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첫번째 ‘눈’ | 의결권 강화

▲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섰다. 하지만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한계가 있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국민연금이 의결권 강화에 나섰다. 국민연금은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상장사만 무려 252곳으로 자본시장 ‘큰손’으로 통한다. 하지만 각 기업에서 주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한계를 지녔다.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 독립성도 확보해 ‘관치’ 논란도 해소해야 한다.

자본시장의 ‘큰손’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에 나섰다. 국민연금이 최근 열린 만도 주주총회에서 주요 안건에 제동을 건 게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3월 7일 국민연금은 만도 주주총회에서 신사현 대표이사 재선임건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다. 만도가 100% 자회사 마이스터를 통해 한라건설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행위를 부실 모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만도의 장기 기업 가치와 주주권익을 훼손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만도의 지분 13.44%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현재 국내 주요 기업 주식에 골고루 투자했다. 금융정보 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3월 7일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252곳이다. 이 중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45곳이다. 삼성물산(13.03%), LG상사(12. 87%), SKC(12.35%), LS(12.22%), 호텔신라(10.3%) 등이다.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약 424조원에 달하는데, 84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2020년 847조원, 2030년 1732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 [더스쿠프 그래픽]
이처럼 국민연금의 운용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그에 따른 주주로서의 권리는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정부가 운영하기 때문에 민간기업 경영에 개입한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거수기 역할만 한다’는 지적을 받아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흐름이 바뀌었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 행사에 나선 것이다. 이영곤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주주권익 침해에 대한 감시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며 “대기업 오너의 배임ㆍ횡령 혐의, 부실 계열사 편법지원을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실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는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이었다. 2013년 초 박근혜 대통령 취임 당시 국정과제에도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강화’가 포함됐다. 이에 앞서 2011년 4월에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했다. 당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기업의 내부 유보금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적 연기금이 주주권을 발동해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결권 행사, 사전 공지 이뤄져야

이후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고, 현재 국민연금법 개정을 위한 법률안 발의가 상정된 상태다. 올 2월 28일엔 국민연금기금 의결권 행사지침이 개정됐고, 변경된 개정안은 현재 열리고 있는 주주총회에서 적용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주요 쟁점 사안이었던 ‘배임ㆍ횡령 기업인과 관련 범죄로 재판 중인 대기업 총수 등의 이사 선임에 반대한다’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외이사 선임 시 이사회 참석률 기준을 75%로 강화했다. 또한 해당회사와 계열사에 최대 10년 이상 재직한 사외이사의 경우 선임에 반대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기엔 한계가 있다. 앞서 만도의 경우, 국민연금이 대표이사 재선임건에 반대했지만 나머지 주주들(참석 주주의 72%)이 찬성해 통과됐다. 대기업의 순환출자 지배구조상 총수뿐만 아니라 계열사, 특수 관계인이 보유한 지분이 높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지분을 늘린다고 해서 주총에 올라온 안건에 대한 실질적인 의결권을 행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 [더스쿠프 그래픽]
국민연금이 지분 7%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를 보자. 국민연금은 삼성생명(7.21%)에 이어 2대주주다. 삼성그룹 총수인 이건희 회장(3.38%)보다 많은 지분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2대주주로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건희 회장 측이 순환출자구조를 통해 계열사, 특수 관계인 지분 등을 합해 총 17.65%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1주 1권리 행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다른 기업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삼성전자의 경우 워낙 규모가 크고, 주가가 높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 일가가 17.65%로 회사를 지배할 수 있지만 다른 상장사의 경우 총수 일가가 30% 중반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들은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려 회사를 장악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10% 미만)으로는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이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와 연대해 실질적인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신진영 연세대(경영학) 교수는 “국민연금이 보유한 지분(5~10%)으로는 국내 대기업의 지배구조상 의결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기관투자가들과의 공조를 통해 주주권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아직 국내는 갈 길이 멀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어떤 기업에 대해 어떻게 의결권을 행사할지 사전에 공지하면 같은 뜻을 가진 기관투자가와 개인투자가의 동의를 유발할 수 있다. 해외에선 이런 모습이 나오고 있지만 국내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사후 공지(주총 14일 후 공개)가 이뤄진다.”

정부로부터 독립성 확보해야

실제로 해외 연기금의 경우, 다른 기관투자가와 공조를 통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사회 안건을 찬성ㆍ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이사회 구성방식, 회사 분할 등과 같은 주요 안건을 직접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 최대 공적연금인 캘퍼스(Calpersㆍ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는 1987년부터 경영실적이 나쁜 기업 중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작성한 ‘포커스 리스트(Focus List)’를 공개하고 있다. 캘퍼스는 2012년에 대주주가 제안한 안건에 47%의 반대표를 던지는 등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 국민연금의 기금 규모는 약 424조원에 달하는데, 이중 84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네덜란드 연기금(ABP) 운용사인 APG(All Pensions Group)는 ‘ESG 투자원칙’을 기준으로 강력한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ESG 투자는 재무적 요소와 더불어 지속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 onment), 사회적 문제(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고려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기 위해선 우선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민연금은 보건복지부 산하단체이다 보니 정부의 입김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강력한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정부 정책 방향에 따라 기업 의사결정이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영석 서강대(경영학) 교수는 “국민연금 내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적인 민간 운용체계로 개편해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며 “그래야 강력한 의결권 행사는 물론 앞으로 요구되는 자본시장의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용선 더스쿠프 기자 brav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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