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영업으로 홍보관 끌어들여
돈 부족하다면 대출 브로커 연결
공적지원제도까지 넘보기도

분양홍보관까지 찾아온 경위는 각자 달랐다.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만난 사람 때문에 ‘놀러 온’ 청년도 있었고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통해 방문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홍보관에서 맞닥뜨린 상황은 비슷했다.

분양홍보관에 발을 들여놓은 청년들은 대출 브로커에게 연결됐고, ‘분양의 덫’에 걸려들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론 나올 수 없는 대출금은 대출 브로커의 ‘안내’와 ‘꼼수’로 통장에 들어왔다. 일이 커지자 분양대행사 측은 “청년들에게 대출을 안내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고 대출 브로커는 연락을 끊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애먼 청년들을 옭아맨 ‘분양과 대출의 덫’을 취재했다.

분양대행사는 불법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업 과정엔 대출 브로커가 동원됐다.[사진=뉴시스]
분양대행사는 불법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업 과정엔 대출 브로커가 동원됐다.[사진=뉴시스]

낯선 사람의 ‘영업’을 단칼에 쳐내는 건 어렵지 않다. 길을 걷다 만나는 호객 행위를 거절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이 권유하는 영업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소개팅 앱에서 만난 사람의 권유로, 또는 주변 사람의 권유로 ‘분양홍보관’에 왔던 20대 청년들이 그랬다. 계약한 사람만 수십명에 달한다. 오르는 부동산 가격은 ‘투자하면 무조건 된다’라는 환상을 만들었고 여기에 넘어간 사람들은 ‘상가 위치’만 확인해보라는 분양대행사의 요구에 청약금을 넣었다.

고전적인 영업 방식이었던 텔레마케팅이나 길거리 호객 행위 대신 ‘사람’을 통한 영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얘기다.

공적지원제도까지 손대는 브로커들

물론 호객도, 지인知人 영업도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물건 사는 게 본인의 선택이듯 부동산 분양도 본인들이 원해서 받은 것이 아닌가.” 본인의 선택으로 이뤄진 결정인 건 맞다. 그렇지만 20대 청년들이 부동산을 분양받는 과정이 ‘정상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작동해야 할 ‘안전장치’들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대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대출 승인’이 버젓이 이뤄진 건 단적인 사례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수익형 부동산을 분양받게 된 청년들의 대출 과정을 따라가 봤다.

■ 돈 없어도 대출 있으니까 = ‘돈 없는’ 청년도 분양대행사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없어도 빌릴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소개팅 앱을 통해 만난 사람의 권유로 분양홍보관에 방문한 20대 A씨는 애당초 수익형 부동산을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소개팅 상대방과 그의 상사가 “좋은 상품을 회사 보유분으로 저렴하게 분양한다”고 설득하자 마음이 흔들렸다. 경기도 신도시에 만들어지는 지식산업센터 상가였는데 계약금만 2000만원 이상이었다. A씨 수중에 없는 큰돈이었다.

분양대행사 직원은 “자금을 융통하는 게 어떻겠느냐”며 “적당한 ‘대출 상담원’이 있으니 연결해 주겠다”고 말했다. A씨가 안내받은 ‘대출 상담원’은 은행 직원이 아니라 소속 없이 일하는 ‘대출 브로커’였다.

 

이렇게 대출 브로커와 엮인 이는 A씨만이 아니었다. 다른 청년들도 비슷한 경로로 분양홍보관을 찾았다가 ‘불편한 사슬’에 엮였다. 대출 브로커는 능수능란하게 청년들을 요리했다.

처음엔 제1금융권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하도록 유도했다. 그럼에도 돈이 모자라면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신용대출을 받도록 서류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심지어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지원제도도 추천했다. 생계가 곤란한 청년들을 위해 마련된 ‘햇살론Youth(유스)’까지 분양 계약을 위한 대출 창구로 활용했던 거다. 

햇살론유스는 생계가 곤란한 대학생, 중소기업 취업 청년(1년 이내)에게 1년간 600만원 한도로 최대 1200만원을 빌려주는 공적지원제도다. 어쨌거나 이렇게 마련한 수천만원은 분양대행사가 팔아야 하는 수익형 부동산의 계약금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갔다.

[※참고: A씨처럼 주변인의 권유로 분양홍보관에 방문했던 B씨는 “대출 브로커가 요구하는 대로 사유를 적어서 냈지만 햇살론유스를 통해선 대출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만약 B씨의 햇살론유스 대출이 승인됐다면 청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공적지원제도가 민간 부동산 업체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 대출 어떻게 받았나 = 이 지점에선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금융회사의 대출 과정이 만만치 않은데, 청년이 어떻게 그 문턱을 쉽게 넘어섰느냐는 거다. 여기엔 대출 브로커의 ‘꼼수’와 ‘전략’이 한몫했다. 대출 브로커는 청년들에게 두가지 거짓말을 요구했다. ‘대출 목적’과 ‘대출 접근 방식’이다. 

 

정부는 가계 대출 폭탄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엉뚱한 곳에서 대출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는 가계 대출 폭탄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엉뚱한 곳에서 대출이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쉽게 표현하면 이런 식이었다. “지식산업센터 내 부동산을 계약하기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하지만 절대 그렇게 말해선 안 됩니다. 은행 상담원에게 생활비 명목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해당 은행에 대출을 신청한 경위도 ‘타인의 의지와 무관한 내 판단’이라고 말하세요.”

사실 은행 대출 심사 과정의 빈틈도 문제였다. 은행은 영상통화로 본인 확인을 하거나 신분증을 보내 본인인증을 하는 절차를 거쳐 대출을 승인했다. 하지만 ‘생활비 대출’로 둔갑한 ‘부동산 대출’을 잡아내진 못했다. 이 과정에서 은행원을 직접 만난 청년도 없었다. 비대면 대출 심사의 허점이었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적지원제도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더 정교한 ‘거짓말’이 필요했다. 대출 브로커는 ‘학력’과 ‘취업 상황’까지 허위로 말할 것을 요구했다. 대출 브로커는 ‘모범 답안’까지 마련해 청년들에게 전달했다.

▲대학교 입학을 숨기고 고졸 행세를 하라 ▲편의점 아르바이트 임금은 현금으로 받는다고 하라 ▲편의점 지점명과 출근 시간은 알려준 대로 말하라 ▲재직 확인을 위한 유선 전화는 아무도 모르게 받는 대출이니 거절하라는 등이었다. 이는 대출 브로커와 연계된 마트나 편의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대출은 시작일 뿐 = 대출 브로커에 조종 당한 A씨는 제1금융권에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1600여만원, 제2금융권에서도 3300여만원을 대출받았다. 경기도 신도시의 지식산업센터 상가의 계약금 2400여만원의 두 배에 육박하는 돈을 대출받았던 거다. 왜 그랬을까. A씨의 말을 들어보자. 

“분양대행사와 대출 브로커가 이참에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더 받자고 하더라고요. 막상 두 배가 되는 돈을 더 대출받자 분양대행사에서 계약서 한장을 더 꺼내들었어요. 남는 돈으로 또다시 투자를 하라면서요. 그때 정신을 차렸죠.” 

이상한 낌새를 느낀 A씨는 이후 법적 자문을 통해 계약금을 돌려받았고, 대출금도 원상복구했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A씨는 지금 ‘대출의 수렁’에 빠져있을지 모른다. 그대로 계약이 진행됐다면 중도금까지 납부했을 게 뻔하고, 그럼 돌아오지 못했을 거다. 잔금을 치를 시기에 돈이 없어 계약금까지 포기하며 빚만 떠안았을 가능성도 높다. 

 

문제는 A씨처럼 대출 브로커에 노출된 청년들이 숱하다는 점이다. 대출 브로커를 막을 만한 안전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금배지 탓이 크다. 분양 대행사의 영업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제출된 ‘부동산분양대행업 등록제 전환’ 법안은 2020년, 2021년 연이어 국회에 제출됐지만 소관위원회인 국토교통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속임수를 통해 분양받도록 유인하는 행위’나 ‘지속적인 수분양 강요 행위’는 금지됐을 거다. 

물론 “청년이 스스로 제어하거나 통제하지 않은 탓도 있지 않은가”란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부동산 꾼들은 언제나 ‘이성’ 위에서 뛰놀고, 피해자는 ‘왜 당했는지도 모른채’ 덫에 걸리고 만다. 청년을 꼬집기 전에 ‘안전망’을 촘촘하게 만드는 게 먼저다. 그다음 탓해도 늦지 않다.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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