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뚫지말자
조금만 기다리면
흐름은 다시온다

# “아빠, 나랑 이거 하자!” 막내가 가져온 건 러시아워 시프트. 첫째 아이부터 했으니 10년 넘은 우리 집 장수 보드게임입니다. 게임판 위에 모형 자동차를 배치하고, 각자의 말(스포츠카)을 옮깁니다. 꽉 막힌 길을 누가 먼저 뚫고 가느냐로 승패가 갈립니다. 단, 막내가 승리하기 전까진 게임이 끝나지 않습니다. 

# 오랜만에 일찍 집에 가는 날, 현실 세계의 러시아워에 걸렸습니다. 지하철 문이 열립니다. 나갈 수가 없습니다. 서 있는 사람, 나가려는 사람, 들어오는 사람이 뒤엉킵니다. “밀지 맙시다.” “나갈게요.” “잠시만요.” 날카로운 말들이 오갑니다. 구겨지듯 간신히 문을 빠져나왔지만, 환승역 통로에 사람이 가득합니다. 

# 억지로 뚫어봅니다. 역부족입니다. 현실은 게임과 다릅니다. 단숨에 탈출하는 마법 카드도 없습니다. 숨을 고르고 최대한 구석에 붙어서 기회를 봅니다. 지하철이 다시 들어오고 우르르 사람들이 내립니다. 뚫고 나가는 흐름이 생깁니다. 기차놀이 하듯 앞사람을 따라 한 줄로 비집고 나갑니다. “휴 살았다.” 통로를 빠져나오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 덕분에 몇 가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매일 이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열망이 러시아워를 이겨낸다는 점도 깨우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다리다 보면 다시 길이 열린다는 사실도 배웁니다. 게임과 다른 현실의 러시아워에서 배운 지혜이자 진리입니다.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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