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이지원 기자의 그늘 보듬記
탑골공원 장기판 금지령 고찰⓶
장기판 빼앗긴 노인의 초라함
우리의 미래 모습이 될지도…
노인들 주된 여가 활동 ‘휴식’
높은 노인 빈곤율 무관치 않아
노인 활동 가로막는 인식 바꿔야

#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장기판이 사라진 지 50여일이 훌쩍 지났다. 종로구청은 ‘문화재 보호’ ‘시민 안전 확보’ 등을 이유로 7월 31일 탑골공원에서의 오락 행위를 금지했는데, ‘부실한 공론화 과정’ ‘사라진 노인 여가’ 등 숱한 논쟁거리를 남겼다. 

# 특히 이번 ‘장기판 금지령’은 초고령 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담론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기판을 빼앗긴 채 한숨짓고 있는 지금 노인의 초라함이 젊은 세대의 미래 자화상일지 몰라서다. 넘버링 ‘탑골공원 장기판 금지령의 고찰’ 2편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평균의 2.5배에 달한다.[사진|뉴시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평균의 2.5배에 달한다.[사진|뉴시스]

우리는 ‘탑골공원 장기판 금지령의 고찰’ 1편에서 장기마저 맘 편히 둘 수 없는 노인들의 현실을 짚었다. 서울 종로구청이 지난 7월 31일부터 탑골공원 일대에서 바둑·장기 등 오락행위를 금지했는데, 그 과정에서 노인들의 의견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면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물론 종로구청에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탑골공원이 상업구역과 맞닿아 있어 인근 포장마차나 식당에서 술을 마신 사람들이 장기판을 중심으로 뒤엉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음주ㆍ고성방가ㆍ노상방뇨와 같은 문제로 민원이 줄을 잇기도 했다. 

종로구청이 ‘장기판 금지령’이란 특단의 대책을 단행한 배경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노인들이 철저하게 소외됐다는 점이다. 언급했듯 공론화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노인들이 그곳에 모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세심하게 살피는 작업도 부실했다. 어쨌거나 장기판은 사라졌고, 종로구청은 탑골공원 개선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뭘 해야 할까. 탑골공원 장기판 사태가 남긴 과제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늦긴 했지만 ‘노인 여가’의 현실을 한번쯤은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붕도 없는 장기 두는 곳, 그마저도 사라질까 걱정해야 하는 우리 노인의 현실은 어딘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한가한 담론’이라며 반론을 펼지 모른다. 취업도 못 한 청년들이 숱하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데, 노인 여가를 다룰 때가 아니란 거다. 하지만 이는 단견短見이다.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고령화하고 있다. 

올해 사상 처음으로 노인인구(65세 이상)가 10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1989년생이 노인이 되는 30년 후 노인인구 비중은 40%에 육박한다. 의료비용, 요양·돌봄비용, 복지비용 등 사회적 비용이 가파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이 노인 여가 문제를 공론의 장에 올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란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 담론① 사회적 비용 =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일반적으로 ‘아픈 노인’이 줄고 ‘건강한 노인’이 증가하면 경감한다. 실제로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는 일본은 노인들의 ‘건강수명’을 늘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일본의 노인 여가와 수명을 분석한 보고서 한편을 보자. 지난해 미국 노인의학회 학술지(Journal of the American Geriatrics Society)가 소개한 ‘일본 노년층의 여가 활동, 전인구 사망률 및 기능 장애 변화’ 연구 결과다.

65세 이상 노인 3만8215명을 대상으로 여가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7년(2013~2020년)간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2013년 당시 여가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2020년 기준 사망률은 28.6%로 여가활동에 참여한 사람들(21.1%)보다 7.5%포인트 높았다. 

2단계(일상생활에 중간 이상 정도의 도움 필요) 이상의 간병이 필요한 사람의 비중도 각각 24.6%(여가활동 미참여), 18.1%(여가활동 참여)로 격차가 컸다. 노인들의 여가 활동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이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 담론② 노인 빈곤과 여가 = 그렇다면 노인 여가의 질質을 끌어올리려면 어떤 노력을 쏟아야 할까. 전문가들은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는데,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엔 여가 활동을 즐길 만한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노인들이 숱하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8.2%(2023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4.2%(2022년 기준)보다 2.5배 이상 높다. 

노인 대부분이 하루 6~11시간에 이르는 여가시간을 ‘휴식’으로만 보내는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노인실태조사(2023년)’ 결과를 보자. 지난 1년간 주된 여가활동으로 ‘휴식(이하 1순위 기준)’을 꼽은 이들은 전체의 51.8%에 달했다. ‘사회 및 기타활동’은 18.7%, ‘취미·오락활동’은 16.7%, ‘스포츠 참여활동’은 7.0%에 그쳤다. 

경제력이나 학력이 낮을수록 여가 활동의 장벽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전체 노인 중 24.2%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 여가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답했는데, 중위소득 50%(빈곤선) 미만 노인의 응답률은 29.0%. 무학無學 노인의 응답률은 34.1%, 초졸 노인의 응답률은 31.3%로 평균치를 웃돌았다. 

지난 12일 탑골공원에서 만난 노인 최성일(78·가명)씨는 “나이 들면 공원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곤 할 게 많지 않다”면서 “집에 혼자 있으면 적적하고 무료하니 공원에 앉아 있다가 가곤 한다”고 털어놨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허준수 숭실대(사회복지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노인 빈곤율이 높고, 국민연금 평균 수급액도 약 67만원(2025년 기준)에 그쳐 노인들이 여가에 쓸 수 있는 절대적 금액이 부족하다. 저소득층 노인들의 여가를 위한 실비 지원이나 여가 활동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등 공공의 노력이 중요하다.”

■ 담론③ 사회 인식 = 노인 여가를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건 또 있다. 다름 아닌 사회 구성원의 노력이다. 사회적 냉대와 차별이 노인들의 여가 활동을 가로막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지난해 한 헬스장이 65세 이상의 회원 가입을 막은 건 대표적 사례다. 헬스장 측은 “안전사고 우려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자칫 노인들의 다양한 사회 활동을 막는 차별이 확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해당 헬스장에 “노년층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고령자의 상업시설을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걸 정당화할 우려가 있다”면서 회원 가입자격 정관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달려져야 할 사회 인식을 보여주는 지표는 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인권실태조사(2023년)’ 결과, 노인(10.8%)은 장애인(16.5%)에 이어 인권침해와 차별을 가장 많이 받는 집단으로 꼽혔다. 

허준수 교수는 “해외에선 노인들이 젊은층과 어우러져 자신이 해왔던 수영·테니스·자전거 등 여가 활동을 이어가는 게 일반적”이라면서 “세대 갈등을 해소하고 구성원의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모 건국대(행정학) 교수도 “지금 70~ 90대 노인 중엔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젊은 시절 여가를 즐기지 못한 분들이 많다”면서 말을 이었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젊은층은 일상생활에서 여가를 앞서 사용하고, 연장선상에서 노인층의 여가를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정책이 달라지고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면 생각보다 더 큰 문제를 바꿀 수 있다. 대표적인 게 한국의 높은 노인 자살률 문제다. 2023년 80세 이상의 자살률은 59.4명(인구 10만명당 기준)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허준수 교수는 “특별한 일이 아니더라도 다음날 일어나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노인들의 우울증 문제를 경감할 수 있다”면서 “독거노인 100만명, 노인인구 1000만명 시대를 맞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탑골공원 장기판 금지령엔 숨은 논쟁거리가 많다. 고령화 시대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담론도 들어 있다. 종로구청은 과연 이런 담론까지 숙고하면서 정책을 폈던 걸까. 한치 앞만 본 정책은 미래를 볼 수 없다. 장기판 금지령은 과연 우리의 미래까지 담보할 수 있을까.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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