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종금 부실대출 미스터리

▲ 올초 검찰수사를 받은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 [사진=뉴시스]
한 건설사가 있다. 자금난으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다. 건설사 회장 아들은 궁여지책으로 재벌 친구에게 급전急錢을 빌려 회사 운영자금으로 썼다. 그런데 이게 웬걸. 얼마 후, 한 종합금융사가 이 건설사에 수백억원을 대출해줬다. 담보도 신통치 않았는데, 대출금이 나왔다. 알고 봤더니 재벌 친구 회사의 금융계열사가 대출을 했고, 그 친구가 직접 소개를 했다. 재벌 친구가 없었다면 이 건설사는 대출을 받을 수 있었을까. ‘금호종금 부실대출’ 사건, 더 스쿠프가 단독추적했다.

지난 4월, 금융권에 큰 파장이 일었다. 한 종합금융사(종금사)의 대표와 임원들이 검찰에 구속수감됐기 때문이다. 혐의는 배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파장을 일으킨 장본인은 김종대 전 금호종금(현 우리종금) 대표와 전직 임원 A, B씨였다. 혐의는 크게 두가지. 첫째는 2008년 카지노호텔 시행사 P사에 230억원을 부실대출한 거다. 둘째는 골프장 건설업체 H사에 대출한 270억원을 돌려받지 못해 손해를 끼친 혐의다.

특히 둘째 혐의를 두고 뒷말이 많다. 지난 5월 시작된 ‘금호종금 부실대출사건’ 공판에서도 묘한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골자는 이렇다. “금호종금에 대출을 알선한 몸통이 따로 있다.” 몸통으로 지목된 이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장남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선 골프장 건설업체 H사를 먼저 파헤쳐야 한다.

H사는 관광시설(골프장 등)을 운영하는 업체다. 자본금은 30억원, 회장은 정모씨(2008년 대출 당시 직함)였다. 2005년 2월부터 제주도에 ‘럭셔리 골프장 C클럽’을 조성했다. 49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골프장 18홀과 클럽하우스, 콘도를 짓는 게 H사의 플랜이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H사는 골프장 부지를 담보로 C시중은행에서 200억원대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부족했던지 금호종금에서 2008년 4월 28일(170억원), 8월 8일(60억원), 9월 12일(40억원) 총 270억원의 대출을 또 받았다.

본지가 단독입수한 H사의 중장기 대출원장을 보면, 금호종금 대출은 담보 없이 보증만으로 이뤄졌다. H사의 공동대표 두명이 한정보증을 했다. C시중은행에서 담보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여력이 없었던 것 같다. 애당초 ‘대출리스크’가 있었다는 방증이다. 예상대로 H사의 ‘대출폭탄’이 터지는 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금호종금이 1차 대출을 해준 지 1년여 만인 2009년 5월부터 이자가 밀렸고, 끝내 원금을 상환하지 못했다. 대출금 270억원이 졸지에 ‘부실채권’으로 전락한 셈이다. 금융위원회의 ‘금융투자업규정’에 따르면 종금사는 보유자산의 건전성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5단계로 규정한다. 이 중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연체 1년 이상)이 부실채권이다. 일반적으로 3개월 이상 이자가 연체될 경우 ‘고정 이하 여신’으로 분류한다.

부실채권은 종금사에 큰 부담이다. ‘고정 이하 여신’ 비율이 자산건전성을 평가하는 대표적 지표 중 하나라서다. 종금사가 ‘회수의문’ ‘추정손실’로 분류된 자산을 조기상각해 자산건전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다(금융투자업규정 제8-42 ⑤항). 이 작업이 미흡하면 금융감독원장이 특정부실자산의 상각을 요구할 수도 있다(금융투자업규정 제8-42 ⑥항).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금호종금은 ‘부실채권 270억원’의 처리를 차일피일 미뤘다. 2009년 5월 연체가 발생했지만 2012년 4월에야 공시를 했다. 익명을 원한 시중은행 관계자의 말이다. “일반적으로 채권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손실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연말 재무제표에 이를 반영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시절차를 통해 투자손실이 났음을 (투자자에게) 알려야 한다. 금호종금은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금호종금은 이 부실채권을 아직도 회수하지 못했다. 종금 관계자는 “채권회수를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고 말했다. 상환 주체가 멀쩡한 것도 아니다.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H사는 C클럽의 운영을 다른 업체에 위탁했다. H사 관계자는 “경영불능 상태”라며 “H사는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털어놨다.

대출한 지 1년 만에 ‘부실’

의문은 이런 H사가 어떻게 담보도 없이 수백억원의 대출을 덥석 받을 수 있었느냐다. 금호종금 전 대표와 임원이 부실대출혐의를 받고 있는 까닭이다. ‘박세창 부사장이 압력을 넣은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나름 이유와 근거가 있다. 흥미롭게도 H사 회장의 아들 J씨는 박 부사장과 절친한 사이다. 둘의 관계는 싸이월드 개인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자편의를 위해 시간대별로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 금호종금은 2009년 월스트리트의 랜드마크 AIG 빌딩을 매입해 글로벌 명성을 쌓았다. 이런 금호종금도 부실대출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사진=뉴시스]
[※ 참고: 여기엔 중견그룹 K사의 차남 S씨가 등장한다. 차남 S씨는 박세창 부사장과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둘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워크아웃에 돌입한 직후인 2010년 우암건설을 함께 만들어 논란을 일으킨 적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부실대출사건에도 S씨의 이름이 나온다.]
2004년 3월 5일(차남 S씨 홈페이지 방명록) : “… 그런거 때문에 전화하란 건 아니고, 그냥 중국 갔다 왔는데 연락이 없길래. 오랜 만에 수다나 떨어보려고….(박세창 부사장)”
2004년 7월 24일(차남 S씨 홈페이지 방명록) : “(박)세창이 메일주소 받았는데 어디론가 사라졌네. 메일주소 여기다 남겨주면 사진들 보내마.(H사 회장 아들 J씨)”

이런 친분은 대출과정에 십분 활용됐다. 박 부사장은 금호종금에 ‘H사 대출건’을 소개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대출) 소개는 누구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주목할 점은 금호종금 임직원들이 이 소개를 ‘단순한 제스처’로 받아들였겠느냐다. 당시 박 부사장은 그룹 전략경영본부의 이사였다. 그룹 총수의 명실상부한 ‘황태자’였음은 물론이다. 그의 말이 대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룹 관계자는 “금호종금은 당시 계열분리 상태였다”고 반박했다.

이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호종금은 2008년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지주회사를 준비하던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선 금융사를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금산분리 원칙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금호 지분이 ‘제로’가 된 건 아니었다. 우리금융그룹 사모투자펀드 우리PE가 1대주주(41.43%)에 등극했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분율은 28.37%에 달했다. 금호종금 이사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김국주 이사(2007년 8월~2010년 8월), 김원태 이사(2007년 8월~2010년 8월), 이강우 감사(2005년 6월~2013년 11월), 백인호 감사(2003년 6월~2013년 11월ㆍ이상 당시 직함)는 계열분리 후에도 이사회 멤버로 활동했다. 특히 그룹 전략경영본부 전무를 역임한 이용주 이사(당시 직함)는 계열분리 후인 2008년 5월 30일 금호종금 이사에 신규선임됐다. 이는 금호종금에 ‘금호의 입김’이 여전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전직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금호종금은 형식적으로 계열분리했을 뿐”이라며 말을 이었다. “우리PE가 유상증자를 통해 1대주주에 올랐지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종금의 주식우선매수권과 경영권 보장이라는 카드를 들고 있었다. 영향력은 여전했다.”

계열분리 후에도 금호종금에 영향력

이런 정황을 보면, 박 부사장이 금호종금 대출에 영향력을 끼쳤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법무법인 정률의 이대순 변호사는 “박 부사장은 박삼구 회장의 아들로 H사 대출에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지위가 충분했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금호종금 부실대출 사건공판에서도 비슷한 진술이 나왔다. 지난 7월 16일 서울 남부지법 제12형사부(박종택 부장판사)에서 열린 3차 공판 현장으로 들어가보자. [※ 참고: 독자편의를 위해 변호인과 증인의 대화를 1문1답으로 정리한다. 증인은 H사 대출을 위해 사전검토보고서를 작성한 금호종금 기업금융팀 직원이다.]

변호인 : “검찰조서를 보면 ‘H사 대출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압력에 의해 이뤄졌다’는 진술이 있다. 박세창 부사장과 H사 회장 아들 J씨간 친분관계 때문에 긍정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 있나.”
직원 : “나한테 직접 지시한 적은 없다.”
변호인 : “그렇다면 박 부사장과 H사 회장 아들의 관계는 알고 있었나.”
직원 : “사전검토보고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알았다. 하지만 김종대 전 대표가 H사 대출건을 쉽게 거절하지는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눈치를 봐야 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박 부사장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무시할 수는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금부터다. 박 부사장은 ‘H사 대출건’을 소개만 해준 게 아니다. H사가 금호종금으로부터 1차 대출금 170억원을 받은 2008년 4월 28일, 박 부사장과 J씨 사이엔 ‘수상한 돈흐름’이 있었다. 일단 H사가 금호종금 대출금 170억원 중 5억원을 J씨에게 송금했다. 이 가운데 3억2000만원은 박세창 부사장, 나머지 1억8000만원은 중견그룹 K사 차남 S씨(싸이월드 홈페이지 주인공)에게 전달됐다. ‘박 부사장이 금호종금에 H사 대출을 알선하고 그 대가로 리베이트를 수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이유다.

이 때문에 박 부사장은 올 초 서울남부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검찰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수사 초기 단계에 박 부사장에게 초점을 맞춘 건 사실이다. 금호종금이 H사에 대출금을 전달한 직후 3억2000만원을 수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출 직전 박 부사장이 J씨에게 돈을 빌려준 것으로 밝혀져, 조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다. 당시 H사의 상황은 엉망이었다. J씨가 박 부사장에게 빌린 돈을 H사의 운영자금으로 썼다. 그리고 H사가 대출을 받자 돈을 갚은 거다.” 경영난이 심각해진 H사에 박 부사장이 돈을 빌려줬고, 대출금이 나오자 돌려받았다는 얘기다.

이만하면 별 문제가 아닌 듯 보이지만 한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 돈거래가 사실이라면 H사는 5억원이 없을 정도로 자금난을 겪은 셈이다. 금호종금으로선 ‘죽어가는’ 회사에 대출금 270억원을 담보도 없이 지급한 꼴인데,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 관계자는 “그러니까 부실대출수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호종금에 H사를 소개한 박 부사장은 수사선상에서 빠지고, 전문경영인과 실무자들만 구속수감됐다.

“검찰 제 역할 충분히 했나”

▲ 럭셔리 골프클럽을 표방한 C클럽을 운영하던 H사는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채 경영에서 손을 뗐다. [사진=더스쿠프 포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박 부사장에게 아무런 혐의가 없었다는 방증”이라고 잘라 말했다. 변호사들의 생각은 180도 다르다. 법률사무소 상생의 백주선 변호사는 “배임수재죄를 적용할 수 있다”며 “(이전에 채권채무관계가 있었든 없었든) 그룹이 지배하는 금융계열사가 대출을 했고, 그중 일부를 다시 돌려받은 것이라면 ‘대가성 거래’를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꼬집었다. 법무법인 창조의 김종보 변호사는 “금호종금 부실대출 사건은 총수 일가가 자기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듯 금융계열사를 운영하는 실태를 여실히 보여준다”며 “이를 견제해야 할 검찰이 제 역할을 충분히 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금호종금 부실대출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다. 자금난에 시름시름 앓던 건설사에 수백억원이 대출됐다. 선뜻 대출을 해준 곳은 재벌의 금융계열사고, 그 재벌의 황태자가 대출을 소개했다. 건설사 회장의 아들과 황태자가 절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출된 돈은 ‘부실여신’으로 전락했고, 건설사는 사업을 포기했다. 부실대출혐의는 금융계열사 전 대표와 임원이 온통 뒤집어썼다. 몸통은 없는 걸까. 이 사건을 접한 변호인들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
이윤찬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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