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사행산업의 발달로 인한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참 이상한 일이다. 모든 산업엔 빛과 그림자가 있는데, 카지노산업은 그런 분석이 없다. 공公이든 민民이든 카지노 관련 보고서는 대부분 ‘장밋빛 전망’을 담고 있다. 단 한 개의 보고서만이 카지노산업을 ‘천민자본주의’에 빗대 비판하고 있다. 2006년 작성된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참여한 주원 연구위원은 “돈 버는 머신 카지노를 비판하는 걸 좋아하는 정부는 어디에도 없다”고 꼬집었다.

‘카지노 자본주의.’ 요즘처럼 ‘주요 국가들이 경제활성화와 재정수입 확대를 내걸며 사행산업(도박산업)을 키우는 추세’를 일컫는 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06년 ‘카지노 자본주의의 폐해’라는 보고서를 통해 카지노 자본주의를 정면 비판한 적이 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들은 사행산업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단기적이고 물질적인 이익에만 집착하는 ‘천민자본주의의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카지노를 국가의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독버섯’으로 분석한 것이다. 카지노산업을 밝게만 보는 최근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 당시 ‘카지노 자본주의’의 폐해가 심각하다는 보고서를 냈던 배경이 뭔가.
“2004년부터 ‘바다이야기’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일종의 파친코 게임인데, 사행성과 중독성이 심각해 사회문제가 됐다. 더구나 이 게임기가 조작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의 대대적인 단속이 벌어졌다. 2006년 사행산업의 폐해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한 배경이다.”

✚연구는 어떻게 진행했나.
“사행산업 전반을 살펴봤다. 사행산업의 시장규모와 몇몇 지표 등을 통해 긍정적ㆍ부정적 효과를 추정했다. 다른 나라에도 사행산업의 폐해에 관한 연구 자료가 많지 않아 애를 먹었다.”

✚ 사행산업 폐해에 관한 연구가 많지 않다는 건 의외다.
“사행산업은 정부의 허가가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가 밀어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사행산업이 매출의 약 40%(우리나라는 약 15%)를 세금으로 낸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수 규모도 엄청나다. 이런 맥락에서 사행산업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연구를 좋아할 정부는 없다.”

✚ ‘카지노 천국’으로 불리는 마카오도 그렇겠다.
“당연하다. 나라 경제의 90% 이상이 도박산업으로 인해 굴러가지 않는가. 도박산업이 성장한 곳들을 중심으로 폐해 연구를 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경제를 파탄내자는 것밖에 안 된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연구자료가 나올 리 없다.” 

도박산업, 장기적인 손해가 더 커

✚ 연구 결과는 어땠나.
“우리나라의 사행산업은 경륜ㆍ경정ㆍ카지노 등 관련법이 마련된 1990년대 이후부터 빠르게 성장했다. 단기적으로 보면 투자ㆍ고용증대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을 거다. 2005년 사행산업의 세수입과 기금이전 등을 통한 공공부문 이전액은 약 4조60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사회적 비용이 경제적 이익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행산업의 성장이 전체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는 거다.”

✚ 구체적인 수치로 말해줄 수 있는가.
“2005년을 기준으로 사행산업의 매출액과 취업유발계수 등의 수치로 경제효과를 짚어봤더니 복권사업을 제외한 사행산업(경마ㆍ경륜ㆍ경정ㆍ내국인 카지노ㆍ사행성 게임장)의 취업 유발효과는 연간 약 20만4000명이었다. 하지만 연간 이용객 수와 출입빈도 등을 고려해 추정한 유발실업자 수는 약 21만3000명에 달했다. 순실업자가 9000여명 늘어난 셈이다. 물론 내국인 카지노의 경우는 유발취업자수(3만3362명)에 비해 유발실업자수(5076명)가 적어 긍정적인 효과를 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효과가 긍정적이었다고 판단할 순 없다.”

✚ 다른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는 건가.
“사회적인 측면을 봐야 한다. 공인된 사행산업시장이 커지면 사행심리가 강해진다. 이 때문에 사행산업을 양성화하면 음성적 불법도박이 동시에 확대된다. 대표적인 음성 도박인 ‘비밀 카지노바’는 당시에만 해도 전국에 약 450개, 연간 약 16조원의 시장 규모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행성 게임장의 일선 단속 공무원에 대한 뇌물 공여액만 해도 연간 900억~15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게 다 지하경제다.”

✚ 지하경제만이겠는가.
“그렇다. 사행심리가 만연하면 경제생산성이 하락해 결국은 성장잠재력이 약해진다. 세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사행산업이 합법화된 주에서 세수입이 감소하는 현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 도박중독의 문제도 있을 듯하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성인의 6.5%가 도박중독에 빠진 것으로 나왔다. 100명 중 6명꼴이다. 미국 아이오와주에서도 사행산업 허가 이후 도박중독비율이 4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문제는 도박중독자들에게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다는 거다.”

✚ 어느 정도인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도박중독자들의 치료와 사행산업의 관리ㆍ감독 등에 연간 약 1조5000억원이 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주로 어느 계층이 도박중독에 쉽게 빠지나.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발표한 ‘아케이드게임 이용자 현황’에 따르면 사행성 게임장 이용자의 43%가 월평균 소득 200만원 이하 가구인 것으로 조사됐다. 결과적으로 사행산업의 피해자(도박중독자)는 저소득층일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사행산업이 커지면 사회양극화도 덩달아 커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 해외에서도 사행산업으로 인한 문제들이 지적되고 있는가.
“1992년에 발표된 미국 일리노이주와 캘리포니아 주정부 보고서에 의하면 도박이 합법화된 지역에서 도박중독자 치료 비용, 사행기업 관리ㆍ감독 비용, 범죄 예방시스템 구축 비용, 범죄자 교정 비용 등 사회적 지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이런 사회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 민간 기부, 세금 부담 등의 증가가 사행산업으로 인한 단기적 이익을 압도했다.”

✚ 최근 정부가 카지노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어떻게 생각하나.
“앞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카지노가 들어선다고 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들이다. 현재 정부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내세우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만 된다면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국내 정서상 오픈카지노로의 전환도 쉽지 않을 것이다.”

사행산업 근거법도 없애야

✚ 만약 오픈카지노 시대가 열린다면 어떨까.
“전문가들이 사행산업의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들이 빠짐없이 나타날 거다. 영종도는 수도권 인근이니 폐해도 클 거다.”

✚ 최근의 추세는 카지노를 복합리조트 속에 포함해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테마파크를 조성하는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복합리조트 속에 들어선 오픈카지노라면 사행산업의 폐해를 조금이라도 비껴갈 수 있을 거라 보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행산업이 커질수록 사회적 비용은 늘어나고, 성장잠재력은 줄어든다.”

✚ 사행산업의 폐해를 막는 방법은 있다고 보는가.
“원칙적으로는 모든 사행산업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미 공인된 사행산업 근거법도 폐지해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이 선진국 수준(5만 달러 수준)으로 올라간다면 그것은 사회안전망이 충분히 갖춰진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에 사행산업으로 인한 폐해가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걸 기대하긴 어렵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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