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돈 푸는 유로존

▲ 유로존이 미국의 양적완화와 같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할 전망이다.[사진=뉴시스]

유로존이 다시 돈을 푼다. 소극적 통화완화정책이 아니다. 이번엔 실물경제를 살리는 게 목표다. 초과유동성을 쟁여놓은 채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하지 않는 은행엔 ‘징벌적 제재’까지 내릴 방침이다. 다행히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이 높지 않다. 돈을 더 많이 풀어도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다는 얘기다.

5월 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6월 통화정책회의 현장.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입을 열었다. “비전통적 완화정책을 실시할 수 있다.” 드라기 총재가 자신있게 통화완화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1분기 유로존 경제성장률은 전기 대비 0.2%, 전년 동기 대비 0.9% 성장했다. 시장예상치를 밑도는 결과였다. 하지만 이런 부진한 경제성장률이 ECB의 통화완화정책을 앞당길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추가적인 완화 정책을 예고한 상황에서의 경제성장률 부진이 정책사용의 명분을 높여줬다는 얘기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이후 1% 미만을 기록하고 있는 낮은 물가상승률은 추가완화정책을 실행하는 데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드라기 총재의 ‘통화완화정책’ 발언 이후 시장이 꿈틀댔다. 유로화 가치는 1.57%나 떨어졌다. ECB의 추가적인 완화 정책을 통해 시중에 유로화 공급이 늘어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었다. 중장기적으로 유로화의 가치가 약세를 띨 것이라는 전망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오래가지 않을 듯하다. ECB가 돈을 풀어도 유로화 수요 역시 증가할 공산이 커서다. 유로화의 추세적 약세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하반기 글로벌 경기가 빠른 속도로 회복된다면 위험자산의 선호현상이 확대되고 이는 유로화의 수요 증가로 연결될 수 있다. 미국ㆍ영국ㆍ일본 등 다른 선진국에 비해 물가상승률이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이라는 점도 유로화의 가치를 지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ECB가 생각하고 있는 비전통적인 완화정책은 과거와 다르다. 유로존 경기회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얘기다. 과거 ECB 정책은 자금시장 경색완화, 국채금리 안정이 목표였다. 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커버드본드) 매입, 재정위기국의 국채매입, 두차례에 걸쳐 이뤄진 3년 만기 LTRO(장기대출프로그램) 공급 등은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재정위기의 확산을 막기 위한 방어적 정책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비정통적 완화정책의 후보로 거론되는 자산매입과 주유금리인하는 가계와 기업으로의 대출을 증가시키기 위한 것들이다. 이전과는 다른 공격적인 경기 부양책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ECB는 실물경제로 유동성이 흐를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부진이 경기회복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인식해서다. LTRO 대출금이 상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채매입 프로그램(SMP)의 불태화를 중단하거나 또 다른 LTRO를 실시해 봤자 기업과 가계대출로 이어지기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ECB는 직접적으로 은행의 대출 확대를 유도할 정책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 부문의 대출을 늘려 내수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방침이다. ECB의 은행 대출 자산 매입으로 은행의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면 민간 부문으로의 대출이 확대될 수 있어서다. 아울러 ECB는 초과 유동성을 ‘대기성 수신기구’에 예치한 채 기업과 가계에 대출하지 않고 있는 은행에는 징벌적 금리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대출 확대를 유도할 전망이다. 대출자산 매입과 주요 금리인하가 실행될 가능성이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ECB의 공격적 통화완화정책의 효과는 내수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Fed)의 3차 양적완화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통화완화정책에도 유로화 가치는 유지

미 연준은 2012년 9월 연방공개시장회의(FOMC)에서 매월 400억 달러 규모의 주택저당채권(MBS) 매입을 발표하면서 3차 양적완화에 돌입했다. 당시 연준은 3차 양적완화의 목표가 고용 회복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밝혔다. 이전의 양적완화 정책과 달리 총 규모를 정하지 않은 것도 경기회복 의지가 높았기 때문이다. 의도가 달랐던 만큼 시장의 반등도 이전과 차이가 있었다. 3차 양적완화 발표 이후에도 달러화의 약세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ECB의 완화 정책 이후에도 유로화 약세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은주 대신증권 연구원 eunjoolee@daish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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