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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이성적 과열로 생기는 거품
가격상승, 자본집중, 빚투로 판단
코스피·코스닥 거품 영역 진입
10대 재벌이 시총 90% 장악
지배구조 악화가 오히려 호재

가파르게 상승한 한국 증시는 거품일까 아닐까. 이례적으로 빠른 자산 가격 상승, 자본의 집중, 빚투의 증가 규모로 보면 이미 거품의 영역으로 진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증시의 거품은 구조적으로 절대 터지지 않는 종류의 거품이다. 재벌과 자본과세 약화, 기업지배구조의 역행이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낸 거품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설치된 나스닥 전광판. 나스닥 지수는 지난 2000년 닷컴 거품 붕괴로 2년 6개월 만에 78% 하락했다. [사진 | 뉴시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설치된 나스닥 전광판. 나스닥 지수는 지난 2000년 닷컴 거품 붕괴로 2년 6개월 만에 78% 하락했다. [사진 | 뉴시스]

자산 가치가 과도하게 상승하면 흔히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미국 증시에서 발생한 닷컴 거품, 주택 가격 거품 등이 붕괴해 금융위기로 번진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고전적인 의미의 경제학은 거품도 시장에서 정해진 가격일 뿐이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은 모든 정보를 이미 반영했고, 경제주체들은 합리적인 기대를 통해 움직일 것이라는 게 이들의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석좌교수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에서 경제학을 연구하고 헤지펀드까지 설립한 샌퍼드 그로스먼이 1980년 발표한 논문에서 “정보를 확보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거래 상대끼리 정보가 불균등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자 고전적 경제학자들도 거품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장 가격이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반영한다면, 누구도 차익을 노리고 거래에 나서지 않을 것이며, 이는 오히려 시장을 붕괴시킨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거품의 존재를 확인해 준 셈이다.

이제 거품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지만, 거품 붕괴 시기를 정확히 예측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았다.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게 거품이다. 2006년까지 19년 동안 연준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은 1996년 12월 미국기업연구소(AEI) 연설에서 거품 붕괴의 예측 불가능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비이성적 과열이 자산 가격을 과도하게 상승시켜 예상치 못한 장기침체를 불러오는 시점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런 평가를 통화정책에 반영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만 있고, 답은 없었다. 미국의 ‘닷컴 거품’이 실제로 붕괴한 것은 연설 이후 4년이 지나서였다. 미국 기술주들이 대거 포함된 나스닥 지수는 2000년 3월 거품 붕괴 이후 2년 6개월 만에 무려 78%나 하락했다.

결국 거품 붕괴의 시점이라는 것은 이성적인 이론이나 통계 정도로는 잡아낼 수 없는 비이성적 경험의 산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로 이성을 상실한 투자자의 욕심이라는 잣대로 거품 여부를 판단한다.

상장(IPO) 건수가 증가하거나 상장 첫날 수익률이 평균보다 높으면 거품일 확률이 많다는 속설이 그렇다. 기업이 자본을 채권시장이 아닌 주식시장에서 더 많이 조달하기 시작한다면 위험신호로 보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부채 비율이 상승하는 것, 배당 없는 성장주의 가치가 배당주보다 높아지는 일도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속설을 아우르는 가장 강력한 신호는 바로 개인 투자자들이 빚을 내서 주식을 사는 ‘빚투’다.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는 시장을 선도하는 일부 현명한 투자자가 먼저 주식을 사고, 이어서 기관투자자가 추격 매수한 이후 이들이 먼저 차익을 현금화하면, 뉴스가 대량 생산되면서 일반적인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뛰어든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로 변신한 대중이 열정→환상과 탐욕→새로운 주가 상승 논리 개발→폭락→현실 부정→공포→좌절을 겪으면서 거품은 붕괴한다.

[자료 | 금융투자협회. 참고 | 코스피·코스닥 신용거래융자 잔고, 사진 | 뉴시스]
[자료 | 금융투자협회. 참고 | 코스피·코스닥 신용거래융자 잔고, 사진 | 뉴시스]

거품의 사이클이 열정으로부터 탐욕, 새로운 논리의 개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게 바로 빚투, 이를테면 신용거래 대출 잔액의 비이성적인 급증이다. 미국의 빚투는 닷컴 거품 직전 80% 이상 급증했고, 금융위기 발생 직전에는 60% 이상 늘어났다.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증권사로부터 빌린 돈은 올해 10월 말 기준 1조1800억 달러로 1년 전보다 45.2% 증가했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최근 인공지능(AI) 거품 논란이 꾸준히 거론되는 두가지 이유 중 하나가 빚투 증가라면, 다른 하나는 자본의 집중이다. 올해 들어서 세계 벤처캐피털 자금의 48%가 AI 회사들에 집중적으로 투입됐다(크런치베이스). 만약 미국 증시 자금까지 쏠려서 일부 AI 기업의 시가총액 비중이 비이성적으로 증가한다면, 우리는 AI 거품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면을 모두 종합해서 판단하면, 한국 증시는 거품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나라 증시의 거품은 붕괴 위험이 없는 종류의 거품이다. 좋은 소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먼저 국내 증시 자산 가격의 상승 추세를 보자. 지난 6개월 동안 미국 다우지수는 10.53% 상승했고, S&P500 지수는 13.02% 상승했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의 6개월 상승률도 34.34%에 불과하다. 그런데 코스피 지수의 6개월 상승률은 54.09%다.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코스닥150 지수도 지난 6개월 동안 38.17% 상승했다.

빚투 증가는 더 심각하다. 올해 4월 30일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17조5580억원이었는데, 10월 31일 잔고는 25조5269억원으로 급증했다. 국내 증시에서 빚투가 50% 가까이 증가했다는 얘기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60%보단 낮은 수준이지만, 현재 미국의 빚투 규모보단 많다.

코스피 지수가 종가 4042.83으로 역사적인 최고점을 기록한 지난 10월 27일. 증권사들은 일제히 코스피 지수의 연초 이후 상승률이 68.49%로 주요 20개국 지수 중에서 가장 많이 상승했고, 2위인 닛케이225의 26.61%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발표하며 축배를 들었다. 대체로 이를 개정 상법과 연결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된 결과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개정 상법의 효과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거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이어지려면 아무리 짧아도 몇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기업 임원들이 회사뿐만 아니라 개별 주주에게도 충실의 의무를 진다는 판례를 대법원이 쏟아내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증시 랠리는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재벌총수 등에게나 해당하는 배당소득세 최고세율의 인하, 상속세 완화 등 자본과세를 완화한 결과로 보는 게 더 어울린다.

정부가 자본 과세를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리면서 이제 우리나라 재벌 총수들은 세금 걱정 없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재벌 경영권의 완전한 세습 체제 구축이 우리나라 증시의 랠리를 주도하는 걸까.

우리나라 전체 기업지배구조 체제에는 이런 변화가 혁신이 아니라 악화지만, 이런 ‘변화 아닌 변화’의 혜택을 받는 몇개 재벌이 사실상 우리나라 증시 시가총액의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현재 최대 재벌그룹 한곳이 우리나라 전체 시가총액의 32.71%를 차지한다. 2개 재벌로 넓히면 시가총액의 52.95%이고, 10개 재벌로 넓히면 시가총액의 86.89%에 달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 |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월 31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끝난 후 재벌 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대차가 잘되는 게 대한민국이 잘되는 겁니다”고 화답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따져볼 점은 있다.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관용구인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의 원문은 알려진 것과 순서가 다르다.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GM 사장 출신인 찰스 어윈 윌슨을 국방부 장관으로 지명해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윌슨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몇 년 전부터 조국(미국)에 좋은 것이라면 GM에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입니다(and vice versa).” GM에 좋은 게 모두 미국에 좋은 것은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한국 기업의 99%가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조차 못 내는 좀비기업 상태에 빠져도 한국 증시의 거품은 터지지 않는다. 시가총액의 거의 90%를 점유한 10개 수출 재벌 산하기업들이 국내 증시에 여전히 상장돼 있고, 정부가 이들 재벌의 이익을 위해서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최선을 다한다면, 코스피와 코스닥은 항상 우상향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구조적으로 절대 터지지 않는 이 거품은 우리에게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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