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전국탈핵희망 도보순례단의 발걸음

올 3월 1일, 대장정이 마무리됐다. 전국탈핵희망 도보순례단은 부산고리원전에서 출발해 삼척과 서울을 거쳐 다시 부산고리원전까지 86일간 1609㎞를 걸었다. 성원기 강원대 교수, 박홍표 신부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동참했다. 이들이 묵묵하게 길을 걸은 이유는 분명하다. ‘핵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 도보순례를 마무리하는 집회에서 순례단이 탈핵독립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초록교육연대 제공]
올 3월 1일. 부산 기장의 고리원자력발전소 건너편 방파제 위에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탈핵희망 도보순례단(순례단)이었다. 그중엔 부산지역 시민과 환경단체 사람들도 있었다. 순례단은 성원기 강원대(전자정보통신공학) 교수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조직됐다. 각자 형편이 되는 대로 한나절 혹은 여러 날을 걸었다. 순례단이 그동안 걸어온 거리는 1609㎞. 지난해 6월 6일부터 올 3월 1일까지 대장정을 이어간 결과다. 순례단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성원기 교수가 순례에 나선 것은 지난해 6월 6일이었다. 성원기 교수는 핵발전이 가져올 위험성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삼척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삼척 시내는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설 곳에서 반경 10㎞에 위치했다. 성원기 교수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원대는 13㎞ 안에 있었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난다면 반경 30㎞ 내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다. 설령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암 등 각종 질병이 퍼질 것이다. 전기를 얻는 대가로 삶의 터전을 잃을 수 있다는 얘기다.

▲ [더스쿠프 그래픽]
만약 삼척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다면 지역은 어떻게 될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수 있는 사람들은 서둘러 처소를 옮길 것이고, 강원대(삼척캠퍼스) 역시 그곳에 계속 머물기 어려울 것이다. 청정지역이라 불리던 삼척과 강릉의 해수욕장은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게 될 것이다. 지역이 활기를 잃어버릴 게 뻔한 일이다. 성원기 교수가 ‘탈핵만이 희망이다’고 주장하며 길을 걷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원기 교수는 고행을 자처했다. 고리원자력발전소 앞에서 홀로 탈핵희망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성당에 들러 기도를 하고, 다시 날이 밝으면 길을 나섰다. 그렇게 2차에 걸쳐 삼척까지 총 326.9㎞를 걸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걷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박홍표(도계성당) 신부 등 삼척원자력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회원들이 달려왔다. 그중엔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연차휴가를 내고 달려온 중년 여성과 사비와 시간을 들여 서울에서 강원으로 왕복하는 교수도 있었다. 그들의 절박함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때 탈핵교수모임의 회원인 교수들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순례를 연장해 서울까지 걷자는 거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필자도 동참했다.

그들이 탈핵순례를 떠난 이유

결국 지난해 8월 15일 다시 길을 나섰다. 필자가 그에게 물었다. “걷는 게 힘들지 않은가.” 대답은 이랬다. “나는 스페인의 산티아고길을 40일 동안 걸으며 성지순례를 했다. 제주 올레길을 모두 걸었고, 한국의 100대 명산도 누볐다. 외국의 4000m가 넘는 산도 등반했다.” 그는 걷는 것만은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긴 순례길에도 주저함이 없었던 것이다. 작은 체구에 60세를 바라보는 나이었지만 그에게서는 에너지가 넘쳤다. 필자는 그와 걸으면서 알 수 있었다. 그는 강철 같은 체력만 가진 게 아니었다. 탈핵에 대한 간절한 종교적 믿음과 소망을 갖고 있었다.

순례단은 삼척에서 강릉, 속초를 지나 마등령을 넘어 인제, 춘천을 거쳤다. 지난해 9월 7일 서울에 입성했다. 삼척원자력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회원들은 광화문 앞으로 모여 기자회견을 가졌다. 정부를 상대로 삼척원자력발전소 계획을 백지화하고 탈핵을 선언할 것을 요구했다. 국민들은 우리의 ‘탈핵 운동’에 관심과 성원을 보냈다. 박수를 치며 응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탈핵 홍보물을 나눠주면 대부분 눈으로 훑었다. 내용은 이랬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중에서 핵 발전을 통해 필요한 전기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해 대체할 수 있다. 그러니 전국토의 2%만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해결하자.’

▲ [더스쿠프 그래픽]
이런 주장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믿지 못하겠다면서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주장이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그들이 이렇게 묻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없으면 전기를 생산할 수 없고,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하고 청정하다’고 생각해서다. 한편에서는 핵으로 만드는 전기가 저렴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엔 한가지 빠진 게 있다. ‘핵물질 처리비용’이다. 산업용으로 책정된 전기요금은 가정용보다 낮고, 생산비용보다 10% 이상 낮다. 반면 가정용은 누진제를 적용한다. 결국 국민들이 기업의 전기사용료를 내주는 셈이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전기요금을 올리자고 하면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아우성을 친다. 제품 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한데 말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직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핵물질을 처리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방법을 모르니 처리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아무도 모른다. 성원기 교수가 “핵은 원천적으로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45년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한 우라늄의 양은 800g이었다. 당시 8만명이 사망했고, 이후 사망한 숫자는 14만명에 이른다. 그런데 원자로 1기가 1년에 만들어내는 핵물질의 양은 무려 1215㎏이다. 핵발전소를 10년 가동하면 히로시마에 떨어진 양의 1만5000배에 달하는 핵물질이 발생하는 셈이다.

전국 46개 지자체 탈핵 선언

이명박 정부가 내건 슬로건은 ‘저탄소 녹색성장’이다. 그 방안으로 4대강 개발과 원전수출 정책이 중점적으로 추진됐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 정책으로 재생에너지를 개발해 핵발전을 대체했다면 한국 사회는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4대강과 녹색성장 사업에 쓰인 예산은 대략 22조원. 한국수자원공사 등 관련 기관이 진 빚까지 합하면 44조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하지만 100㎾ 태양광발전소를 세우는데 투입되는 금액은 2억2000만원에 불과하다. 44조원으로 태양광발전소를 세운다면 원자력발전소 20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만큼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 ① 묵묵하게 길을 걷는 전국탈핵희망 도보순례단. ② 탈핵을 흼아하는 순례단에는 연령의 구분이 없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③ 도보순례단의 이동 모습. ④ 삼척에서 서울까지 도보를 마친 후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⑤ 탈핵을 희망하는 이들의 마음을 담은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 [사진=초록교육연대 제공]
우리나라가 4대강 개발과 원전수출 정책에 힘을 쏟고 있을 때 세계는 어떻게 돌아갔을까. 중국은 태양광산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연구개발(R&D) 비용을 대폭 늘리고 정부가 나서 투자를 유치했다. 그 결과 중국은 현재 전세계 태양광 모듈 시장의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대신 태양광 혹은 풍력발전소 등을 개발해 보급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금과 같은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국민들은 핵사고로 인한 불안감에 휩싸이지 않았을 거다. 되레 이런 불안을 말끔하게 해소하고 사회의 안정성을 도모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탈핵운동의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후쿠시마 원전폭발사고 이후 탈핵운동은 사회적인 운동으로 확산됐다. 2012년 한살림서울환경위원회는 탈핵선언문을 만들어 총회에서 공식 채택했다. 아이쿱생협과 민우회생협도 방사능먹을거리 오염감시와 탈핵운동에 나섰다. 종교계도 나섰다. 2012년 3월 26일 4대 종단은 ‘탈핵ㆍ탈원전’ 선언을 통해 “핵발전은 핵기무와 같은 인간 존엄을 훼손하는 반인륜적 공존 불가능의 악”이라고 고했다. 탈핵ㆍ탈원전을 목표로 한 에너지전환을 위해 모든 종교인이 동참할 것을 합의 발표한 것이다. 같은해 11월 11일엔 국내외 107개(국내 103개ㆍ국외 4개) 대학에 재직 중인 교수 1052명이 ‘탈핵교수선언’에 참여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탈핵 여론을 만들었고, 지방자치단체가 탈핵을 선언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2012년 4월 26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에너지 소비절감과 재생가능에너지 생산을 통해 원전1기 생산량에 달하는 전기에너지를 줄인다는 ‘원전하나 줄이기’ 정책을 발표했다. 박원순 시장은 원자력은 ‘늘려야 할 에너지’가 아니라 ‘줄여야 할 에너지’라고 선언했다. 앞서 2012년 2월 23일에는 김성환 서울 노원구청장이 ‘탈핵ㆍ에너지전환도시’ 선포식을 개최했다. 전국 46개 자치단체장들이 탈핵선언에 동참했다. 원자력에너지에 더 이상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이 자치단체를 움직인 것이다.

반면 정부의 움직임은 미온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세계적인 추세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올 1월 16일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제2차 국가에너지 기본 계획’은 탈핵이 아닌 핵 발전 확산을 골자로 한 정책이었다. 표면적으로는 핵 발전의 비율은 낮지만 수요 예측은 거의 2배로 늘어났다. 이 계획대로라면 현재 23기인 핵발전소는 41기까지 증가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제2차 국가에너지 기본 계획의 방향을 재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건물의 냉난방 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 일례로 천장에 달린 전기냉난방기를 가동할 게 아니라 건물의 냉난방 구조를 개선하고, 페시브하우스나 에너지 제로하우스로 전환한다면 에너지의 효율성을 증대할 수 있다. 페시브하우스는 자연환경을 이용한 친환경 에너지주택이다. 태양의 빛, 온도, 바람, 지형을 이용해 주택을 구성하는 것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유기적인 주택이다.

▲ [더스쿠프 그래픽]
혹자는 전기 요금을 올려서라도 전력을 아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라도 국민의 전기 절약을 유도해야 한다. 국내에서 생산이 가능한 재생에너지를 개발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원을 최대한 끌어내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마다 열병합발전소를 세워 태양ㆍ바람ㆍ바이오ㆍ폐유ㆍ목재 팰릿 등을 최대한 이용해 열과 전기를 생산하자는 얘기다. 그래도 부족한 연료는 가스 등을 이용해 점차 전환하면 될 것이다.

시대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의 확보’

▲ [더스쿠프 그래픽]
지금으로부터 2년 전 필자는 독일의 탈핵 현장을 방문했다. 2011년 독일은 태양광발전소 100만개를 세웠다. 지역마다 열병합발전소가 가동되거나 건물을 리모델링해 패시브하우스로 개축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었다. 탈핵현장에서 희망을 본 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세대가 소원하는 것은 한가지다. 우리와 미래세대가 지속가능한 세상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험한 핵 발전으로부터 벗어나 우리 땅에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에너지 혁명을 이루지 않고는 우리의 안정된 미래는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 정책 입안자들이 의지만 갖는다면 국민으로부터 설득을 끌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필자는 이미 탈핵희망 도보 순례길에서 수많은 국민을 만나며 확신했다. 이 시대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의 확보’다.
김광철 초록교육연대 공동대표 kkc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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