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3편
물랭 드 라 갈레트
‘감자먹는 사람들’ 완성한 고흐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새로운 조형의 세계와 조우해
기존 그림 버리고 새로운 시도
어둡고 투박한 흙의 느낌 떠나
밝고 에너지 넘치는 새로운 표현
19세기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에는 밀을 빻던 풍차가 여러 개 있었다. 우리의 눈과 귀에도 익숙한 물랭루즈는 아직도 건재한데, 그 유명한 캉캉춤 공연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고흐와 르누아르 그림의 배경인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는 도시계획으로 철거되고, 지금은 레스토랑 1개만 영업하고 있다고 한다.
르누아르의 그림에선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의 눈부심이 그림 속 인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순간을 포착한다. 순간의 감흥을 놓치지 않고 빠른 시간에 그려내는 인상주의 작가의 기법 그대로다.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레트’를 보고 있으면 보는 사람도 어느새 그림 속 인물과 하나가 돼 즐거움을 교감하는 느낌에 빠진다. 이 역시 밝고 화려하면서도 명랑한 인상주의 그림의 특징이다.
오늘 만나는 고흐의 ‘물랭 드 라 갈레트’는 고흐가 헤이그와 브루셀 등을 돌아 파리에 도착한 이후의 작품이다. ‘감자먹는 사람들’을 완성한 고흐는 동생 태호에게 꼭 팔아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팔릴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파리 화상畵商 태호는 형을 몽마르트르로 불러온다.
새롭게 마주한 파리 몽마르트르 화가들의 그림을 본 고흐는 충격과 환희를 봤을 것이다. 새로운 조형의 세계를 조우한 고흐는 과감히 자신이 신봉하던 그림을 버리고 새로운 그림을 받아들여 다시 태어난다.
어둡고 투박한 흙의 느낌을 떠나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새로운 표현을 시도한다. 이 무렵 고흐는 ‘라 갈레트’를 여러 점 그렸는데, 다양한 각도에서 화폭에 담았다. 아마도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화가들과 교류하며 창작의 의욕이 봄날처럼 쏟아졌던 것 같다.
당시 르누아르가 ‘라 갈레트’의 내부를 그리며 빛의 새로운 흐름과 감동을 잡아내고 있을 때 고흐는 외부를 주로 그리며 형태와 조형을 실험했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사물의 시시각각 다른 모습과 느낌으로 받아들이면서 고흐는 새로운 조형에 눈을 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흐의 ‘물랭 드 라 갈레트’를 보고 있으면 봄을 맞아 새로운 생명을 심고 가꾸는 그림 속 한 남자를 만난다. 아마도 새롭게 태어나는 고흐 자신을 그렸을지 모른다. 이후 그는 인상주의적 화풍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하고 받아들여 새로운 세상을 펼쳐 나간다.
그림 속 돌 담장을 보면 그동안 그렸던 그림과는 완전히 다르다. ‘밭일 하는 농부’ ‘바느질 하는 여인’ ‘땅 파는 남자’ 등과 같은 어둡고 단순한 색상은 이제 다양한 컬러의 향연으로 온통 그림속을 가득 채우며, 활기찬 자신감을 뿜어낸다.
봄날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에 밭을 일구고 꽃나무를 심는 한 남자는 자신의 미래를 심고 있음이리라. 이렇게 새로운 생명의 불꽃을 일으킨 고흐는 정말 불같은 에너지로 명작을 탄생시키며 비로소 자신의 세계를 열어젖힌다.
또한 고흐의 그림에는 하늘을 나는 새가 자주 등장하는데 초창기 스케치에서부터 이 작품 ‘물랭 드 라 갈레트’, 마지막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까지 새가 나온다. 현실의 힘들고 어려운 삶을 떨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날고 싶음이었을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뭐 하나 갖춰진 것이 없고 히스테릭한 자존감으로 예술을 지향하던 고흐는 물랭 드 라 갈레트를 그린 날로부터 4년 후 37세의 나이로 짧은 삶을 마감한다. 불꽃처럼 살다간 처절한 한 작가의 시작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몽마르트르의 풍차는 아직도 고흐의 그림 속에서 꿈과 함께 돌고 있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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