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PDF’로 만든 서적을 아무렇지도 않게 유통하고 공유한다. 누군가는 학생들의 일탈이라고 꼬집지만, 그렇게 비판하기엔 ‘디지털 불법복제’의 늪이 너무 깊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단속을 강화해야 할까, 아님 합법적이면서도 편리한 또다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까.“단순한 저작권 침해가 아닌 지식생태계 전반을 붕괴시키는 구조적 위기.” 지난 6일 열린 ‘디지털 불법복제 개선 방안 모색’ 정책 토론회에서 나온 절박한 진단이다. 한국학술출판협회를 비롯한 4개 출판단체가 참여하고 김교흥 위원장(더불어민주당)과 정연욱 의원(국민의힘)이 공동
실제 노동을 하고 있진 않지만, 노동하기 위해 견디는 시간도 새로운 ‘노동’ 개념에 편입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노동하기 위해 애쓰는 청년 세대는 물론, 모든 세대가 품고 있는 미래를 향한 불안 요소를 좀 더 구체적으로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노동’ 문학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문학이면 문학이지 문학 앞에 굳이 ‘노동’이라는 단어를 붙여 구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무래도 ‘미래파’라는 용어처럼 특정한 시기에 힘 있는 담론이 새롭게 ‘발견(명)’되는 과정에서 힘의 크기를 계량화하기 위해 시도된 하나의 사건과 같은 것이 아닐까.
노점상에게 자리를 지키는 것은 생존과 다름없다. 그러나 노점상들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온종일 마음을 애태워야 한다, 한눈이라도 팔면 경쟁 노점상에게 자리를 뺏기거나 신고당해 쫓겨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인 박상화는 이런 노점상의 한을 엄마에 빗대 이야기한다. 이른바 정적 노동의 눈물이다. 자본주의 부조리에 저항한 노동자 시인 박상화의 첫 시집 「동태(2019년·푸른사상)」에는 정지해 있는 이미지들이 자주 출현할 뿐만 아니라 서로 겹친 채, 정적 노동이라는 하나의 상징을 만들어낸다. 시의 소재로 활용되는 의자라든지, 나무라든지, 얼
역사는 부엌의 행간을 기록하지 않는다. 먹고 떠난 자리는 누구로 인해 아름다운가. 시인 김성백은 역사적 흔적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엌 속에서 일어나는 노동의 민낯을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당신의 부엌은 어떠한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동을 누군가 하고 있진 않은가.2025년은 문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성 서사’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시대는 분명히 아니지만, 여성 서사가 능동적으로 읽히는 시대임은 부정할 수 없다. 일례로 최근에 출간된 「제16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문학동네ㆍ2025년)」을 다룬 한겨레신문 문구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 정신병원, 노인요양병원, 그리고 미세먼지 가득한 도시를 오가며 40년 넘게 인간의 ‘폭력’과 ‘광기’를 시로 고발해 온 시인이 있다.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프다”를 좌우명으로 삼은 그는 모교 강단에서의 강의를 마치고 8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행정 절차가 멈춘다고 시인의 시간까지 멈추는 건 아니다. 이승하(65) 시인은 새벽마다 ‘사람 사막’의 모래알을 뒤적이며 새로운 언어를 찾는다.✚ 오늘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 공책을 펼치셨다지요. 정년을 앞둔 하루는 어떤 리듬으로 흐릅니까?“새벽 네 시에 눈을
오랜 시간 유지돼온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깨려면 어느 정도의 희생을 담보로 걸어야 한다. 이주민, 난민, 고공에 올라 더위를 견디는 자, 찌그러진 자, 홀로 고독한 길을 선택한 자가 겪어야 했던 혐오의 눈빛을 바꾸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써온 것도 그런 이유일 테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읽은 인상 깊은 텍스트가 있다. MSM 퀴어 활동가로 글을 쓰고 있는 유성원의 책이다.2년 전, 마이아 코베이브(Maia Kobabe)의 그래픽 노블 「젠더퀴어(2023년)」 와 관련해 특정 매체에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텍스트는 여성도 남
아버지는 5ㆍ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억눌렀던 진압군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아들에게 데모할 땐 절대로 앞에 서지 말라고 당부했다. 아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되레 피에 젖은 아버지의 ‘월급봉투’에 빚을 지고 있다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고, 교직에서도 해직됐다. 그후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택배일을 시작했다. 그의 노동은 참회의 노동이었을까.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다 보면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적인 시간과 사정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제법 관계가 친밀해졌다고 믿는 경우
어느 공사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 꼭두새벽에 잡일하는 어느 골목의 노동자, 어느 밥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노동자…. 노동이 무엇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세상에 어떤 노동이든 힘들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에 노동 이후의 표정은 언제나 값지다. 그럼에도 그들의 힘겨운 노동을 바라보는 사람들 중 몇몇은 미안함에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중엔 과연 높으신 양반들도 있을까.신경현 시인은 오랜 시간 대구 성서공단 노동자로 살았다. 그의 일터가 오로지 공단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곳에 머물면서 다양한 노동의 풍경을 응시했고, 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던 중 목숨을 잃은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그의 이름을 표제로 삼은 책이 나왔다. 「김용균, 김용균들(오월의 봄ㆍ2022년)」이다. 주목할 건 ‘들’의 존재다. 이 책은 ‘김용균’을 애도하는 차원을 넘어 ‘김용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권과 안전을 논한다. 죽음은 죽음을 부른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을 잉태한다. 죽음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죽음을 거스를 수는 없지만, 타인의 죽음을 응시하면서 새로운 삶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죽음 이후를 만질 수
조성래 시인의 첫 시집 「천국어 사전」에는 다양한 ‘노동의 흔적’이 묻어 있다. 그중 그가 노동 현장에서 만났던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은 중요하다. 그들의 삶을 모질게 그리면서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를 쳐다보는 ‘표정’을 알려주고 있어서다.조성래 시인의 첫 시집 「천국어 사전(2024ㆍ타이피스트)」은 진실한 언어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 진실하다는 것은 그의 언어가 동시대의 다른 시인보다 유달리 특별하거나 세련돼서 진실하다는 말이 아니다. 표현하는 언어도 세계관을 운영하는 방식도 시인마다 각양각색이니 하나의 표정만을 최고로 꼽기는 어렵다
소방관은 아주 종종 타인의 ‘대용품’으로 취급받는다. 누군가를 대신해 위험한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소방관의 공상公傷(공무로 입은 손상) 처리 문제는 풀지 못하고 있다. 소방관이 질병에 걸리면 여전히 직접 입증해야 한다. 2017년에 공상입증지원제도가 생겼지만,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해 주는 것에 머물러 있다. 우리가 소방관의 표정을 주목한 이유다.문경수 시인을 본 것은 2024년 봄 출판기념회 자리였다. 모임에 거의 나가지 않는 탓에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서먹서먹해서 혼
바나나 한 송이를 새벽에 배송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새벽에 바나나를 배송해야 할 노동자 한명 때문에 수많은 노동이 발생하고 또 얽힐 것이다.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이어진 노동의 다양성을 우리가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이번 ‘노동의 표정’에선 개처럼 뛰고 있는 노동자들, 그 사이 사이에 숨은 노동자의 애환을 살펴봤다. “개처럼 뛰고 있긴 해요” 이 목소리는 고故 정슬기씨의 마지막 카톡 메시지다. 대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기에 이런 말을 했던 것일까. 배달 플랫폼 노동자였던 그는 이 말을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쓰러졌고, 두번
웹소설 하면 흔하게 떠오르는 3가지 코드가 있다. 회귀, 빙의, 환생, 줄여서 회빙환이다. 이제는 웹소설에서 거의 공식으로 읽힐 만큼 유행이 된 소재들이다. 이 소재를 접했을 때 독자들은 주인공의 빠른 성장과 성취를 기대한다. 「연애지상주의구역」은 다르다. 회귀와 빙의라는 일종의 치트키가 ‘빠른 전개’와는 거리가 있다. 화차의 「연애지상주의구역(이하 연지구)」는 현실 속 ‘선배’와 주인공 ‘태명하’의 대화로 시작한다. 매번 명하에게 소설을 보여줬던 선배는 그 소설을 게임으로 만들겠다며 명하에게 소설과 게임의 차이를 질문한다. 명하는
수천년을 인류와 함께한 스포츠 중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를 하나 골라야 한다면 축구일 것이다. ‘대한민국 4강 신화’에서 ‘월드클래스 손흥민’까지 유망주였던 10대 선수가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가 되기까지, 이런 성공담은 웹소설 스포츠물을 즐겨 읽는 독자에겐 흔한 서사다. 「축구천재로 오해받는 중입니다」에서는 벽을 뛰어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스스로 세운 벽이다. 한명현 작가의 웹소설 「축구천재로 오해받는 중입니다」는 이탈리아로 축구 유학을 떠난 10대 소년 ‘이지안’의 성장 일기다. 이지안은 ‘축구 지능’이라는 독보적인 잠재력을 가지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게 인생이다. 무엇이든 잃은 후에야 소중함을 깨닫는 것도 삶의 일면이다. 가까이 있으면 잘 보이지 않으니까, 그럴 법도 하겠다. 김명남 시인이 2011년 출간한 「시간이 일렁이는 소리를 듣다(2011년ㆍ시평사)」는 강원도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노동과 거기서 비롯되는 힘겨움을 고백한다. 지금은 인천에 사는 시인의 거리 때문인지 이 시집은 강원도의 노동을 진실하게 담아내고 있다.그리워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감정의 모든 걸 알 수 없지만, 닿을 수 없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니 이 감정
「나 혼자만 레벨업」은 웹소설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웹소설을 읽는 독자 중에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영화 개봉이 예정된 「전지적 독자 시점(전독시)」과 비교할 만한 작품으로, 「전독시」 이전 시대를 대표하는 웹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빠르고 시원한 전개의 정석이지만 성장 없는 강력한 주인공이 주는 의미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나혼렙」은 ‘주인공이 혼자서 다 하는’ 시대의 포문을 열어젖힌 작품이자 후발 웹툰ㆍ웹소설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의 시작을 함께한 선두주자다. 작품의 배경은 몬스터와 이세
그림과 글을 함께 작업하는 만화가. 이들에게 글값만 지불하는 건 정당할까. 이런 의문은 노동의 현장 곳곳에서 존재한다. 돈을 주는 사람과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이 다르니, 간극이 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건 이런 간극을 ‘무리 없이’ 풀어갈 수 있느냐댜. 만화가 권용득은 유머로 부조리를 이야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만화가 권용득은 특별한 사람이다.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한 건 그가 성공한 사람이라거나, 가진 게 많다거나,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다거나, 그가 속한 만화계에서 이름을 널리 알렸기 때문이 아니다.물론 그는 오랜 시
공간과 도구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직업 ‘이발사’. 누군가는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부러워할지 모른다. 마치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으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일할 수 있는 시대를 꼬집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 만만한 노동이 어디 있으랴. 노동의 결을 모두 알 순 없겠지만,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섬세한 사연이 있다.최근에 알게 된 지인들과 좌담하기 위해 파주에 있는 동네 서점인 ‘쩜오책방’에 방문했다. 약속 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 터라 서점 구경도 할 겸, 그곳에 전시된 책
웹소설 독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욕망을 품고 주인공을 통해 대리 만족하려 한다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은 ‘돈’으로부터 해방되길 원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독자들은 조금은 낯선 주인공의 ‘살아가는 법’을 지켜본다. 2편으로 나눠서 「마법학교 마법사로 살아가는 법」의 제목과 독자의 반응을 살펴봤다.웹소설의 제목은 작품 내에 존재하는 여러 패턴 중 일부를 데이터화해 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웹소설에서는 제목을 통해 작품의 핵심 패턴을 읽어내는 게 가능하다. 「나 혼
돈이 있어야 내 삶에 투자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농약이 들어가지 않은 채소를 고를 수 있고, 유기농 우유와 달걀을 고민 없이 사 먹을 수 있다. 어쩌면 삶이 그런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노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엔 이나임 시인의 작품 속에서 노동의 표정을 찾아봤다.이나임 시인의 브런치(brunch story) 프로필 소개에는 “삶을 삶아서 가지고 왔으니 맛있게 드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자신의 삶을 고백의 형식으로 여과 없이 보여줄 테니 마음껏 구경하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 말이 왠지 모르게 역설적으로 들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