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아트 앤 컬처
김용우의 미술思 17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예술로 외교관 역할까지
신화·성경 주제 삼은 작가
‘트로이 전쟁’ 스토리 그린
희대의 명작 ‘파리스의 심판’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8~1639년, 파리스의 심판, 119×381㎝, 나무패널에 유화,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그림 | 위키미디어 제공]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1638~1639년, 파리스의 심판, 119×381㎝, 나무패널에 유화,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그림 | 위키미디어 제공]

화가들 중 가장 성공한 이를 꼽자면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년)를 빼놓을 수 없다. 개신교를 신봉한 플랑드르(Flandre·벨기에와 네덜란드 일부 지역·스페인령) 출신의 아버지를 따라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부친이 사망한 후엔 가톨릭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일찌감치 플랑드르 영주 페르난도의 궁정화가로 활약한 루벤스는 화가로 입지를 구축한 뒤엔 영국 찰스 1세와 스페인 펠리페 4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양국의 정치적 가교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공로였는데, 예술로 외교관의 역할까지 수행한 셈이다. 그래서인지 귀족들과의 친분이 두터워 주문을 많이 받았고, 규모가 큰 대작들도 제작했다. 

특히 프랑스 앙리 4세의 왕비 마리 드 메디치가 후원해 제작한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 연작(24점)은 지금도 루브르 박물관 단독 전시실에서 만날 수 있다. 명예와 재력을 겸비한 화가 루벤스는 부인 이사벨과 사별 후 53세의 나이에 16세 헬레나를 부인으로 맞는다. 루벤스는 가족의 얼굴을 작품 속에 많이 남겼는데, 작품 ‘삼미신三美神(축제와 환희, 광체를 뜻함)’에서 오른쪽엔 이사벨을 왼쪽엔 헬레나를 그렸다.

루벤스 그림의 특징은 여인의 신체를 풍만하게 그리는 것이다. 미의 여신들조차 오늘날의 기준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루벤스는 신화나 성경 이야기를 주제로 삼은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이런 주제는 신화와 성경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화가, 이를테면 수준 높은 화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그의 작품 ‘파리스의 심판’을 보자. 작품의 배경은 ‘트로이 전쟁’이다. 파리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의 동생이다. 하지만 신탁神託에 의해 파리스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오명을 썼고, 어린아이 때 이데산에 버려졌다. 

그림은 목동의 도움으로 양치기로 성장한 파리스 앞에 헤르메스가 나타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헤르메스는 파리스에게 말한다. “잠시 후 아름다운 여인 3명이 나타날 텐데, 그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에게 황금의 사과를 줘라.”

잠시 후 나타난 여인들은 올림포스산의 여신들로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비너스)다. 고전의 작품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시각화해 스토리를 담아내는 도구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이 중첩되기도 하고, 그들의 신분을 알릴 만한 정보를 넣는 방법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파울 루벤스, 삼미신 [그림 | 위키미디어 제공]
파울 루벤스, 삼미신 [그림 | 위키미디어 제공]

그림 오른쪽 여인이 헤라다. 징표로 공작새가 보인다. 공작새는 제우스 부인 헤라가 남편의 외도外道를 감시하기 위해 눈을 100개나 붙인 아르고스가 변신한 것이다. 아르고스가 죽임을 당한 후 이를 불쌍하게 여긴 헤라가 공작새의 꼬리에 눈을 박아 줬다. 

가운데는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다. 사랑의 메신저 큐피드와 늘 함께한다. 왼쪽은 아테나로 제우스와 헤라의 딸이다. 그는 지혜의 신이자 전쟁의 신이다. 어느날 제우스가 머리가 너무 아파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이를 털어놨더니, 제우스의 머리에서 창과 투구를 쓴 아테나(로마표기 미네르바)를 꺼내줬다는 게 그의 탄생 설화다. 

어쨌거나 그림에선 아프로디테가 황금 사과를 받는다. 파리스는 자라서 궁으로 들어가고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나를 꾀어내 트로이로 도망갔다. 이런 행동에 화가 난 메넬라오스는 그의 형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를 침공한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출발이다.

이렇게 이야기는 가지를 치고 살을 더해 수많은 이야기를 재생산한다. 그리스연합군 대장 아킬레스와 트로이 영웅 헥토르의 싸움뿐만 아니라 신들의 편가르기도 흥미를 끈다. 이야기를 그림이란 예술로 승화한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힘이다.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
cla03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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