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된 공기업 외풍 막는 극약처방

▲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하기 전부터 낙하산 인사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사진=뉴시스)
민영화된 공기업에 투하되는 ‘낙하산’을 막으려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강한 극약처방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처럼 CEO의 임면과정을 주식시장에 공시하자는 것이다.

이석채 KT 회장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임기 중 사의를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하다. 대부분 박근혜 정부가 ‘코드 인사’를 위해 이들의 사퇴를 암암리에 종용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무수한 전례들이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영화된 공기업’의 CEO들은 어김없이 정권 코드에 맞는 인사들로 교체돼 왔다. ‘자진 사의’를 표명하기 전 검찰수사나 세무조사가 진행된 과정도 유사하다.

물론 KT와 포스코에 대한 청와대의 외압소문이 사실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새로 영입되는 CEO가 누구인지를 보면 ‘뻔한 스토리’가 될지 ‘반전 스토리’가 될지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한 청와대 외압 여부가 밝혀지는 게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정치적 외압소문이 현실화되는 악순환 구조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를 숙의해야 한다. ‘민영화된 공기업’들은 엄연히 민간기업이다. 2002년과 2000년에 민영화된 KT와 포스코엔 정부지분이 없다. 정부가 이들 기업의 CEO선임을 비롯한 인사문제에 개입할 정당한 사유가 어디에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두 기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에서부터 임원에 이르기까지 청와대의 ‘낙하산’이 투하돼 만신창이가 됐다. 더구나 경영의 전문성과 연속성 부재는 기업경쟁력과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신용등급마저 위협받고 있다.

사실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낙하산 인사의 안락한 자리 보장을 위해 건실한 기업이 희생돼선 안 된다.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경제는 물론 기업의 세계경쟁력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이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고 낙하산 인사 문제를 청와대와 정치권에만 맡겨둬선 안 된다. 시키는 대로 하는 기업 스스로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그 출발점은 ‘이사회의 역할 강화’로 삼아야 한다. CEO의 임면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사회에 둬야 할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한 명시적인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규정으로 ‘낙하산 인사의 투하’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처럼 CEO의 임면을 주식시장에 공시하는 방법도 채택할 만하다. CEO 임면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한 인사개입을 근절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지금부터라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만약 KT와 포스코에 대한 각종 수사가 MB정권의 잘못된 낙하산 인사를 청산하는 차원이라고 해도 이쯤에서 그쳐야 한다. 또한 박근혜 정부 스스로 ‘민영화된 공기업’들이 CEO 임면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어쩌면 이번이 ‘민영화된 공기업’에 대한 낙하산 인사 악순환을 끊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정부개혁연구소 소장) gosoo71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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