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우의 미술思
2편 산드로 보티첼리
우리 사회 美 기준은
다양한 시선과 어울림
보티첼리 작품이 말하는
융복합과 조화라는 가치
바야흐로 아지랑이가 따스하게 찾아드는 산과 들에는 봄빛이 완연하다. 조금 있으면 개나리·진달래가 예쁘고 연한 꽃잎으로 인사를 건네올 듯하다.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년)의 비너스를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 “봄은 이렇게 온다.” 누구의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릴 적부터 이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보자. 아름다운 여신이 키프로스 앞바다에서 거품으로부터 태어나 조가비를 타고 훈풍에 밀려 뭍으로 오른 모습이 참으로 신비하고 아름답다. 서풍의 신神 제피로스가 연인 아우라와 함께 꽃바람을 불어 밀어 올리고, 땅에선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예쁜 꽃으로 수놓은 옷을 들고 마중한다.
그래, 봄은 이렇게 오는구나. 봄에 딱 맞는 장면과 느낌, 그리고 표현이 절묘하다. 미의 여신 비너스는 이탈리아에선 베누스, 그리스어로는 아프로디테라 부른다. 그리스말 아프로스(aphros)에 어원을 둔 ‘바다 거품’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비너스의 탄생 설화와 딱 어울리는 말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목의 작품들을 보면 언제나 바다에서 거품과 함께 태어나고 있다. 필자가 본 ‘비너스의 탄생’ 중 가장 멋진 작품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알렉상드르 카바넬이 그린 것이 아닐까 싶다.
바다에서 거품과 함께 비스듬히 누워 태어난 비너스는 살짝 실눈을 뜨고 있는데 얼마나 요염하고 매혹적인지…. 이 작품은 언젠가 한국에서 전시된 적이 있다. 그때 마주한 그 눈빛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비너스를 처음 보면 좀 이상해 보이기도 하다. 목은 심하게 꺾여 있고, 왼팔은 어깨가 빠져 있으며, 조가비를 타고 있는 게 아니고 여신의 스티커를 붙여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등장인물은 모두 무중력 상태에서 공중부양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같은 시대의 화가 다빈치는 이 작품을 보고 인체의 비례와 중력감 상실 등을 꼬집었다고 한다. 형이하학적 자연의 원리, 인체 비례와 구조에 조예가 깊었던 다빈치가 본다면 많은 문제점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형이상학적 미의 가치, 이를테면 보티첼리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지극히 아름다울 뿐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인체의 과학적 논리를 건너뛸 정도로 아름답다. 단숨에 인체의 비례 정도는 허접스러운 논란쯤으로 치부되고, 황홀하고 신비로운 여신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상에 사로잡히고 만다.
달리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도 각자의 관점으로 사물과 현상을 응시한다. 그러다보니 타인의 관점을 비판하고 자기의 관점만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다양한 타인의 생각이나 논리가 상상과 어우러질 때 여기서부터 창조가 시작이고, 이것을 수용하는 사람이 리더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은 물론이고, 학문·사회·과학·정치·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르네상스이고 융복합으로 새롭게 가치를 창출하는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고 500년 전 보티첼리는 아름다운 그림을 통해 말하고 있다.[※참고: 메디치 효과는 각종 사회·경제적 현상들에서 1+1=2가 아닌 1+1>2가 나타날 때를 의미한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은 획일적이고 자로 잰 듯한 규격과 비율이 정답인 요즘 우리 사회에 미의 기준은 다양한 시선의 조화와 어울림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다. 이 봄, 이 계절에 여신 비너스를 보내준 보티첼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개의 댓글
댓글 정렬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