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

▲ 김동수 한국도자기 회장이 7월 한달간 도자기 공장의 가동을 중단키로 했다. [사진=뉴시스]
잘나갔던 원로 중소기업인 김동수(80) 한국도자기 회장이 요즘 시련기를 맞고 있다. 불황으로 인한 적자 행진 탈피를 위해 7월 한달간 공장 가동을 중단키로 한 것. 회사 설립(1943년) 72년 만이다. 국내 1위 도자기 회사로 글로벌 명성까지 쌓았던 그로선 뼈아픈 결단이 아닐 수 없다. ‘3무(무차입·무노조·무감원) 경영’으로도 유명했던 그가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를 다시 장수대열에 합류시킬지 주목된다.

지난 1일 국내 1위 도자기업체인 한국도자기가 7월 한달간 공장(청주 소재) 가동을 일시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연례 여름휴가(8월 1~9일)에다 7월 한달의 일시 조업중단 기간을 합해 총 40일간 가마 불을 끈다는 것. 관련 업계는 물론 청주 지역민이 무척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도자기 회사나 철강회사는 가마나 용광로의 불을 웬만하면 끄지 않는다. 한번 끄고 다시 살리려면 비용이 엄청나게 들 뿐만 아니라 회사 신인도나 제품 안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 그런 줄 알면서도 김 회장은 왜 가동 중단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을까.

업계는 한국도자기가 3년 연속 적자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이번에 불가피하게 선제적 경영개선 작업에 나섰다고 본다. 수년째 매출 감소와 적자 행진이 이어지고 무차입 경영마저 위협받게 되자 감원 없이 비용을 줄여 보려고 그같은 극약처방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이는 지난 1974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이래 40년 넘게 한국도자기를 국내 간판급 도자기 회사로 키우느라 애쓴 김 회장에겐 굴욕적인 조치로까지 비칠 수 있다.

 
업계 일부에서는 한국도자기가 경영난으로 휘청거린 나머지 감원 수순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시선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 관계자는 “이번 가동 중단이 전보다 강화된 여름철 비수기 재고 조정 및 설비 점검 수순”이라며 “아직은 재무구조가 탄탄해 걱정 안 해도 될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김영신 사장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 재도약을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라며 “절대로 인력감축은 없다”고 단언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어려운 시기가 많았지만 한번도 감원을 하지 않은 게 선대로부터 내려온 회사 전통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번 조치로 500여명의 종업원 중 400여명(주로 생산직)이 출근을 하지 않게 됐다. 영업 및 유통 관련 직원은 종전처럼 근무하게 된다.  쉬는 종업원들은 임금의 50~70%를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으로 보전받는다고 한다. 이를 위해 회사 측은 고용유지조치 계획서를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에 제출했다. 고용유지 지원금은 재고가 전년 대비 50% 이상 증가하거나 생산량 및 매출액이 전년 대비 15% 이상 줄어들었을 때 신청하는 제도다.
잘나가던 한국도자기는 2011년 이래 매출이 줄어들고 손익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매출은 2011년 489억원에서 2012년 465억원, 2013년 404억원, 2014년 384억원으로 30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당기순이익도 2011년 흑자 5억원, 2012년 흑자 2억원에서 2013년 적자 35억원, 2014년 적자 104억원으로 후퇴 속도가 빨랐다(그래픽 참조). 이자비용도 2011년 2억8598만원, 2012년 4억3891만원, 2013년 4억3305만원, 2014년 6억2466만원으로 급증해 무차입 경영원칙이 많이 훼손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김 회장이 키워놓은 강소기업 한국도자기를 흔들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 복합 요인이 있겠지만 지속적인 내수불황과 중국산 등 저가제품 대량 유통, 유럽산과의 경쟁에서 프리미엄 제품이 밀린 점 등이 주로 꼽힌다. 도자기 소비패턴 변화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점도 거론된다. 몇년 전부터 도자기를 ‘세트’로 구입하는 신혼부부가 크게 줄었다.

식기도 저렴한 제품을 사다 쓴 뒤 자주 바꾸는 쪽으로 바뀌었다. 도자기 애호가들은 포트메리온, 코렐, 로열코펜하겐 등 해외 브랜드를 선호한다. 저가 중국산과 고급 유럽산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됐고 해외직구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구매패턴을 따라잡지도 못했다는 지적이다. 사실 한국도자기 역사는 우리나라 현대 도자산업의 발전사와 맥을 같이 한다. 유럽과 일본의 유명세에 밀렸지만 한국도자기의 선전으로 ‘도자기 한국’의 명예를 그나마 회복했다.
 
▲ 7월 1일 가동을 멈춘 한국도자기 청주 공장. 평소와 달리 인적이 뜸하다. [사진=뉴시스]
초창기 빚 갚기에 급급했던 한국도자기는 1970년 도자기 홈세트 ‘황실장미홈세트’로 벌떡 일어선다. 1973년엔 꿈에 그리던 본차이나(소뼈 가루를 함유한 도자기)를 천신만고 끝에 개발하고 이듬해 청와대 식기 공급업체가 된다. 이 과정에서 고故 육영수 여사가 본차이나 제품 개발을 김 회장에게 독려한 일화는 유명하다.  2003년엔 유럽 명품들과도 겨룰 만한 보석 박힌 프리미엄 도자기 프라우나 개발에 성공해 글로벌 회사로 발돋움한다. 그 결과 2010년 세계적 명품이 모두 모인다는 런던 헤러즈 백화점에 단독 매장을 갖게 된다.

김 회장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한눈을 팔지 않고 전념해 일가를 이루는 듯했다. 100~200년 장수기업의 꿈을 얘기하는가 하면 3세 승계 작업도 진행했다. 2005년엔 동업했던 막냇 동생(김성수 ZEN한국 회장)에게 회사 일부를 떼 내주고 분가시키는 결단도 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의 한국도자기는 내리막길을 걷는 형국을 보였다.  한국도자기는 행남사와 함께 국내에서 쌍벽을 이루는 도자기업체다. 외형이나 브랜드력, 글로벌 유명도 등에서 대체로 한국도자기가 1위로 꼽힌다.

한국도자기는 식기류 도자기 업체다. 도자기타일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도자기 제품은 ▲식기 ▲타일 ▲위생도기(화장실제품) ▲기와 등으로 분류된다. 이중 식기류 도자기 국내시장은 연간 3000억원 상당으로 추산된다. 한국도자기, 행남사, ZEN한국 등 소위 빅3가 1000억원 상당을 나눠 갖고 나머지를 외산과 수백개 중소기업들이 차지하는 형국이다. 한국도자기는 연 매출 500억원대를 오가는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지만 꽤 유명한 ‘강소기업’이다. ‘작지만 다이아몬드같이 단단하고 빛나는 회사’를 지향해 온 덕분이다.

충북 청주 토종기업으로 ‘3무 경영’을 실천해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회사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는 항상 2세 오너 경영자인 김동수 회장이 있었다. 연대 경제학과를 나온 그는 크리스천으로 대한검도회장 이력도 갖고 있다. 지금은 외견상 3세 분할 경영체제를 갖추고 있다. 장남 김영신(53) 사장은 2004년 한국도자기 사장자리에 올랐고 차남 김영목(51) 한국도자기리빙 대표는 한국도자기 부사장직도 겸하고 있다. 딸 김영은(48)씨는 한국도자기 유통업체인 한국도자기특판 대표를 맡고 있다(그래픽 참조). 하지만 여전히 김 회장은 한국도자기의 1대 오너다.

그는 한국도자기 지분 31.1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또한 그는 장남 김 사장과 함께 한국도자기 대표이사직도 갖고 있다. 자녀들에게 일상의 경영권을 나눠주긴 했지만 대주주와 대표이사직을 유지하며 후선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 신설동 사옥으로 출근해 회사 큰일을 돌보고 있으며, 지분 및 경영권 완전 승계는 미루고 있다. 따라서 이번 공장 가동 중단에 종업원들과 김 사장은 물론 김 회장의 결단도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도자기를 국내 손꼽히는 강소기업으로 키운 그가 자녀 경영자들과 힘을 합쳐 지금 위기를 극복하고 회사를 다시 장수기업 대열에 합류시킬지 주목된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