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골프는 인생과 닮은 구석이 많습니다. 이겼다고 확신하는 순간 위기가 찾아오고, 무너졌다고 생각해도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1년 동안 연재한 ‘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를 마무리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인생이든 골프든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합니다. 그동안 애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자는 한때 핸디캡 3이었다. 75타에서 ±2 정도의 스코어가 수년간 지속됐었다. 1980년대 말 이었다. 최상호와 박남신이 국내 대부분의 오픈대회에서 우승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때였다. 둘의 등장은 대한민국 프로 1호 연덕춘을 비롯해 이일안~한장상~김승학으로 이어지는 서울 능동 옛 서울컨트리클럽 출신 스타계보에서 고양군 신원리(지금의 고양시) 서울한양 및 뉴코리아컨트리클럽 프로캐디 출신 시대로 바뀌는 정확한 시점이다.

‘신원리파’라는 그들만의 모임이 있었다. 10여명의 멤버 중 최상호가 -3, 박남신이 -2의 핸디캡으로 친목 라운드는 한동안 이어졌었다. 둘과는 연배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아 개인적, 업무상으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들과 라운드를 했다 하면 수치상으로 5ㆍ6타가 아니라 거의 10타 차 이상으로 벌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분했다. ‘신원리파’ 몇몇 멤버와는 스크래치에서도 이긴 적이 있어 더욱 그랬다. 끝내 둘에게서 핸디캡에 맞는 스코어를 낸 적이 없었다.

▲ 골프는 이성과 감정을 체크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도 한다. [사진=뉴시스]
그 원인을 알아낸 건 몇년 뒤 신문사 데스크로 눌러앉아 어쩔 수 없이 전투력을 상실했을 때쯤이다. 의학적으로 뇌의 생리적 구조, 특성 등을 들춰보게 됐다. 그리고 마인드컨트롤에 대한 몇몇 서적, 어릴적 친구인 국내 정신과 의학의 대가 정문용군에게도 자주 조언을 구했다.

그제서야 필자는 최상호, 박남신을 이기려했다는 스포츠 경기 마인드가 나의 이성적, 감정적 오류였음을 깨닫게 됐다. 아울러 골프가 사회적, 정치적 논란이 되는 등 경기 외적인 분야에서도 해석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는 특별한 스포츠 종목임을 발견하게 됐다. 이 칼럼은 그중 화이트 칼라들의 비즈니스 골프를 위해 마인드 컨트롤을 강조한 내용들이었다. 고故 황수관 박사가 일으켰던 엔도르핀 신드롬이란게 있었다. 그러나 지속될 경우에는 뇌 안에서 스스로 마약화돼, 제어기능을 상실하는 흥분으로 이어진다는 게 의학적으로 입증돼 있다.

근대 철학 대표 인물인 칸트도 그것을 마치 이성의 결정체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성취가 아닌, 공허(허무)란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다. 그의 대표 저서 순수이성비판의 핵심이다. 의학이나 철학이나 모든 행위에 앞서 정신 명령을 내릴 때 일방적으로 몇 단계를 건너 뛰면서 뒤늦게 공허로 끝나는 인간의 마인드를 경계하고 있다. 실패한 인생은 처음부터 발을 잘못 내디딘 경우도 있지만, 진행 중에 발생한 낯선 장면을 잘못 해석한 경우도 적지 않다.

승리욕은 감정적 오류

골퍼의 대부분은 미스 샷 때 포기가 아니라 순식간에 격렬한 공격의지로 무장한 헐크로 스스로 변신했음을 깨닫지 못한다. 특히 골프에서는 무너지기 시작하면 복싱의 KO처럼 금세 끝나는 게 아니다. 관둘 수도, 돌이킬 수도 없이 끝까지 이어진다. 뒤늦게 ‘평상심을 찾아라’, ‘잊어라’는 조언은 부질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이 글에서 밝혔었다. 화이트 칼라들은 야간근무든, 술을 마셨든, 눈뜨면 사무실에 가거나, 바이어를 만나는 등 판에 박힌 일상에 찌들어 산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만 빼고 전부 바꿔라”고 말하는 건 지금의 내 행위, 내 판단이 옳다고만 여기지 말라는 뉘앙스로 들린다. 당장 나에게 주어진 업무가 산더미인데 그 와중에 바꾸자는 생각이 날까. 여유가 있을 때, 시쳇말로 제정신일 때 가능한 얘기다.

사실 아무리 바쁜 화이트 칼라에게도 여유는 생긴다. 골프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내 스스로를 컨트롤하고 있는가, 내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등등을 체크하고 테스트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 이성, 또는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귀중한 찬스, ‘생각하는 골프타임’이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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