭 없이 번 돈을 편하게 써 왔는데, 결혼 후엔 배우자에게 소득·지출 등을 공개해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거부감이 드는 일이다. 

이번 상담의 주인공인 양호영(가명·45)씨와 강미나(가명·44)씨 부부는 이런 이유로 각자 경제권을 가졌다. 남편 양씨는 번 돈의 일부를 아내 강씨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지급하고 나머지를 편하게 쓴다.

“사실상 용돈을 받아 쓰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여기기엔 액수가 꽤 크다. 남편이 가져가는 액수가 월 150만원에 달해서다. 아내 강씨는 이런 점이 불만이었는데, 남편의 의견이 워낙 확고해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경제권이 통일되지 않아서인지, 부부는 버는 돈이 적지 않음에도 늘 적자에 시달렸다. 저축도 전혀 하지 못했다.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두 자녀(10·5)의 사교육비도 부담이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고 생각한 아내 강씨는 남편을 이끌고 필자에게 재무상담을 신청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부부의 재정 상태는 이렇다. 월 소득은 880만원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550만원, 벤처기업에 다니는 아내가 330만원을 번다. 언급했듯 부부는 각자 경제권을 쥐고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생활비 400만원을 주고 남은 돈을 전부 용돈으로 쓰는데, 여기서는 따로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지출은 정기지출 902만원, 1년에 걸쳐 쓰는 비정기지출 월평균 88만원 등 990만원이다. 예적금이나 펀드 같은 금융성 상품은 없다. 한달 110만원씩 발생하는 적자는 남편이 가끔씩 받는 상여금으로 해결한다.

자산으로는 자가 아파트(5억5000만원)가 있다. 주택담보대출금(잔여금 3억3000만원)과 신용카드 할부금(총 500만원)이 부채로 잡혀 있다. 지난 시간에 교통비·유류비를 68만원에서 48만원으로 절감해 적자를 110만원에서 90만원으로 줄여둔 상태다.

부부의 재무 목표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주택담보대출금을 빨리 갚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두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노후 준비는 아직 계획에 없다고 부부는 말했지만, 지금부터 준비해도 타이밍이 빠듯하다. 따라서 필자의 권유에 따라 부부는 주담대 변제, 대학 등록금 마련, 노후 준비 등 3가지를 목표로 삼았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려면 지출을 많이 줄여야 한다. 필자가 눈여겨본 건 부부의 식비·생활비(135만원)다. 부부의 집에는 김치냉장고를 포함해 냉장고가 무려 3대나 있다. 주방에 있는 메인 냉장고엔 식재료와 반찬, 냉동식품 등을 넣어둔다. 요리를 도맡은 아내는 특별한 식단 계획 없이 장을 보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상해서 버리거나 기약 없이 냉동고에 박혀 있는 식재료가 적지 않다. 

그다음은 베란다에 있는 냉장고다. 여기엔 간식거리가 가득 차 있다. 아이들과 남편이 먹고 싶을 때마다 편하게 꺼내먹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고 한다. 다용도실에 있는 김치냉장고도 ‘가득’이다. 명절 때마다 부모님이 싸준 음식이 들어 있는데, 다 먹지 못하고 대부분 버린다고 한다.

냉장고 3대가 말해주는 부부의 소비습관은 명확하다. 계획 없는 장보기, 간식·음료 과소비, 명절음식 과잉 보관 등 부부는 먹을 것에서 많은 사치를 부린다. 이것만 고쳐도 지출을 획기적으로 아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메인 냉장고의 음식은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나머지 절반은 보조 냉장고에 있는 간식거리로 채우고, 보조 냉장고는 처분하자고 조언했다. ‘냉장고를 가득 채워야 해’란 생각이 과소비로 이어지기가 쉽고, 전기요금도 적잖이 나오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에 있는 명절 음식도 버리지 않고 그때그때 소비하기로 했다. 부부에겐 ‘앞으로 김치냉장고가 가득 차면 과소비 위험 신호라고 인식하자’고 제안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부부는 식비·생활비를 135만원에서 90만원으로 45만원 줄이기로 약속했다.

이번엔 통신비(34만원)다. 부부는 통신비를 따로 쓰는데, 하나의 통신사로 합쳐서 결합 할인을 받기로 했다. 알뜰폰 중에서 결합 할인을 제공하는 곳으로 모두 번호이동했다. 부부가 8만원씩 총 16만원 지출하던 통신비가 5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3개 이상 구독한 OTT도 하나만 남겨두고 다 해지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부부는 34만원에서 20만원으로 14만원 아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편 양씨의 용돈(150만원)이다. 남편은 이 돈의 대부분을 피규어를 수집하는 데 쓴다.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 겸 자녀들과 취미생활을 공유하기 위해서라는데, 취지는 좋지만 지출 규모가 너무 크다. 아내도 이런 점이 불만이었지만, 남편이 자신의 취미생활을 터치하는 것에 워낙 민감해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피규어 수집은 생각보다 많은 지출을 요구한다.[사진 | 연합뉴스]
피규어 수집은 생각보다 많은 지출을 요구한다.[사진 | 연합뉴스]

남편이 용돈만 줄여줘도 부부의 가계부는 크게 개선될 수 있다. 다행히도 상담을 진행하면서 남편의 마음이 많이 바뀌었는지, ‘용돈을 줄이는 게 어떻겠냐’는 필자의 의견을 별말 없이 수긍했다. 남편은 용돈을 150만원에서 70만원으로 80만원 줄이기로 했다. 대신, 용돈을 먼저 떼서 생활비로 지급하는 기존의 방식은 바꾸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1차 지출 줄이기를 일단락했다. 부부는 식비·생활비 45만원(135만→90만원), 통신비 14만원(34만→20만원), 남편 용돈 80만원(150만→70만원) 등 139만원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에 따라 부부의 90만원 적자도 49만원 흑자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돈으론 부부의 재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부부의 지출 리스트엔 아직도 줄일 것이 많다. 한달에만 70만원씩 빠져나가는 보험료와 신용카드 할부금(78만원) 등이다. 지금처럼 부부가 의견을 잘 조율하기만 한다면, 남은 지출도 수월하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부부는 그럴 수 있을까. 다음 시간에 계속 이야기하겠다.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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