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리스크야 놀자’

기업 오너와 관련된 위기는 다른 요인에 의해 발생한 위기와 차원이 다르다. 기업 오너의 이탈행위의 경우, 오너가 위기의 원인제공자이자 위기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자가 된다. 오너발發 위기가 터졌을 때 기업이 그 어느 때보다 난맥상에 빠져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역이나 실무자가 위기해결을 위한 대응전략이나 메시지를 오너에게 가감없이 보고하기 쉽지 않아서다.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은 검찰 수사로 사건 관련자들이 기소되면서 잠잠해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대한항공의 태도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조현아 전 부사장이 여론의 추이를 봐가면서 관련 직책에서 하나둘씩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 위기를 더 악화시켰다거나 해명 내용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사과문의 주체가 빠지는 등 위기관리에 실패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위기는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우리는 지난 2010년 정유회사 BP사가 소유한 멕시코만 유전에서 원유유출사고가 났을 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탐사지질전문가 출신의 BP사 전 CEO 토니 헤이워드가 의회 조사위원회에서 “나는 시추 전문가도, 엔지니어도 아니며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잘 모른다”라고 말했다가 위기를 더욱 악화시킨 그 사례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한항공의 미숙한 커뮤니케이션 대응은 지적당할 만하다. 문제는 이번 결과를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실무적 실패로 봐도 무방하느냐다.

▲ 조현아 전 부사장의 잘못된 인식이 땅콩 리턴 사건을 더 키웠을 지 모른다.[사진=뉴시스]
이른바 기업 오너와 관련된 위기는 다른 요인에 의해 발생한 위기와 차원이 다르다. 기업 오너의 이탈행위의 경우, 오너가 위기의 원인제공자이자 위기해결을 위한 의사결정자가 된다. 오너발發 위기가 터졌을 때 기업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역이나 실무자가 위기해결을 위한 대응전략이나 메시지를 오너에게 가감없이 보고하기 쉽지 않아서다. 건의를 한 들 수용될 가능성 또한 크지 않다.

오너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최선의 대응 방향을 내놓는 지혜를 발휘하든가 아니면 담당 중역들에게 성역을 뛰어넘는 선까지 전권을 넘기지 않는한 상황은 꼬일 수밖에 없다.  미국 매릴랜드 대학 PR교수였던 그루닉(Grunig)이 1990년대 미국ㆍ캐나다ㆍ영국기업 300여개를 분석해 발표한 ‘우수 이론(Excellent Theory)’에 따르면 홍보를 잘하는 기업은 CEO의 커뮤니케이션 인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직문화는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참여적이었으며, 내부홍보조직에 과감한 위임을 했다.

기업의 조직문화는 기업 오너나 최고경영자로부터 출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의 홍보 실무자들이 평소에 수행하는 위기관리 매뉴얼 준비나 임직원 교육, 그리고 호의적 언론관계 같은 교과서적인 대응책은 어쩌면 하위 실행 방안에 불과할지 모른다. 오히려 오너의 홍보나 공중을 보는 냉철한 인식에 따라 위기의 끝은 해결과 증폭이라는 양극단으로 갈리게 마련이다. 언론의 부정적 기사를 막지 못했다고 홍보 임원을 수시로 바꾸는 총수가 이끄는 기업, 오너의 지시 사항에 토를 달지 못하고 끙끙대는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위기대응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그룹 소유의 리조트에서 건물붕괴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웅열 회장은 사고 9시간 후인 다음날 새벽, 사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가족에게 사과와 위로를 표했다. 또한 치료나 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진정성 있는 발표와 함께 수습을 진두지휘했다. 이후 건물붕괴라는 안타까운 참사는 빠르게 수습국면으로 들어갔다. 총수의 인식이 위기 대처에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기업들이 간과해선 안 될 게 있다. 위기 발생 후 이해관계자나 공중만 관리하면 된다는 인식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이슈 주인공의 신상을 몇시간만에 털어버리는 온라인상 공중이 존재하는 한 기업에 불리한 정보나 불편한 진실은 언제든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질 수 있다. 대한항공 사례를 통해 기업이 내부이해관계자를 어떻게 관리하고 소통해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
이갑수 INR 대표 kevin.lee@inrcomm.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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