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훈의 단단한 쓴소리

똑같은 골격(소유구조)과 뇌구조(지배구조)를 가진 기업들에 독창성을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창조경제 기업의 업종과 특성, 성장단계에 따라 소유지배구조를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 ‘경영권의 안정화’가 보장되는 제도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 구글ㆍ애플ㆍ페이스북은 있지만 설립등기는 델라웨어주에 했다. 델라웨어주의 회사법이 기업친화적이라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콘셉트로 내세운 지 1년이 됐다. 창조경제의 개념을 두고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다.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셰이프웨이즈(3D 프린팅 사업 선두업체)와 같은 창조형 기업을 많이 만들자는 정책이다.  이 기업들은 벤처기업으로 출발해 가파른 성장을 거둔 고성장 기업(high growth company)이다. 고성장 기업은 미국 전체기업 중 1% 정도지만 신규 일자리의 40% 이상을 창출한다. 일자리 창출이 창조경제의 궁극적인 목적인 한국으로선 부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기업을 배출할 방법은 없을까. 미국의 고성장기업의 탄생 배경과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창조형 기업 중 상당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미국 델라웨어주州에서 시작해 성장하고 있다는 거다. 미국에선 기업이 직접 원하는 주의 회사법을 선택할 수 있다. 실제 영업활동을 하는 본거지와 무관하게 50개 주 회사법 중 원하는 주에 설립등기를 할 수 있다.

시작과 성장을 위한 제도적 환경을 기업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다.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대부분 기업은 델라웨어주에 설립등기를 하고 있는 이유다. 최근 본사를 네덜란드에서 뉴욕으로 이전한 셰이프웨이즈도 델라웨어주에 설립등기를 했다. 미국 벤처캐피털협회 웹사이트에서는 새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신생기업들을 위해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기본모델로 제시하고 있을 정도다. 미국의 창조형 기업들이 델라웨어주 회사법을 선호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기업의 업종과 특성, 성장단계에 따라 소유지배구조를 유연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단기이익만 추구하는 주주로부터 경영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것도 이유다. 회사의 장기적인 가치 증진을 위한 경영을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창조의 의미를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독창성을 요구한다. 현실적으로 똑같은 골격(소유구조)과 뇌구조(지배구조)를 가진 기업들에 이런 독창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 창업을 하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주식시장에 상장(IPO)을 통해 외부자금을 끌어 모아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창업자가 경영권을 잃으면 상장을 꺼리게 된다. 한두번의 실패로도 당장 주주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지 못하고 쫓겨날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99번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라고 말하는 창조적 기업가정신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결국 창조경제를 위한 창조경영은 ‘회사 소유지배구조의 유연성’과 ‘경영권의 안정화’가 보장되는 제도적 환경에서나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유지배구조와 경영권이 규제의 대상으로만 인식될 뿐 창조경제를 위한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지배권과 경영권의 남용행위를 철저히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권한남용 ‘행위’를 철저히 막아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회사의 ‘구조’ 자체를 획일적이고 사전적으로 규제하는 방법으로 정책목적을 달성하는 게 옳은지는 의문이다. 지배권 남용행위는 줄어들지 몰라도 창조경제로부터 그만큼 멀어질 수도 있다.

‘칼’의 사용을 획일적으로 금지하는 정책은 ‘칼’에서 비롯되는 사고를 확실히 줄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정책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사용하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득보다 실이 더 많아서다. 칼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사후적으로 남용행위를 줄여나가는 정책을 사용한다. 소유지배구조와 경영권도 창조경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규제의 득과 실을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ssh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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