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7편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
딸들이 사이좋게 피아노 치는 모습
모든 부모의 로망 그림에 담아내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편안한 느낌
작가의 천재적 조형감각 돋보여
인상주의 화가 중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년)처럼 행복한 화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을 갖고 있다. 따뜻한 색상과 편안한 구도,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묘사한다. 특히 어린 아이와 행복한 여인을 그린 그림은 정말 사랑스럽다.
하지만 르누아르의 어린 시절은 그리 부유하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 사회를 감안했을 때, 그의 어린 시절은 혁명과 산업화로 빈부 격차가 점점 커지던 시기였을 것이다. 실제로 르누아르는 어린 시절을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면서 어렵게 보냈다.
그런 그가 인상주의 화가들을 만난 건 그림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이후다. 특히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카미유 피사로, 프레데릭 바지유, 폴 세잔 등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조형의 세계를 펼쳐갔다. 편안하고 밝은 내용들로 채운 그의 그림은 인기도 좋았다.
르누아르는 살롱전에도 입상하고, 정부로부터 작품 의뢰(피아노 치는 소녀)도 받는다. 그러면서 그림 한점 값으로 집도 사고, 생활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화가로 각광받았다. 고흐가 평생 한 점밖에 팔지 못했다는 이야기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게다가 르누아르는 여든 가까이 살았다. 노년에 손가락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아 붓을 손에 묶어 그림을 그렸다지만, 당시 기준으론 장수를 누린 셈이다.
르누아르의 행복한 그림들 중 가장 부럽고 편안한 그림을 고르라고 하면 난 서슴없이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을 꼽는다. 아빠가 사랑하는 딸들이 사이좋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보고 있는 모습은 모든 부모의 로망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르누아르는 같은 소재로 ‘피아노 치는 소녀’를 여러 점 그렸다. 인기의 방증이다.
이쯤에서 그림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어린 소녀들(이본과 크리스틴 르롤)이 피아노 치는 모습은 사랑 그 자체로 그림이 꽉 차지만, 5년 후 또다시 그린 피아노 치는 그림은 부富의 자랑까지 가미돼 있다.
그림 속 주인공들처럼 피아노를 연주하고, 소유한다는 것만으로도 부럽지만 그림의 배경을 봐도 ‘부’를 짐작할 수 있다. 배경엔 에드가 드가의 그림이 두점 걸려 있다. 왼쪽은 ‘경마장의 기수’, 오른쪽은 ‘발레 교실’이다.
에드가 드가는 인상주의 화가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니 그 댁 따님들은 아닐 게다. 그럼 그림을 컬렉션할 정도니 부를 자랑하고 싶다는 의뢰인의 마음을 르누아르가 간파하고 그림의 주제를 설정했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속셈이야 어찌 됐든 그림은 예쁘다. 특히 피아노의 오른쪽에 주황색 천으로 부드러움을 더한 것은 천재의 뛰어난 조형 감각이다. 손으로 살짝 가려보면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도 화가들은 많고, 작품도 많다. 하지만 대다수의 화가는 아직도 가난과 싸우며 고뇌한다. 심오한 철학과 미학을 추구하고 개성을 절대적 가치로 삼는 순수 회화도 깊은 맛과 정서의 교감으로 깊이를 더할 수 있겠지만, ‘아름답고, 맑고, 사랑스러운 주제를 찾아 즐거움을 나누는 작품도 좋지 아니한가’ 하고 조심스레 얘기해 본다.
당시 작곡가 에릭 사티(1866~1925년)와의 사랑 이야기로 유명한 몽마르트르의 모델 ‘수잔 발라동(1865~1938년)’은 로트레크의 그림엔 술주정뱅이 여인으로 등장하지만, 르누아르의 작품에선 사랑스런 목욕하는 여인으로, 뭉크의 그림에는 불안에 떠는 소녀로 다가온다.
이처럼 예술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는 철저히 화가의 몫이지만, 요즘 같은 따듯한 봄날엔 르누아르처럼 편안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이 참 좋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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