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단순화 작업

삼성그룹이 지배구조 단순화에 나섰다. 우선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중간 금융지주 회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또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매입하는 등 산업적인 연관관계가 높은 계열사 지분을 묶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 삼성그룹이 산업적으로 연관관계가 높은 계열사끼리 지분을 묶는 작업을 시작했다.
2014년 2월부터 시행이 예상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따르면 총수 일가가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사의 내부거래액이 전체 매출의 12%를 넘을 경우, 시장가격보다 7% 이상 차이나는 가격에 계열사 일감을 받으면 처벌받는다.

이에 따라 삼성에버랜드는 9월 23일 제일모직의 패션부문을 인수해 삼성에버랜드의 외부매출비중을 높이고, 그룹 3세의 사업 승계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삼성에버랜드는 한발 더 나아가 11월 4일 급식사업을 물적 분할하고, 건물관리사업을 에스원에 매각해 삼성에버랜드의 외부매출 비중을 더욱 높였다. 현재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을 중심으로 이 회장의 자녀(3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이서현 에버랜드 사장이 경영권을 가지고 있다.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지주사’

그러나 이런 사업 교환으론 계열사간 지분율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본격적인 지배구조변화로 해석할 수 없다. 삼성그룹의 현재 지배구조는 다른 대기업그룹의 지배구조에 비해 불완전하다고 판단된다. 이유는 ▲금산분리가 돼 있지 않고 ▲10개가 넘는 복잡한 순환출자가 있으며 ▲산업적으로 연관성이 낮은 지분관계가 많고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가 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비非금융 지분을 매각해야 하며 ▲삼성전자나 삼성물산과 같은 핵심 계열사에 대한 삼성가문 3세의 지배력이 낮고 ▲순환출자를 동원해도 일부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이 낮다는 점이다.

그러나 12월 13일 삼성물산은 시간외 거래를 통해 삼성SDI로부터 삼성엔지니어링 지분 5.09%를 매입했다. 이로써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지분율을 7.81%로 높였다. 또한 삼성생명은 삼성물산ㆍ삼성중공업ㆍ삼성전기로부터 삼성카드 지분 6.38%를 매입, 삼성카드에 대한 지분율을 34.4%로 끌어올렸다. 따라서 이번 지분 변화를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변화의 실질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삼성은 이제부터 산업적인 연관관계가 높은 계열사끼리 지분을 묶는 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향후 지주회사 전환이나 경영권 승계와도 연관성이 있다. 그룹의 대표적인 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물산의 경우를 보면, 올 2분기 말까지만 해도 ▲그룹총수 일가의 삼성물산에 대한 직접 지배력이 1% 수준으로 매우 낮고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간의 순환출자가 있어 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으며 ▲삼성엔지니어링ㆍ삼성중공업 등 사업적 관련 기업과 지분관계가 미미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일단 이번 거래를 계기로 삼성물산이 보유한 풍부한 지분가치를 활용해 삼성그룹 내 삼성엔지니어링과 같이 사업적인 연관관계가 높은 기업을 추가로 매입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삼성생명이 삼성화재ㆍ삼성증권 등의 지분을 추가 매입해야 한다.
삼성물산은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지분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올 2분기 말까지도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지만 3분기 말 기준으로 지분 2.21%를 보유하고 있다. 이후 4분기에도 지분을 0.51% 장내에서 추가 매입했고, 이어 삼성SDI로부터 지분 5.09%를 블록딜 형식으로 매입해 삼성엔지니어링에 대한 지분율을 7.81%로 확대했다.

삼성물산은 향후 제일모직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엔지니어링의 지분까지 추가 매입해 22%까지 지분율을 높일 것으로 여겨진다.

향후 삼성그룹은 발전ㆍ화공 플랜트, 해상ㆍ육상 플랜트의 시너지 등을 노리고 삼성물산의 건설부문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시공ㆍ설계 역량, 삼성중공업과 삼성테크윈의 플랜트ㆍ해양설비 제조 역량을 결집해 글로벌 강자로 부각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이번 삼성엔지니어링의 일부 지분 매입에서 그치지 않고, 삼성중공업이나 삼성테크윈까지도 아우르는 지분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지분 확보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삼성물산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지분 중 사업적인 연관성이 낮은 지분을 삼성생명이나 삼성전자 등에 매각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삼성그룹의 금융계열사는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묶여 있기는 하지만 3분기 말까지도 삼성카드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였고, 일부 지분을 삼성물산이나 삼성전기가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삼성생명의 삼성증권과 삼성화재에 대한 지분율이 10% 초반에 불과해 실질적인 지배력이 낮았다. 삼성생명은 12월 13일 삼성물산 등으로부터 삼성카드 지분을 매입해 지분율을 34.41%로 높였다. 이에 따라 금융계열사 중 3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한 첫번째 자회사가 됐다.

중간지주사 위한 자금 마련은 어떻게

이번에 삼성생명이 다른 계열사로부터 삼성카드 지분을 매입해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높인 것을 계기로 중간 금융지주회사 설립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다.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려면 삼성생명은 추가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삼성화재와 삼성증권에 대한 지배력을 높여야 한다. 삼성그룹이 중간 금융지주회사를 활용하면 지배구조의 핵심인 삼성생명 등 금융사 지분을 처분하지 않아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삼성생명은 삼성화재ㆍ삼성증권 등의 지분을 추가적으로 매입해야 한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와 삼성증권에 대한 지분율을 30%까지 높이려면 약 3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 삼성생명은 2011년 이후 매년 자사주를 1.5%씩 매입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자사주 지분율을 4.5%로 높일 것으로 보인다.

중간 금융지주회사는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금지하는 지주회사의 금융 자회사 보유를 허용하되, 금융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일 때 중간 지주회사 설치를 강제한 제도다. 이 중간 지주회사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지만 관련법 개정이 늦어져 아직 도입되지 못했다. 그러나 만약 도입될 경우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자회사에 대한 지분율이 30%를 초과해야 한다.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조세특례제한법 제38조 3항에 따라 주식 현물출자나 교환으로 발생하는 양도세와 법인세가 과세 이연된다.
박중선 키움증권 연구원 jspark@kiwoo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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