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노을, 그리고 커피
그래 이만하면 됐다.
# 정신없는 출장길. 또 다른 출장길 기차표를 예매합니다. 일정을 마친 저녁, 휴대전화를 켜고 기차표를 확인하는데 이상합니다. ‘나의 티켓’ 페이지에 예매한 기차표가 없습니다. 뒤통수가 싸해집니다. 순간, 몇년 전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 가족과 다같이 순천을 갔을 때입니다. 갑작스러운 차 고장으로 수리를 맡겼습니다. 연휴라 며칠 뒤에 수리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만일을 대비해 기차표를 예매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날, 다행히 차 수리가 끝났습니다. 정비사님께 감사 인사 10번 드리고, 열심히 운전해서 서울로 올라왔죠.
#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뒤통수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아! 기차표!!!” 확인해보니 열차는 이미 한참 전에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반환은 불가능. 15만원을 그렇게 허공에 날려보냈습니다.
# 기차요금을 확인하는 지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매 내역을 보니 날짜를 잘못 입력했네요. 역시나 기차 운행은 한참 전에 끝났습니다. 환불도 불가능입니다. 스스로를 자책해보지만 어쩌겠습니까. 다 제 실수인 걸요. 누굴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 가뜩이나 하루종일 덥고 습한 하루였습니다. 씁쓸한 마음을 애써 달래려 더 씁쓸한 커피 한잔을 삽니다. 그땝니다. 바람이 살짝 스칩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멋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래! 이 풍경을 보기 위해 지불한 값이야!” 구름과 노을, 거기에 씁쓸하지만 씁쓸하지 않은 커피 한모금. 금세 속상한 마음이 풀립니다. 역시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인 듯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말이죠.
사진·글=오상민 천막사진관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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