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11편
모딜리아니 ‘잔의 초상’
목 길고 눈동자 없는 인물
모딜리아니 작품의 특징
자신을 후원한 아내 그려
서양미술사에서 잘생긴 미남 화가를 꼽는다면 언제나 빠지지 않는 이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년)일 것이다.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다.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술을 좋아해 요절했다.
잘생기고, 그림 잘 그리고, 술도 잘 마셨으니, 주위에 친구도 많았다. 특히, ‘유트릴로’란 수잔 발라동(몽마르트르 화가들의 모델)의 아들과 친했는데, ‘표현주의’ 화가인 유트릴로는 마약 보호소 생활을 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량이 집안을 잘 꾸리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모딜리아니의 부인 잔 에뷔테른(1898~1920년)이 고생을 많이 했다. 잔과 연애 때의 일화를 잠시 살펴보자.
잔 : “당신은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나요?”
모딜리아니 : “당신의 마음을 볼 수 있을 때 그때 눈동자를 그리겠소.”
그는 요즘 말로 선수임에 틀림없었던 듯하다. 두 사람은 잔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함께 생활했는데, 생활력 없는 화가와의 삶은 늘 고달팠다. 그럼에도 잔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는 유명하다. 가난한 화가를 위해 그림의 모델이 돼주고, 가사에 육아까지 전담했지만 모딜리아니는 36살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의 유품 주머니에는 결혼 신고서가 예쁘게 들어있었는데 잔에게 전하지도 못한 채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잔은 모딜리아니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모딜리아니의 뒤를 따라 함께 묻혔다.
그후 그들의 딸 조 반 모딜리아니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전기 「모딜리아니라는 남자의 신화」를 썼다. 모딜리아니와 잔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요즘도 화가들 사이에서 종종 입에 오른다.
자! 이제 천재 화가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만나볼 차례다. 그의 그림 특징은 목이 긴 인물과 눈동자가 없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사슴)’로 시작하는 노천명 시인의 시처럼 목이 길고 가냘프면 조금 슬프고 가련해 보이는 것 같다.
모딜리아니는 한때 조각가를 꿈꿨는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그의 조각 작품은 모두 목이 기다랗게 제작돼 있다. 이는 아프리카 북부 지역의 토착 조형물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한때 아프리카 목각 조형물을 수없이 연구했던 피카소의 작품(아비뇽의 처녀들)에도 거기서 얻은 듯한 영감이 녹아 있다.
당대 파리의 화단을 주름잡은 피카소와 쌍벽을 이루던 모딜리아니의 그림은 여인의 누드가 많다. 당시 사회가 여성의 누드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의 생활은 늘 궁핍했지만, 그 작품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그의 작품 ‘누드 로소(Nude rosso)’를 보자. 붉은 포도주 빛 바탕과 푸른 쿠션은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낸다. 그 위에 누운 누드 여인의 표현은 더욱 매력적이다. 인물로 구분되는 바탕과 인체의 비례, 이를테면 그림(Figure)과 바탕(Ground)은 황금비례를 보여준다.
그래서 보면 볼수록 그림에 빠져들 만큼 아름답다. 특히 한란寒暖의 색상 대비와 여인의 붉은 입술, 검은 머리, 진한 눈썹 등은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연상케 한다. 모딜리아니는 이 작품을 자신의 개인전에 전시했는데, 경찰이 “음란하다”는 이유를 들어 전시장 자체를 폐쇄한 것으로 유명하다.
가난과 질병으로 세기말을 살다간 화가 모딜리아니. 조금 앞서간 것은 삶뿐만이 아니었다. 그림 또한 때를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잔의 사랑은 아직도 우리들 가슴에 남아 순애보를 전한다. 한발 앞선 화풍의 그림들로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던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가 그렇게 살다 간 사람이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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