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은 역사적·미적 가치가 인정돼 관리·보호·보존해야 하는 유산을 말한다. 그렇기에 세계문화유산 옆에 새로 짓는 건축물은 과거 유산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아야 할 막중한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문화재급 고전 건축물 가까이에 신축 건물을 지어 조화를 이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고전적 환경의 보존’이란 명분 아래 새로운 시도가 거부되는 일이 숱해서다. 전통적 이미지를 고수하려는 단순 의지가 과거와의 공존을 추구하려는 현대 건축물의 의욕을 꺾거나, 각종 심의 과정에서 처음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일도
주위에선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를 날씬하게 만들어 데려가야 할 김 실장이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체중 증가를 점검하던 회사 대표는 체중 감량 기간에는 전화조차 없다. 심지어 살을 빼는 특효약이라면서 광고를 했던 자신들의 발명품 ‘팻-bye’는 아예 나눠주지도 않았다. 산속에 덩그러니 위치한 합숙소에는 우리와 박 강
지금까지는 살을 찌워야 했다면 이제부턴 살을 뺄 일만 남았다. 체중 감량 기간을 단축하고 보너스를 받기로 계약을 갱신한 우리는 조급해졌다. 처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속을 걷던 우리는 불과 몇 분 만에 초주검이 됐다. 체지방률이 60%에 육박하는 우리의 몸은 골격근이 거의 없는 상태이니 간신히 구르는 지방 덩어리에 불과했다. 두달여 풍요를 경험한 우리의
운명의 날. 노란 옷을 입은 ‘팻-바이(fat-bye)’ 제품 모델들이 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빵 조각, 과자, 심지어 깡통을 비롯한 음식이 공중부양으로 우리에게 왔다. 누군가는 인간 돼지에게 왜 먹을 걸 주냐며 소리를 질렀다.우리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가지다. 같은 비만인이라는 것이 괴로운 듯 표독한 야유를 보내는 자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박 강사가 느닷없이 “돼지야!” 라고 불러도 아무도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자가 “돼지야!” 하고 부르면 2~3명이 뒤를 돌아다본다. 그때마다 그는 박장대소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조만간에 다 돌아본다, 이것들아!” 그의 말이 맞다. 조만간 우리는 “돼지야” 소리에 모두 뒤를 돌아다 볼 것이다. 어느 날 윙윙 소
박 강사와 김 실장은 대화를 계속했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악마 같은 박 강사의 논리는 결국 살을 찌우기 위해 당 대사를 조절하는 췌장의 베타 세포를 휴식기 없이 돌려야 한다는 거였다. 조금 찝찝했지만 우리도 그를 원망할 순 없다. 돈 1억원에 눈이 멀어 자청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그만두면 장기를 팔아서라도 엄청난 위약금을 물기로 계약을 한 상태다
해가 중천에 뜨면 우리는 배가 고파서 일어난다. 다이어트 전문가 박 강사는 작은 책상에 앉아 연신 전화를 걸어댔다. 산골이지만 우리는 배달의 민족 아닌가. 전화 한통에 피자며 냉면이며 족발이 득달같이 달려오는데 짜장면에 군만두가 빠져 있으면 성질 급한 박 강사는 철가방 오토바이를 짧은 다리로 걷어차곤 했다. 그는 꽃돼지 사육에 흥미를 느끼는 듯 열심히 음식
다이어트 회사의 대표는 선발된 우리(수미와 혜진)에게 최대한 뚱뚱해지라고 요구했다. 두달 동안 40㎏ 이상 체중을 늘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체중이 90㎏을 넘어설 즈음 제품 론칭쇼를 할 것이고 그때 우리는 세상에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예쁘고 날씬한 모습으로 살아온 우리가 흉하게 살찐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선다는 건 생각만 해도 괴롭고 창피하
예상했던 대로 오디션장은 북적거렸다. 이 좁은 땅에 늘씬한 미녀들이 이렇게 많았나 의문이 들 정도였다. “돈 필요한 예쁜 것들이 아주 많구나!” 옆에서 수미의 친구인 혜진이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경쟁률은 100대 1을 훌쩍 넘었다. 돈에 눈이 멀면 외모에 대한 착각이 과대망상으로 발전하는 법이다. 한눈에 봐도 오디션 깜이 안 되는 여자들이 시치미를 떼고
미스코리아 도전에 번번이 실패한 수미는 정신적, 경제적으로 힘들고 지친 상태다. 마지못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그녀는 우연히 다이어트 업체의 체험단 모집 광고를 접하게 된다. 이것이 그녀가 희대의 사기극에 휘말려 겪게 될 비참한 운명의 시작이었는데 광고의 내용인즉 다음과 같다.“늘씬하고 아름다운 최고의 미인 다섯분에게 현금 1억원씩을 드립니다. 두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