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 중 가장 성공한 이를 꼽자면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년)를 빼놓을 수 없다. 개신교를 신봉한 플랑드르(Flandre·벨기에와 네덜란드 일부 지역·스페인령) 출신의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부친이 사망한 후엔 가톨릭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일찌감치 플랑드르 영주 페르난도의 궁정화가로 활약한 루벤스는 화가로 입지를 구축한 뒤엔 영국 찰스 1세와 스페인 펠리페 4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양국의 정치적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공로였는데, 예술로 외교관의 역할까지 수행한 셈이다. 그래서
금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 그 비싼 금을 화면 전체에 바른 화가. 오스트리아 빈의 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년)는 그림에 금을 사용했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림 ‘키스’의 작가다. ‘키스’는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작품이어서 지금 전시돼 있는 빈의 벨베데레 궁을 떠날 수가 없다고 한다. 어지간한 작품들도 누리는 ‘해외 전시’를 못 하는 이유가 ‘키스’를 보려고 빈을 찾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라니, 가히 인기를 짐작하고도 남는다.이렇게 우리가 아는 작품을 막상 전시장에서 마주하면 감동이 줄어들 수 있다. 아마도 매일 프린트되고,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이란 작전명으로 시작된 걸프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과 이라크의 전쟁이었다. 원인은 산유産油 문제였는데,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34개국 연합군이 결성됐고 이라크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패배했다.전쟁의 뒤편엔 복잡한 국제적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마련이다.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과 오만 등 다양한 원인도 숨어 있다. 연합군-이라크 간 전쟁도 그랬다. 오늘은 이 전쟁에 얽힌 작품을 이야기해 보자. 2003년 2월 미국 최초 흑인 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은 유엔에서 개최할 예정이
“나는 피카소 그림은 잘 모르겠어” “너무 어려워, 뭘 그린 걸까”…. 파블로 피카소가 유명한 줄은 알고 익숙한데, 그림은 도대체 뭘 그린 거야? 자주 듣는 이야기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어린 시절 미술교사인 아버지의 지도를 받으면서부터 천재성을 발휘했고, 20대엔 프랑스로 옮겨 활동했다.초기엔 구상화具象畵(사물의 형태를 알아볼 수 있게 그린 그림) 위주로 그렸는데,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하면서 입체주의 큐비즘(cubism)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평면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단순화 작업 등 화가 폴 세잔의 표
세상엔 유독 영웅 이야기가 많이 떠돈다. 칭기즈 칸,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은 대표적인 사례다. 모두 세상을 정복해 이름을 높이고, 부귀를 추구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전쟁이란 언제나 상대적이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다. 승자는 개선의 나팔을 불겠지만 패자는 굴욕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승패의 법칙은 예술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우리가 신년 음악회에서 즐겨듣는 ‘라데츠키 행진곡(요한 슈트라우스 1세 작곡)’은 이탈리아에선 들을 수 없다. 반면, 요제프 라데츠키 폰 라데츠의 조국인 오스트리아에선 음악회 앙코르곡 1순위다. 어
봄도 무르익어 녹음이 짙다. 개나리와 진달래는 어느샌가 자취를 감추고 장미와 붓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마당 안 채마밭의 감자도 하얀 꽃을 피웠다. 6월 하지夏至엔 알 굵은 감자를 수확할 기대에 벌써 마음이 부푼다. 자연은 심고 가꿀 때 흘린 땀의 대가를 정직하게 돌려준다. 인간의 일들도 자연을 따라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한다. 이런 자연의 섭리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흥미롭게도 ‘배’다. 인류는 고래古來로 항해에 바람을 이용했다. 이른바 돛을 단 ‘범선’이다. 고대와 중세를 지나며 오랫동안 이용한 범선들이 하루아침에 퇴출당하는 일이
서양미술사에서 잘생긴 미남 화가를 꼽는다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이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년)일 것이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술을 좋아해 요절했다.잘생기고, 그림 잘 그리고, 술도 잘 마셨으니, 주위에 친구도 많았다. 특히, ‘유트릴로’란 수잔 발라동(몽마르트르 화가들의 모델)의 아들과 친했는데, ‘표현주의’ 화가인 유트릴로는 마약 보호소 생활을 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량이 집안을 잘 꾸리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앙리 마티스(Henry Matisse·1869~1954년)는 고갱의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표현과 세잔의 평면적 표현 등을 받아들여 형체보다 색상 자체에 의미를 두고 색상의 하모니를 그린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초 파리 화단의 선두에 선 마티스는 새로운 색상의 대비와 조형을 강조한 야수파(Fauvism)를 이끌어간다.1908년 발표한 마티스의 작품 ‘레드의 하모니(Harmony of Red)’를 중심으로 야수파의 그림 속으로 한걸음 들어가보자. 붉은 벽지와 붉은 탁자가 방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 위엔 유기적인 선들이 꿈틀거
세상을 바꾼 사과 이야기를 할 때면 흔히 뉴턴의 사과와 스티브 잡스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를 이야기한다. “뉴턴의 만유인력과 애플 창업자의 사과는 알겠는데 세잔은 뭐지”라고 반문할 독자가 적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 동의할 정도로 세잔의 사과가 갖고 있는 의미는 크다. 인상주의는 19세기 중엽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Impression, Sunrise)’라는 작품에서 출발했다. 르누아르와 피사로, 드가, 로트러크와 고흐, 고갱, 세잔 등은 빛과 색채를 새롭게 표현하는 작업으로 고전적 방법으로부
오월이다. 꽃들이 아름다움을 뽐내는 참 좋은 계절이다. 이맘때면 학교에서도 소풍을 갔었다. 다 함께 줄 서서 야외로 나가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어쩌다 보물찾기 게임에서 연필·공책·필통과 같은 글씨가 쓰여 있는 쪽지라도 한장 찾으면 세상 다 얻은 기분이었다. 집에서도 가족들과 가끔 남산이나 창경궁에 갔는데, 전날 밤을 설치고 설레며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어서 그리 부르는 것이리라. 내게도 어린이날이 있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지금까지 노란 병아리
인상주의 화가 중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년)처럼 행복한 화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을 갖고 있다. 따뜻한 색상과 편안한 구도,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묘사한다. 특히 어린 아이와 행복한 여인을 그린 그림은 정말 사랑스럽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어린 시절은 그리 부유하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 사회를 감안했을 때, 그의 어린 시절은 혁명과 산업화로 빈부 격차가 점점 커지던 시기였을 것이다. 실제로 르누아르는 어린 시절을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면서 어렵게 보냈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봄꽃 그림은 단연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년)의 ‘꽃 피는 복숭아나무’다. 그림 속 복숭아 꽃의 핑크빛은 너무나 화사해 요염하기까지 하다. 단숨에 기분을 전환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봄날 감곡(충북)과 장호원(경기도 이천시) 들판의 복숭아밭을 본 적이 있다. 환상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황홀한 풍경이다. 올봄에도 소풍길로 삼고 싶은 곳이다. 고흐의 ‘꽃 피는 복숭아나무’와 ‘꽃 피는 아몬드나무’란 작품 속 꽃도 그렇다. 아름다운 데다 사랑과 존경이란 의미까지 담겨 있다. ‘꽃 피는 복숭아나무’는 고흐가
미술사에서 17세기는 대가들의 대작大作 시대다. 그림이 엄청 큰 작품을 그렸다. 대가의 행렬은 카라바조(로마)를 시작으로 루벤스와 렘브란트(네덜란드 플랑드르), 벨라스케스(스페인)로 이어진다. 대항해 시대의 유럽은 식민지를 수탈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그 결과, 호화로운 궁전이 곳곳에 건설됐고, 사치스러운 생활이 이어졌다. 덩달아 그림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궁전이나 교회를 장식하려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었다. 스페인 필리페 4세의 궁정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가로 316㎝ 세로 276㎝의 ‘시녀들’을 제작한다. 이 그림은 크
봄이다. 시인이자 극작가인 T.S. 엘리엇이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는 4월이다. 산과 들은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고 진달래·개나리가 지천으로 흐드러진다. 나물 캐는 처녀가 언덕으로 다니며 고운 나물 찾는다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더없이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그 시절 학교에서 단체로 가도 즐겁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여도 좋았던 가장 즐거운 일이 ‘소풍의 추억’이 아닐까 싶다. 소풍 이야기로 자주 회자되는 그림으론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있다. 1863년
19세기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는 밀을 빻던 풍차가 여러 개 있었다. 우리의 눈과 귀에도 익숙한 물랭루즈는 아직도 건재한데, 그 유명한 캉캉춤 공연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고흐와 르누아르 그림의 배경인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는 도시계획으로 철거되고, 지금은 레스토랑 1개만 영업하고 있다고 한다. 르누아르의 그림에선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의 눈부심이 그림 속 인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순간을 포착한다. 순간의 감흥을 놓치지 않고 빠른 시간에 그려내는 인상
바야흐로 아지랑이가 따스하게 찾아드는 산과 들에는 봄빛이 완연하다. 조금 있으면 개나리·진달래가 예쁘고 연한 꽃잎으로 인사를 건네올 듯하다.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년)의 비너스를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이 있다. “봄은 이렇게 온다.” 누구의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릴 적부터 이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보자. 아름다운 여신이 키프로스 앞바다에서 거품으로부터 태어나 조가비를 타고 훈풍에 밀려 뭍으로 오른 모습이 참으로 신비하고 아름답다. 서풍의 신神 제피로스가 연인 아우라와 함께 꽃바람을 불어 밀어
르네상스는 미술사에서 가장 큰 비중으로 다루는 대가大家의 시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라파엘, 그리고 보티첼리와 도나텔로, 베르키오가 이 시대에 활동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카라바조는 르네상스가 끝나가던 16세기 말에 태어났다. 그가 활동한 때는 ‘바로크 시대’로 르네상스만큼 유명하지 않다. 그래서 카라바조를 처음 접하는 이들도 많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유럽에서 만날 수 있는 대작은 사실 바로크 시대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와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빈 미술사 박물관의 가장 크고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