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쇼생크 탈출 ①

▲ 앤디는 작은 장도리 하나로 교도소의 벽을 뚫는 도전을 시작한다.[사진=뉴시스]
한국 사회가 어지럽다. 소득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계층간 ‘불신의 벽’은 더 높아졌다. 이슈만 터지면 양측으로 갈라서 ‘옥신각신’하는 게 일상의 일이 됐다. 한국사회, 어디로 가는 걸까. 더스쿠프가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를 새롭게 연재한다. 갈 길 잃은 한국 사회의 방향점을 찾기 위해 기획했다. 김상회 한국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 학장이 도왔다.

1994년 프랭크 다라본트(Frank Dara bont) 감독의 ‘쇼생크 탈출(Shawshank Redemption)’은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미국 스릴러 작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이 1982년 발표한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시드니 셸던(Sydney Sheldon)과 더불어 미국 대중작가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스티븐 킹의 이야기 구성은 출판인세만으로 갑부의 반열에 오른 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탄탄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스티븐 킹은 실로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공장 라인에서 물건 찍어내듯 쉼 없이 발표되는 작품의 수도 숨을 막히게 하지만, 그 주제의 다양성과 취재의 철저함도 경이롭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가 긴장감을 놓지 않도록 하는 재주도 타고 났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돼 흥행에 성공한 영화 ‘미저리(Misery)’와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Lambs)’ 역시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이다. 그만큼 그의 원작소설은 대부분 영화화되고, 그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반면 프랭트 다라본트라는 감독의 이름은 생소하다. 하지만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의 일견一見을 결심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해준다. 주연 같은 조연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도 이 영화의 또 다른 버팀목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은 1995년 개봉 후 그해 아카데미상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지만 아쉽게도 단 한 개의 아카데미상조차 받지 못한 특이한 기록을 남겼다. 영화에 문외한이라 다른 부문은 모르겠지만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 올랐던 모건 프리먼이 수상에 실패한 건 아쉽다. 그만큼 그의 연기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이었기 때문이다.

▲ 영화 쇼생크 탈출의 장면들. [사진=더스쿠프 포토]
‘자유’는 ‘평등’과 더불어 시공을 초월한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와 욕구 중의 하나다. 때문에 사회과학은 물론 인간의 모든 예술적 표현양식에서 가장 많이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 모두는 전제군주의 폭압 속에 사는 신민臣民도 아니고, 영주에게 생사여탈권을 내맡긴 농노農奴도 아닌 자유민이다.

하지만 여전히 정치ㆍ경제ㆍ사회의 모든 구조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복잡다기한 인간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가족관계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유’와 ‘자유를 향한 탈출’이라는 주제가 시대를 초월해 매력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더욱 복잡해지는 사회와 인간관계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노예와 다름없는 ‘구속’과 ‘압박’에 시달린다. 그래서 현대의 ‘자유민’에게 ‘자유’라는 주제는 점점 더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유’를 향한 가장 극적인 상황설정이 바로 ‘탈옥’과 ‘탈출’인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에 등장하는 탈출과 탈옥은 가장 안전하고 영원한 주제인 셈이다. 자유와 희망이라는 명제에 집중돼 있는 탓에 줄거리 구성은 단조롭다면 단조롭고, 진부하다면 진부하다. 

인간의 근본적 질문, ‘자유’

앤디 듀프리슨(팀 로빈스ㆍTim Robins)은 젊은 나이에 은행 부행장에까지 오른 소위 ‘잘나가는’ 사내다. 그러나 앤디의 출세지향적 인생은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는지 젊은 미모의 아내는 골프 코치와 불륜에 빠진다. 1946년 어느 여름날 이를 알게 된 앤디는 술기운에 둘 모두를 죽여 버리기로 결심하지만, 마지막 순간 총을 버리고 불륜 현장을 떠난다. 앤디가 떠난 뒤 그 ‘불륜남녀’는 엉뚱한 강도에게 살해를 당하고 앤디가 꼼짝없이 살인누명을 뒤집어쓴다. 이후 ‘2번의 종신형(피살자 1명당 1번의 종신형)’이라는 미국 특유의 엄중하고도 합리적인 선고를 받은 그는 메인(Maine)주의 악명 높은 쇼생크 교도소에 수감된다. 실제 촬영 장소는 폐쇄된 오하이오주의 맨스필드 교도소다.

앤디가 수감생활을 하는 교도소 이야기는 매우 도식적이다. 간교하고 관료적이며 사리사욕에 찌든 교도소장과 터무니없이 난폭한 교도관, 그리고 그 밑에서 시달리고 고통 받는 무고하고 성실한 죄수들이 뒤엉켜 있다. 교도소 영화에 등장하는 교도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 무고하고 억울한 죄수들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죄 지은 자는 모두 담장 밖에 있고, 죄 없는 자들만 담장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과 조바심이 들 정도다. 그래서 통상적인 (교도소) 탈출 영화는 영화의 전편에 걸쳐 탈출을 위한 준비와 시도, 좌절, 그리고 성공이 그려진다. 하지만 ‘쇼생크 탈출’은 그렇지 않다. 마지막에 이르러 기발하고도 극적인 모습으로 앤디의 탈출이 이뤄진다. 대신 탈출과정은 희망ㆍ자유ㆍ구속의 의미가 담긴 내러티브(인과관계로 엮인 실제적ㆍ허구적 이야기)로 채워진다.

‘쇼생크 탈출’이 다른 교도소 영화와 다른 점은 또 있다. 교도소 탈출 영화의 주인공은 일반적으로 무고하고 억울하며 심지어 정의롭기 짝이 없다. 교도관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매일같이 부당하게 실신할 정도로 얻어터지고, 이리저리 질질 끌려 다니며, 툭하면 독방에 갇힌다. 관객으로부터 ‘쟤 저러다 죽지’ 싶을 정도까지 동정심을 이끌어내고, 결국 부당한 공권력을 향한 분노를 절정까지 끌어올린다. 그리고 탈출에 성공해 그 대리만족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쇼생크 탈출’의 앤디는 속세에서 쌓은 금융지식을 동원해 교도관들의 절세와 탈세를 돕는다. 교도소장이 축적하는 검은돈의 세탁을 도와주는 대가로 ‘행정죄수’가 돼 비교적 순탄한 교도소 생활을 영위한다. 

인간의 욕구, 차별적 각도에서 조명

교도소장은 젊고 곱상한 앤디를 괴롭히는 호모죄수를 불구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앤디를 특별 대우한다. 굳이 목숨 걸고 탈출하지 않아도 좋을 만한 ‘팔자 좋은’ 죄수 앤디의 집요한 탈출의지를 통해 자유를 향한 인간의 욕구를 다른 각도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을 앤디와 엘리스 보이드 레드 레딩(모건 프리먼)은 훌륭하게 소화한다. 화려한 액션이나 긴박한 드라마 없이도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원작자 스티븐 킹이나 감독의 재능도 탁월하지만 배우 모건 프리먼의 영화를 끌어 나가는 역량도 매우 훌륭하다. <다음호에 계속>
김상회 한국폴리텍대학 안성캠퍼스 학장 sahngwhe@kopo.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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