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아무도 말하지 않는 그림자 제도
허울뿐인 기업재해경감법 2편
노동안전종합대책 실효성 의문
처벌 중요하지만 예방 더 중요
인센티브 의무화만 해도 효과
재해 발생 시 예방하고 복구할 수 있는 플랜을 짜놓은 기업을 지원하는 것. 기업재해경감법의 골자다. 이 법만 잘 활용하면 각종 재난을 미연에 예방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하고, 혹시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후속 조치를 빠르게 취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장점이 많은 법을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양준(53) 한국기업재난관리사회장을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생각을 해보면 기업재해경감법의 장점을 알게 될 텐데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공공기관도, 기업도 관심이 없으니 참 아쉽습니다.” 양준 한국기업재난관리사회장은 기업재해경감법이라는 단어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왜일까.
✚ 기업재해경감법의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기업재해경감법은 기업에 재난이 닥치더라도 기업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든 법입니다. 재난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르게 업무를 재개할 수 있게끔 미리 실행가능한 계획을 수립하는 게 핵심이죠.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기업들이 이런 준비를 할 수 있게 정부와 지자체가 지원하도록 명시해놨죠. ‘시스템의 중단’을 예방하는 거니까 작동만 잘 된다면 다양한 효과가 있습니다.”
✚ 사례를 들 수 있을까요?
“우선 중대재해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기업활동은 중단됩니다. 작업 중지권이 발동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업 입장에선 중대재해는 재난에 속합니다. 기업이 이 법을 근거로 재해경감 활동을 통해 기업활동을 지속하려 한다면 중대재해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사전 안전점검을 강화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도 빠르게 만들 겁니다. 이게 바로 기업재해경감법의 취지이고, 효과입니다.”
✚ 산업안전관리와 비슷한 것 아닌가요?
“산업안전관리가 사람 설비의 안전과 보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기업재난관리는 기업활동 중단을 막기 위해 사람과 설비뿐만 아니라 예방, 대응, 사후 관리 등 계획까지 포함합니다. 산업안전관리보다 더 넓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런 계획을 짜거나 점검하는 일을 저희 같은 기업재난관리사가 합니다. 주목할 점은 이런 시스템을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요?
“얼마 전 화재가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재해경감 활동이 이뤄졌다면 정상화에 한달이나 걸리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무안국제공항이 평소에 재해경감 활동을 했다면 새떼도 대비하고, 공항 활주로 끝의 콘크리트 둔턱도 사전에 점검해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피해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화재가 났을 때 소방차가 빠르게 진입할 수 있도록 도로를 미리 정비하는 것도 넓게 보면 재해경감 활동의 영역이 될 수 있습니다.”
✚ 기업재난 대응 시스템을 사회재난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거군요.
“그렇죠.”
✚ 그렇다면 기업재해경감법은 현장에서 잘 활용되고 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멍이 제법 많습니다.”
✚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신다면.
“기업재해경감법의 작동 원리는 스스로 재해경감 우수기업 인증을 받는 기업이 늘어나도록 정부나 지자체가 다양한 당근책을 주는 겁니다. 공공입찰 시 가점을 주거나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식이죠. 문제는 이런 인센티브를 주는 게 ‘권고사항’이란 점입니다. 재해경감 활동을 적극적인 펼쳤더라도 관련 부처가 인센티브를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업재해경감법이란 취지가 좋은 법제도가 있어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이유죠.”
✚ 기업 재해경감 활동의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로선 각 부처가 협조를 해주지 않으면 인센티브를 주고 싶어도 못 준다는 거군요.
“네. 실제로 협조를 잘 해주지도 않고요. 남의 부처 성과를 올려주는 거니까요.”
✚ 지난 9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노동안전종합대책’에는 다양한 인센티브가 제시된 것 같던데, 그렇다면 이 역시 한계가 있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행안부가 재해경감 우수기업에 세무조사 유예, 근로감독 면제, 정부포상 시 가점 부여, 정책금융 금리·한도 우대 등의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내용을 넣은 건 유의미합니다. 하지만 세무조사는 국세청, 근로감독은 고용노동부, 정책금융 금리 우대는 기획재정부와 합의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행안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 실효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면 교육 강화, 제재 강화, 감독도 강화, 수사도 강화, 입찰 제한 강화, 정책자금 지원 제재 강화, PF 대출보증 취급 시 심사 강화 등 규제책은 곧바로 작동하죠. 재해 발생으로 규제를 받는다면 재해 예방으로 인센티브를 받는 건 당연한데 그렇지 않아요. 기업재해경감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 다른 정부 부처들이 이처럼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기업재해경감법의 효능을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 왜 그렇게 보시나요.
“사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은 재난안전법에 따라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과 비슷한 ‘기능연속성계획(COOP)’이라는 걸 의무적으로 수립·운영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 역시 업무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이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발생 직후 “3시간 안에 업무 재개가 가능하다”는 전임 원장의 장담이 빗나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기능연속성계획’을 잘 짰는지, 못 짰는지도 평가하지 않아요.”
✚ 보여주기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거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기능연속성계획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에 관한 규정도 없습니다. 행안부에 간단한 지침이 있긴 하지만, 그 지침만으론 부족하죠. 공공기관들은 지침에 나온 항목만 채우면 끝인 줄 아니까요. 자신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데, 남의 부처 소관인 기업재해경감법에 신경을 쓰는 게 이상한 거겠죠.”
✚ 결국 기업재해경감법을 개정하든 정부가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든 ‘인센티브 의무화’가 이뤄져야 기업재해경감법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겠군요.
“그렇긴 한데,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죠. 그런 점에서 홍보만이라도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기업의 재해경감 활동이라는 게 있고, 이게 중대재해 예방은 물론 사회재난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그러면 환경친화적이거나 도덕적인 기업의 상품을 골라서 소비하는 것처럼 국민이 재해경감 활동을 하는 기업의 상품을 소비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그 자체만으로도 기업에 좋은 유인책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라도 기업재해경감법과 기업 재해경감 활동의 필요성이 널리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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