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행의 재밌는 法테크

도둑질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 도둑질이라는 행위가 평가대상이다. 그렇다면 마땅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을 경우엔 처벌할 수 있을까.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을 보자. 법은 이럴 경우 부작위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마땅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사진=뉴시스]
삶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이 있다. 하지 않으면 어떤 형태로든 벌을 받는 그런 일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숙제를 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 ‘마을 어른에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버릇없는 녀석이라며 야단을 맞는다’ ‘군대 갈 나이가 됐는데 이를 회피하면 처벌을 받는다’ ‘치아를 닦지 않으면 충치가 생겨 고통을 당한다’ 등등.  그런데 형법이 적용되는 분야의 대부분은 적극적인 행위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는다. 다시 말하면 음주운전을 했거나 도둑질을 했으면 처벌을 받는 것처럼 적극적인 행위가 판단의 대상이다.

이런 적극적인 행위를 법적 용어로 ‘작위作爲’라고 한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마땅히 해야 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를 판단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부작위不作爲’라고 한다. 위에서 든 사례들이 바로 ‘부작위’다.  부작위가 처벌 대상이 되려면 무언가를 방지할 의무가 있는 자가 이를 하지 않아야 한다. 대법원은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법익침해의 결과 발생을 방지할 법적 작위 의무를 갖고 있는 사람이 그 의무를 이행하면 결과발생을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고 방관한 경우 그 부작위는 형법적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런 부작위범은 무언가를 해서 결과를 발생시킨 사람과 동일하게 처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근거를 통해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살인죄를 인정했다. “… 10살 조카를 살해할 것을 마음 먹고 저수지로 데리고 가서 미끄러지기 쉬운 제방 쪽으로 유인해 함께 걷다가 조카가 물에 빠지자 그를 구호하지 않아 조카를 익사하게 한 삼촌에게는 살인죄가 인정된다….” 최근 남미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콜롬비아 검찰이 버스 화재로 33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것과 관련 해당 운전기사에게 살인혐의를 적용해 징역 60년을 구형했다. 운전사는 교회 예배를 마친 어린이 50여명 등을 태우고 귀가하던 중 차량에 연료를 주입하다가 화재가 발생하자 홀로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부작위에 의한 적극적인 살인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실제로 운전사는 버스면허도 소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차량을 운행해 왔으며 사고 당시에도 정원을 2배 이상 초과한 60여명을 탑승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사고 차량에는 비상용 휘발유가 규정 이상으로 적재돼 있어 더 큰 희생을 초래했다.  우리도 얼마전 이와 유사한 참극을 목도했다. 검찰은 침몰하는 배 안에 승객들을 방치한 채 탈출한 선장과 일부 선원들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긴 상태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등 대형 참사의 경우 관련자들에게 과실치사죄가 적용됐다는 점에서 법원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판단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도 벌써 13년이 흘러갔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많은 사람이 다양한 곤란을 겪고 있다. 우리가 진실로 실천해야만 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숙고할 건 또 무얼까. 마땅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각자 ‘부작위범’이 되는 불행한 상황을 면하려면 말이다.
조준행 법무법인 자우 변호사 haeng@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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