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新직업 미래 보고서 13편
질적 탐구 | 박창희 겸임교수
1세대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10년 새 5배 커진 다이어트 시장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도 주목받아
민간단체 주관 자격증 생겼지만
신직업으로 자리 잡는 데 실패해
기술, 트렌드. 인식…. 모든 게 빠르게 변하는 시대다. 신기술이나 새 트렌드로 여겨졌던 것들도 조금만 지나면 옛것으로 인식된다. 직업도 마찬가지다. 한때 열풍을 일으켰던 신직업 중엔 퇴행을 거듭한 것도 있는데, 그중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도 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1세대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박창희 한양대학교(체육학) 겸임교수의 얘기를 들어봤다.
2000년대 이후 건강·웰빙 바람이 불면서 ‘다이어트’가 세상의 화두에 올랐다. 덩달아 건강한 몸을 디자인하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도 주목을 받았다. 각종 TV와 신문 등 각종 미디어에서 이들을 비중 있게 다룰 정도였다. 그 무렵, 정부도 관심을 가졌고,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자격증’도 생겼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흘렀다. 다이어트 열풍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다이어트 시장은 7조5000억~10조원에 이를 정도로 비대해졌다. 2014년 다이어트 시장의 규모가 2조원대였다는 걸 감안하면 10년 새 5배 이상 커졌다. 그렇다면 10여년 전 신직업으로 떠오른 다이어트 프로그래머의 시장도 성장했을까. 박창희 교수에게 물었다.
✚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란 직업을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9년께 고혈압 진단을 받았어요. 이젠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더군요. 하지만 문득 약을 먹기보단 관리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술을 끊고, 몸도 돌보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2년 만에 체중이 15㎏ 이상 줄고,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제가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란 직업을 선택한 이유였죠.”
✚ 다이어트를 하다가 신직업을 가진 셈이군요.
“저의 변화를 본 사람들로부터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강의를 하려니 딱히 내세울 만한 이력이 없더군요. 그때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라는 민간 자격증이 있는 걸 알게 됐어요. 이후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박창희 교수는 그 전까지 광고회사를 운영했다. 직업 관례상 접대 등 술자리가 많았는데, 이는 건강을 해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박 교수는 지금도 광고마케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 그럼 강의를 시작하면서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가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라는 독립된 직업인으로는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 왜죠?
“무엇보다 돈을 버는 게 어려웠습니다. 따로 채용하는 회사가 많은 것도 아니었죠. 저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를 강의에 필요한 스펙 정도로 사용한 게 전부였어요. 강의에 도움이 되는 보조 수단 정도였죠.”
✚ 자격증까지 취득했는데, 왜 그런 거죠.
“직업이 되기 위해선 자격증만 있어도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해요. 하지만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자격증은 그러지 못했죠. 지금도 관련 일을 하려면 병원이나 피트니스 센터 등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다이어트 프로그래머가 주된 직업이 아니에요. 의사나 헬스트레이너가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취득하는 자격증 정도죠.”
✚ 교수님만의 생각은 아닌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2009년 웰빙 열풍이 불 때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로 활동한 전문가가 적지 않았어요. 몇몇 분은 TV에 출연해 큰 인기도 누렸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더 이상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의사나 헬스트레이너라는 타이틀 뒤에 다이어트 프로그래머가 붙는 게 전부죠.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는 데 실패했다는 방증입니다.”
✚ 다이어트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이해가 되지 않네요.
“비만이 질병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그러면서 의사의 처방이 절대적인 것처럼 자리 잡았죠.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라는 전문가보다는 의사를 더 신뢰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피트니스 센터만 가도 식단관리나 운동스케줄 같은 다이어트 프로그래머가 하는 일을 다 해주고 있어요. 굳이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를 찾을 이유가 사라진 셈이죠.”
✚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를 공적 영역으로 올렸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국가 자격증을 만들고, 정부 차원에서 육성정책을 펼쳤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어떤 정책을 펼쳤느냐에 따라 다이어트 프로그래머가 전문직이 됐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큰 흐름을 바꾸는 건 힘들었을 거예요. 정부의 정책만큼 중요한 것이 다이어트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니까요.”
✚ 다이어트 프로그래머가 직업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보조 수단에서 벗어나긴 힘들 겁니다.”
✚ 이유가 무엇인가요.
“다이어트 프로그램은 짧은 시간에 눈에 띄는 효과를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운동은 평생 하는 거고, 식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죠. 그런데 다이어트가 미美의 기준이 되면서 빠르고, 쉽게 체중을 줄이려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최근 불고 있는 ‘위고비’ 열풍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하지만 천천히 살을 빼길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 결국 인식의 문제이군요.
“네. 단순히 살을 빼는 게 아니라 운동과 식이요법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하면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은 사라질 겁니다.”
✚ 다른 문제는 없나요.
“있습니다. 인식이 바뀐다고 해도 이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단순히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짜는 것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다이어트 도시락’처럼 관련된 상품을 팔든가, 헬스트레이너를 병행해야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가 보조 수단, 보조 상식으로밖에는 쓰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 교수님이 대학교 강단에 서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가요.
“그렇죠. 다이어트 관련 강의를 계속했지만 어느 순간 회의감이 몰려왔어요. 강의를 들을 때는 공감하지만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아무리 좋은 식습관과 운동습관이 중요하다고 얘기해도 이를 지키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강의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죠.”
✚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로 활동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다이어트 강사와 프로그래머로서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나름 열심히 강의를 했지만 대중을 설득하고 변화를 끌어내지는 못했기 때문이죠.”
✚ 그렇다면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를 신직업으로 보시나요.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를 뽑는 채용 공고를 본적이 없습니다. 다른 수식어가 붙지 않는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도 보기 힘들어요. 직업으로서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는 사실상 고사 상태라고 생각해요.”
정부는 2011년에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를 ‘신직업’에 등재했다. 하지만 신직업이 활동할 만한 ‘시장’을 만드는 덴 실패했다. 국내 포털사이트 네이버를 통해 확인한 관심도(20점)도 높지 않다(7월 14일~8월 14일 통계). 만약 다이어트 프로그래머를 ‘국가자격증’으로 전환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박 교수가 내린 비관적 진단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신직업은 ‘리스트에 등재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신직업의 경로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으면 ‘리스트 등재’ 자체의 가치마저도 상실한다. 박 교수의 비관론에 정부가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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