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뚱거리는 강덕수

 

▲ ‘샐러리맨의 신화’ 강덕수 STX 회장이 위기를 뚫고 일어나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STX그룹 강덕수(62) 회장, 그가 누구인가. ‘샐러리맨의 신화’ ‘M&A의 귀재’라 불리며 승승장구 사세(社勢)를 키워 온 21세기 한국 재계의 기린아 아닌가. 그가 지금 위기다.

강덕수 회장이 이끄는 STX그룹이 창업 11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부터 툭하면 STX그룹을 괴롭혀온 ‘유동성 위기설’이 좀체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강덕수 회장이 일궈온 샐러리맨의 신화가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까지 보낸다.

강 회장은 2001년 매출 2605억원, 종업원 848명에 불과하던 파산 직전의 쌍용중공업(STX)을 인수해 불과 10년 만에 매출 29조원, 자산 34조원, 국내 계열기업 19개(상장사 6개), 종업원 6만7000여명의 거대 기업군(이상 20011년 말 기준)으로 키워낸 뚝심의 경제인이다. 인수 당시 그는 쌍용중공업의 월급쟁이 사장이었다. 지난 10년간 뛰어난 M&A(기업 인수·합병) 솜씨를 통해 STX를 재계 랭킹 13위 그룹(공기업 제외)으로 끌어 올린 것이다.
 

사업 구도도 절묘하게 짰다. 기본 축인 조선·기계-해운·무역에 플랜트·엔지니어링-에너지를 가미해 이들 네 주력사업간 시너지가 극대화되도록 했다. 그런 그가 ‘그룹 수성(守成)이냐 파국(破局)이냐’의 기로를 헤매게 된 것이다.

꺼질 줄 모르는 유동성 위기설

▲ 강덕수 회장(맨 왼쪽)은 평사원으로 시작해 대기업 총수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사진은 6월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서 손경식(왼쪽 두번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박용만 두산 회장, 두 번째는 신박제 NPX 반도체 회장.

 강 회장 본인이나 STX그룹 측에서는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지만 STX를 싸고도는 시장의 냉기는 한여름인데도 좀체 사라질 줄 모르고 있다. 재계도 강 회장이 최근 자신에게 닥친 ‘시장의 혹독한 테스트’를 어떻게 통과 할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M&A를 통해 축성된 그룹인 만큼 작금의 유동성 위기를 잘 극복하지 못할 경우, 외부 M&A를 통해 그룹이 축소·재편되지 말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올 5월 17일 STX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주가가 11.44~14.89% 급락했다. STX팬오션은 하한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증시에 “계열사 STX OSV의 매각대금을 미리 받았다”는 소문이 퍼진 게 화근이었다. 당시 매각 우선협상자 선정을 위한 막판 협상이 진행 중인 가운데 불거져 나온 얘기였다. 팔기에 앞서 미리 돈을 당겨 받았다는 소문이 ‘STX의 자금난 심화’로 확대 해석된 것. STX측은 곧바로 “STX OSV는 정상 매각 절차를 밟고 있으며, 매각 대금을 미리 받았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 무근”이라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바로 다음날인 5월 18일에는 ‘STX조선해양 신주인수권 상장 폐지’ 공시가 나오자 매도 주문이 몰려 장 중 하락폭이 12.4%까지 커졌다. 시장 참여자들이 신주인수권이 상장 폐지된다는 소식을 ‘해당 기업이 상장 폐지되는 것’으로 오해하면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문제는 이런 해프닝들이 STX그룹이 알짜계열사 매각 작업에 나서는 등 모두 2조5000억원 상당의 재무구조 개선 추진 계획을 내놓은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시장이 STX그룹 유동성 위기에 그만큼 예민하며, 기업 신뢰도 또한 무척 낮아졌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시장의 우려를 반영이라도 하듯 6월 7일 한국신용평가(한신평)는 STX그룹의 5개 주요 계열사 신용등급을 일제히 강등한다는 발표를 했다. STX가 신용등급 하락 쇼크까지 맞은 것이다. STX팬오션 등급이 A에서 A-으로 한 단계 하향 조정됐다. STX조선해양(A-)과 STX(A-), STX엔진(A-), STX메탈(BBB+) 등은 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려갔다. 한신평은 하향 조정 이유로 해당 계열사들의 수익성 저하와 재무 부담 확대, 해운·조선 경기의 장기 침체 등을 들었다.

지난해 10월 21일에도 STX그룹 계열사 주가가 곤두박질친 적이 있다. 새해(2012년) 초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상환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문이 원인이었다.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전 참여 포기 선언(9월 19일)후 한달 만이었다. 지난해 3월에는 STX건설 부도설이 퍼지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다.

STX그룹의 유동성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래 줄곧 STX의 유동성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워 왔다. 문제는 그 강도(强度)다. ‘유동성 문제’가 ‘유동성 위기설’로 그 강도가 높아진 결정적 계기는 앞서 얘기한 하이닉스반도체 M&A 포기였다.

기업 M&A란 추진하다가 조건이 안 맞으면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강 회장이 이끄는 STX는 ‘M&A의 귀재’라는 얘기를 들어 온 기업이 아닌가. 하지만 하이닉스반도체 포기 땐 달랐다. 당시 시장이 보낸 신호는 이랬다. “STX그룹이 제 몸도 추스르기 힘든데 전문 업종도 아닌 반도체까지 넘보는 과욕을 부린다. 유동성의 한계를 스스로 내보였다. 이젠 믿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었다.

STX는 금융 위기 이후 재무적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대한통운·대우건설·대한조선·하이닉스반도체 등 대어급 기업 인수전에 뛰어들거나 인수 검토를 진행했다. 하지만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포기 선언은 ‘M&A 귀재’라는 칭호를 무색케 만들었다. 급기야 그룹 전반에 걷잡을 수 없는 신용도 하락까지 몰고 왔다.

그렇다면 STX그룹의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는 무엇일까. 2008년 하반기 이래 해운·조선의 글로벌경기 장기 침체로 STX 주요 계열사들의 현금 창출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 가장 먼저 꼽힌다. 이런 가운데 STX유럽 인수, 중국 대련 조선소 건설, 대규모 선박 투자로 자금 소요는 더 늘어났다. 들어오는 돈은 줄고, 나가는 돈은 늘어나니 자연 외부 차입금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재무구조가 형성되고 말았다.

최근 한신평이 내놓은 한 기업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STX의 2011년 말 연결 기준 차입금은 13조원 정도, 국내 계열사들의 총차입금은 10조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STX조선해양 2조2000억원, STX팬오션 3조2000억원, ㈜STX 1조7000억원 상당으로 이들 주력 계열사들이 7조원 이상을 차지한다는 분석이다.

계속되는 ‘시장’의 혹독한 테스트

▲ 이라크 디젤발전플랜트 프로젝트 현장을 방문한 강덕수 회장.
이 같은 차입금 규모는 STX의 현금 창출 능력과 조선·해운 글로벌경기 침체 등을 감안할 때 다소 부담스럽다는 평가다. 자연 STX가 주요 자금 조달원으로 삼아온 회사채나 선박금융의 상환 및 차환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봤다. 한신평은 공모사채는 연 1조원 이상 만기 도래하며, 선박금융도 연 2500억~3000억원이 만기 도래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분석은 2009~2011년 사이 STX 국내 계열사들의 연간 자금 부족액이 약 2조1000억원~2조6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는 점이다. 그 결과, 올해 1~4월 동안 국내 주요 계열사 7곳의 순차입금이 STX팬오션을 중심으로 8000억원 이상 증가했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여기서 꼽는 국내 7개 주요 계열사는 ㈜STX, STX팬오션, STX조선해양, STX엔진, STX중공업, STX메탈, STX에너지 등이다.

 

따라서 STX그룹의 전반적인 현금흐름 개선을 위해서는 조선부문 수주 확대와 해운부문 이익 창출력 제고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단기간에 해운과 조선부문의 업황 및 영업 환경 개선을 기대하기란 힘든 상황이다. 작금의 유동성 위기를 통상의 영업 활동을 통해 개선하기란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가운데 2008년 하반기 이래 지속돼 온 해운·조선업의 경기 하강 사이클이 현재 저점을 통과 중이라는 분석이 있긴 하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 금융시장 경색, 수요 위축과 공급 확대로 인한 수급 불균형 등으로 본격적인 회복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STX팬오션 주력사업인 벌크선 해운업의 경우, 2003년 이래 5년 정도는 호황을 누렸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벌크선운임지수인 BDI는 2011년 1522.3으로 전기 평균 대비 44% 급락한 수준에 머물렀다. 올 들어서도 1~5월 평균 BDI가 944로 내려앉았다. 현재도 BDI 상승 흐름을 점치기가 힘들다는 견해가 많다. 벌크선사들의 손익분기점 BDI가 1500대라는 분석이 있고 보면, 지금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기인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조선업황도 2009년 저점을 점차 벗어나는 듯 보였으나 2011년 하반기부터는 수주 여건이 다시 악화되며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 유럽 재정 위기로 인한 수요 감소와 선박금융 경색, 선박 공급 과잉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STX의 유동성 위기 해소 노력 또한 세차게 진행되고 있긴 하다. 아예 올해 경영 방침을 ‘내실경영·안정성장’으로 내걸고 수성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알짜기업인 STX OSV 매각 및 재무구조 개선 추진 등이 그것이다.

특히 STX OSV 매각 추진은 그룹 재무구조 개선의 핵심 사안이다. 매각 작업이 상당히 진척된 것으로 보이며, 완전 성사될 경우 그룹 전반의 유동성 개선에 터닝포인트를 제공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STX OSV 매각대금을 8500억원 전후로 볼 경우, 매각으로 인한 실제 국내 자금 유입액은 약 600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유입 자금은 특히 STX조선해양, STX엔진의 유동성 개선에 기여할 것이란 전망이다.

시련은 있어도 파국은 없다?

2조5000억원 상당의 유동성 확보를 겨냥한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 또한 주목된다. 국내외 비상장 계열사 및 해외자원 개발 지분 매각, 일부 노후 선박 매각 및 자산 유동화 등이 추진되고 있다. STX중공업, STX에너지 등 일부 비상장사를 통한 현금 확보 여부 역시 STX 재무구조 개선의 커다란 변수다. 지난 5월 말에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1조원 상당의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현실적으로 영업부문에서 기대만큼의 현금창출이 어렵다면 남는 것은 STX의 끈질기고 과감한 자구 노력 밖에 없을 것 같다. 끊임없는 시장의 감시에서 벗어나고, 다시금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다. 우물쭈물하다 어렵사리 쌓아 올린 기업을 망가뜨린 사례는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한국 재계 13위로 올라선 STX가 뒤뚱거리다 주저앉지 않으려면 강 회장을 비롯한 임직원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 사업에 매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이 STX에겐 승승장구 그룹 축성(築城)의 시기였다면, 향후 10년은 그룹 수성과 리모델링(재구축)의 시기가 될지 모른다. 그런 만큼 강 회장의 진짜 경영 솜씨가 요구되는 시기다. 덩치가 커진 만큼 회사 경영 역량이나 오너-임직원간 소통 능력도 함께 커져야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성태원 편집국장 iexlover@thescoop.co.kr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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